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거칠마루 Apr 10. 2024

학교폭력으로 신고받다

중학교 들어간 지 1달 만에

큰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사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서는 늘 어딜 가든 전화기를 손에 꼭 들고 다녔다. 직업 특성상 언제, 어디서든 연락이 유지되어야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혹시 아이의 학교에서 연락이 올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큰 아이는 한 달 동안 이 핑계, 저 핑계(아이가 다른 사람에 비해 민감해서 뭐든지 남들보다 3~4배 이상 증폭해서 느낀다. 그에 따른 반응 역시 상당히 큰 편이다. 감기에 걸려서 몸이 조금 힘든 것을 큰 아이 식으로 표현한다면 지금 바로 병원에 가야 할 정도로 아픈 게 된다)로 조퇴하고 싶다는 전화만 4차례 이상 받았다. 한 달간 실제로 아파서 조퇴한 경우는 두 번이었다. 요즘 감기(몸살, 열, 콧물 등이 동반된)가 유행이어서 병원에 갈 정도로 열이 나고 아픈 경우였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충분히 견딜만한데도 머리가 아프다. 목이 부었다 등의 핑계로 조퇴한다는 아이를 말리는 것도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부모인 내가 큰 아이에게 이런 말을 했을까? “병원 응급실은 어딘가 부러지거나 못 움직이는 상황에만 가는 곳이야, 알았지?”


그러다 저번 주 화요일에 사건이 터졌다. 아이가 화장실 문을 열 때 문 앞을 지나는 여자애와 부딪혀 그 여자애의 옷이 찢어졌다. 문을 당겨서 열지 않은 큰 아이의 잘못과 하필이면 남자 화장실 앞을 뛰어간 여자애의 우연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일 뒤로 7~8명의 여자애가 큰 아이(남)를 에워싸고 “네가 잘못했다. 찢어진 옷 값을 물어줘라 등” 뭐라 하는 걸 선생님이 말렸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큰 아이는 억울함을 느꼈고 교무실에서 그 사정을 설명하다 어느 순간 화가 폭발했는지 자제력을 잃고 교무실 탁자에 머리를 꽝하고 서너 차례나 부딪혔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아마 본인의 억울함이나 화를 표출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러면 안 되는데, 담임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의 설명을 듣고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프진 않을까? 난 이런 걸 가르친 적이 없는데 얘는 어디서 이런 걸 배웠을까? 왜 이럴까? 이런다고 속이 시원할까?” 자해는 절대 안 된다는 상담선생님의 말씀도 생각났다. 교감선생님의 말씀도 무척 인상 깊었다. “아이가 학교에 온 이상 이 아이와 함께 갈 겁니다. 저희가 먼저 아이 손을 놓지는 않을 거예요. 많이 놀라셨겠지만 너무 나무라지 마시고 잘 토닥여 주세요, 다신 머리 부딪히지 않는 거야, 선생님하고 약속했다, 일단 이번 일이 처음이니 이번은 넘어갈게요, 혹시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부모님 상담 등 학교에서도 여러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난 교감선생님께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외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큰 아이는 스스로 부딪힌 머리가 아프다며 6개월 전에 갔던 병원에서 신경외과 진료를 받았다. 그리고 작년의 사건(초 6 때 머리 부딪힘)을 알고 있는 의사 선생님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CT 자주 찍으면 안 되는데, 무슨 일이 있었든지 스스로 몸을 상하게 하는 건 절대 안 돼요, 다음엔 이런 일로 오지 않는 거예요, 자, 선생님이랑 약속해요” 다행히 두통 외에 별다른 증상은 없었고 검사 결과도 깨끗했다. 그렇게 큰 아이의 일은 사그라들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난 오늘 다시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두 주째 앓고 있는 감기 때문에 아이가 조퇴하고 싶어 전화하나 보다 생각했다. 전화를 받으니 담임선생님이 무턱대고 빨리 학교로 오라고만 하신다. 무슨 일인지는 말씀하지 않으신다. 왜 그러지?      


나 : 선생님,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나요? 혹시 많이 다쳤나요?

담임선생님 : 아니요, (조심스러워하며) 실은 00가 친구 7명을 때렸어요. 그 일로 교무실에 와 있습니다. 

나 : (그 말을 듣는데 바로 한숨부터 나왔다) 네, 알겠습니다. 금방 가겠습니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아이가 있는 교무실로 들어갔다. 산책 중에 서둘러 온 길이라 청바지에 모자를 쓰고 바람막이 점퍼 차림이었다. 교무실에 들어가니 방으로 된 상담실로 안내받았고 바로 교감선생님과 담임선생님, 큰 아이가 상담실로 들어왔다.      


교감선생님(이하 교감) : 오늘 00가 같은 반 친구 7명을 때렸네요, 그 일로 반에서 분리되어 교무실에서 상담 중이었습니다. 상담 중에 또 00가 탁자 모서리에 자기 머리를 부딪히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오늘은 이 두 가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버님을 학교로 모셨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수업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해서 제가 대신 말씀드릴게요.

