따뜻하고 단란한
아내는 명절 연휴 전 사진관에 전화해 예약을 잡으면서 시시콜콜 질문을 했다. “다들 가족사진 찍을 때 옷은 어떻게 입나요? 옷도 반 팔보다는 긴 팔이 더 보기 좋은가요? 배경은 무슨 색인가요? 지난 여름 애들 아빠가 아이들 여권 사진 찍었을 때 잘해주셨다고 해서 다른 곳은 알아보지도 않았어요.” 약 15분 간의 통화 끝에 아내는 10월 3일로 예약을 마쳤고 온 가족 모두 흰색 셔츠와 베이지색 바지를 입고 사진 찍는 걸로 결정했으니 사진 찍기 전날 옷을 사러 가자고 했다. 그 얘기를 한 게 사진 찍기 1주일 전이었다.
10월 2일엔 온 가족이 흰색 셔츠와 베이지색 바지를 사러 가야 했다. 어디로 가서 어떤 옷을 사느냐 그걸 결정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아이들 옷을 사고 어른들 옷을 따로 살지? 아니면 한 번에 모든 걸 살 수 있는 곳으로 갈지 아내와 상의했다. 결국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집 근처 유니클로로 향했다. 조금 비싸긴 하지만 그래도 어른, 초등학생 아이들 옷을 사기엔 이만한 곳도 없지 싶었다. 그렇게 2시간 만에 원하는 옷을 사고 수선까지 마쳤다.
10월 3일 아침이 밝았다.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니 아차, 머리가 덥수룩하다. 나를 닮아 머리카락이 빨리 자라는 큰 아이는 지난주에 미용실을 다녀왔지만 난 자르지 못했다. 이렇게 사진 찍으러 갔다가는 아내한테 혼날 각오를 해야 한다. 서둘러 머리와 수염을 자르고 말끔한 모습으로 변신했다. 아이들에게 늦은 점심을 먹이는 동안 아내 역시 안방 화장대에서 꾸미느라 여념이 없었다.
10월 3일 오후 4시, 그동안 벼르고 별렀던 가족사진을 찍으러 집 근처 사진관으로 온 가족이 출동했다. 큰 아이가 유치원 때부터 가족사진 한 번 찍어야지 했는데 그게 미루고 미루다 보니 어느덧 6년이 흘렀다. 큰 아들이 중학생이 되고 나서 까지 미룰 수는 없었다. 장소는 지난 여름 두 아이의 여권 사진을 찍었던 곳이었다. 부부가 운영하는 곳으로 두 분 사장님의 빠른 일 처리와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일부러 이곳으로 결정했다. 사장님은 우리 가족을 아이보리 커튼이 있는 배경에 앉혔다. 우리 가족이 사장님의 주문대로 세 가지 포즈를 취하는 동안 연신 사장님이 셔터를 눌렀다. 작은 아이가 계속해서 뚱한 표정을 짓고 있자 아이를 웃겨 가며 사진을 찍는 기술이 놀라웠다. 10여분이 지나고 슬슬 미소를 짓는 얼굴 근육이 지쳐갔다. “아, 모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절로 생각이 들었다.
사진 찍는 과정이 끝나니 이젠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고를 차례였다. 어느 사진이나 마찬가지이듯, 4명 중 1명이 눈을 감거나, 표정이 나쁘거나 자세가 구부정하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100여 장의 사진 중 3장을 고르는 데 30분 넘는 시간이 걸렸다. 아내는 최종 1장만 A5 크기로 인쇄해서 TV장 위에 올려놓을 것이고 나머지 2장은 파일로 받아 핸드폰이나 노트북의 배경화면 사진으로 쓸 예정이라고 했다.
가족이 찍힌 사진을 보며 무엇이 좋은지 고르는 동안 아이들이 부쩍 자랐고 그만큼 나와 아내는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이 새삼 느껴졌다. 나는 40대 중반, 아내는 40대 초반,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둘 다 모두 20대였는데 벌써 20년이 흘렀다. 그 20년 동안 서로 지지고 볶으며 사는 동안 나이 들어버린 아내와 내 모습이 있었고 자라나는 새싹인 싱그러운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결혼하기 전에는 가족사진이란 걸 찍어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의외로 이게 가족의 평소 모습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모니터를 통해 본 사진에는 내가 바랬던 따뜻한 가족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동안 헛고생하지 않았구나, 애들은 나처럼 힘든 어린 시절을 겪지 않았구나 싶어 다행이었다.
제목 이미지 : 어제 찍은 가족사진 후 저녁 식사 중 찍은 사진입니다. 얼굴만 가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