나 : 네, 알겠습니다.(아이가 또다시 스스로 머리를 부딪혔다는 사실에 놀람과 한숨이 반복됐다.) 저희 아이 때문에 늘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학교 폭력을 담당하는 선생님과 교감선생님께 들은 전후사정은 이랬다. 같은 반 A가 내일이 쉬는 날이니 롯데월드에 가자는 말을 했다. 같은 반 대부분이 좋다고 호응했고 그 말을 들은 큰 아이 역시 자기도 롯데월드에 간다고 A에게 말했다. 그 말은 들은 A는 다른 아이들과 큰 아이가 간다는 것을 오래 얘기하더니 큰 아이더러 “넌 병신이라 안 돼, 너희 부모는 병신의 부모잖아” 등의 놀림과 부모님 욕을 했다. 큰 아이는 스무 번 정도 A에게 놀림과 부모님 욕을 하지 말라고 좋게 말했지만 A는 큰 아이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놀림과 부모님 욕을 이어갔다. 그러는 동안 같은 여자 아이 B, C는 이 모습을 다른 반 아이들에게 큰 아이 흉을 보며 전파하고 있었다. 그런 놀림이 있는 동안 같은 반에서 말리는 아이는 하나도 없었고 오히려 재밌다고 깔깔 웃는 아이들이 싫었다고 했다. 결국 참다못한 큰 아이가 A, B의 얼굴을 몇 대 때리고 C의 손목을 세게 붙잡았다. 그때 같이 아이를 놀리려고 에워싼 건지, 싸움을 말리려고 아이 옆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근처에 있던 같은 반 아이 4명이 큰 아이의 몸부림에 의도치 않게 맞게 되었다. 큰 아이 입장에서 보면 자기가 때린 7명 중 A, B, C 3명에게는 자기를 놀린 것과 험담한 것에 대해 꼭 사과를 받고 싶다고 했다. 맞은 아이 중 나머지 4명은 일부러 때리려고 한 것은 아닌데 옆에 있다 휩쓸린 것 같다고 했다.      


학폭 담당 선생님 : 보통 이런 경우에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양쪽을 모두 조사하고 학교에서 애들 사이에 화해를 시키려고 합니다. 화해가 되면 문제는 거기서 끝납니다. 다만 아이들 중 누구라도 학폭 신고를 하게 되면 그 일은 교육청에서 학폭 조사관이 나와 직접 조사를 하게 됩니다. 그 결과 1호부터 9호(숫자가 커질수록 처벌 수위가 높아진다)까지의 처벌이 결정됩니다. 1호부터 3호의 처벌은 생기부에 기재되지 않고 유보됩니다. 그리고 학폭 신고가 접수된다면 긴급 분리조치를 해야 돼서 아이가 학교에 나오지 못하고 가정학습을 며칠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큰 아이와 아빠인 나는 무슨 이유에서든지 같은 반 친구들을 때린 것은 우리 쪽 잘못이 맞다. 아빠인 내가 직접 맞은 아이의 학부모님께 사과할 생각이 있다. 다만 다른 아이들이 우리 아이를 놀린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받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학폭 담당 선생님이 내민 종이가 두 장 있었다. 하나는 아이가 작성하는 학교폭력 신고서였다. 그리고 학부모가 작성하는 관련 서류가 한 장 남아 있었다. 그렇게 두 장의 서류를 작성하는 사이 큰 아이의 조퇴를 위해 다른 선생님이 가방을 가져다주셨다.      


상담실을 나서기 전 교감 선생님의 학부모 면담 제안이 있었다. 다시는 아이가 학교에서 더 이상 스스로를 다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학교 측에서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하겠다고 하셨다. 그중 처음이 학부모 면담이라고 말씀하셨다. 그저 “네, 알겠습니다”라는 대답 외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학교에 불려 간 지 2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내 아이를 이해할 수 없는 마음, 이런 상황을 만든 것에 대한 분노, 부끄러움, 안타까움 등 여러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힘들게 강의 중인 아내에게는 일부러 전화하지 않았다. 어차피 몇 시간 뒤엔 다 알게 될 일인데 굳이 50km 넘는 퇴근길을 더 힘들게 하긴 싫었다.      


남들은 아이 담임 선생님 얼굴도 모를 텐데, 난 담임선생님을 비롯해 교감선생님까지 벌써 2번째 만났다. 그것도 안 좋은 일로, 아이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교감선생님의 말에 안도감이 들었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큰 아이가 제대로 학교를 다닐 수 있을지 심히 걱정도 들었다. 그와 함께 갑자기 짜증도 났고 내 인생은 왜 이리 힘들지라는 신세한탄도 하게 됐다.     

 

집으로 돌아와서 큰 아이에게 여러 차례 강조했다. 

나 : 절대 먼저 때리지 마라. 한 번만 더 자해하면 너 아빠한테 크게 혼난다. 어깨 펴고 바른 자세로 있기, 말할 때 말끝 흐리지 않고 힘 있게 말하기, 자기 비하(이상하게도 난 못해요, 난 바보예요 등의 자기 비하를 수시로 하고 있었다) 하지 않기,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열심히 노력하기      

이렇게 여러 가지를 말했지만 아이가 얼마나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었다. 아이도, 나도, 엄마도, 그걸 바라보는 둘째도 모두 힘든 어느 날이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매거진의 이전글 두 아들이 보는 우리 가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