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9시부터 이어진 24시간 근무를 마치고 서둘러 집으로 왔다. 10시로 예정된 병원 진료 및 입원 일정 때문이었다. 입원준비물(마실 물, 수건, 속옷, 양말, 간단한 먹거리, 치약, 칫솔, 충전기, 슬리퍼, 목발, 샤워용 비닐 발목덮개, 영양제 등)을 챙긴 뒤 아내 차를 타고 예전에 수술받았던 병원으로 왔다.
월요일 오전 10시까지 오래서 왔는데 병원 안은 환자들로 가득 차 아주 바빴다. 이럴 거면 왜 일찍 오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30분 넘게 기다리다 예약된 정형외과 진료를 보고 수술일정이 오늘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가 될 거라고 들었다. 원래 일정은 오후 첫 수술이었지만 갑자기 3시간 정도 걸리는 응급 수술이 생겨 주치의 선생님은 오전 진료가 끝나기 전인11시부터 수술을 시작한다고 알려주셨다. 오후 첫 수술이지만 아마도 응급수술이 끝나고 주치의 선생님이 조금 쉰 뒤인 3시에나 시작되지 않을까?
간단한 수술이지만 뼈를 건드리는 거라서 마취는 꼭 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어 상담실에 들러 간단한 수술 브리핑을 들었다. 수술에 쓰이는 각종 비급여 약제 사용 동의서와 수술동의서에 서명을 했다. 이젠 정형외과에서 받은 진료 경로안내지에 적힌 대로 하나씩 퀘스트를 진행할 차례였다.
퀘스트 순서
진료 경로안내지, 이름을 가리려다보니 사진이 잘렸네요
2층 원무과(입원 수속) - 2층 7번 방 채혈, 심전도, 소변검사 - 3층 영상의학과 X-ray - 6층 613호 병실로 이어지는 여정이었다. 모든 퀘스트를 깨고 병실에 들어와 짐정리를 마쳤다. 작년에 내가 10일간 입원했었던 바로 그 병실이었다. 침대 위치는 작년과 달리 문에서 들어오면 왼쪽 첫 번째 자리였다. 작년은 왼쪽 창문 쪽 자리였다. 간호사 선생님이 찾아와 항생제 테스트(가는 바늘로 피부 안쪽을 얇게 들어간 후 1ml 정도를 주입하고 펜으로 튀어나온 부위의 가장자리를 그려놓았다, 20분쯤 뒤 확인했을 때 크기가 줄어들어 있으니 괜찮다고 하셨다)를 하고 링거를 놓았다. 거의 헌혈할 때만큼의 통증이었다. 수술 뒤 걷는 게 불편할지 몰라 목발을 가져왔기 때문에 어느 쪽 팔에 링거를 맞을지 잠시 고민했다. 그냥 왼팔손등에 링거를 맞았다. 혹시 모르니 2시쯤 미리 화장실을 다녀와야겠다. 척추마취라 수술 끝나고 6시간 동안 얌전히 누워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침대에 누워 1시간쯤 기다렸을까? 13시 50분에 선생님들이 오셨다. 이제 곧 수술실로 간다고 했다.
작년에도 느꼈지만 수술실 안은 꽤 추웠다. 척추마취를 위해 옆으로 누워 다리를 최대한 배 쪽으로 당기고 힘을 뺐다. 마취 의사 선생님이소독한다, 여기에 주사를 놓는다, 지금 약이 들어간다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첫 수술보다 긴장이 덜 됐다. 마취주사를 맞고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벌써 수술이 끝났다. 수술실을 나와 X-ray 촬영을 마치고 병실로 오니 15시 30분, 이제 6시간 뒤인 21시 30분까지는 얌전히 누워 있어야만했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17:21, 이제 고개를 들 수 있을 때까지는 4시간이 남았다. 앞으로 4시간 동안 뭐 할까? 틈틈이 짧게 기도를 하고 살짝 몸을 뒤척였지만 부작용 때문에 절대 머리는 들지 않았다.일을 마친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걱정했나 보다. 내일 오전에 오겠다고 하는 걸 혼자서도 괜찮다고 대답했다. 아내도 쉬어야지, 예전처럼 뼈 부러진 게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아, 예전과 달리 이제는 보호자 1인에 한해 병실에 상주할 수 있다. 하지만 아내에겐 일부러말하지 않았다.
드디어 수술 6시간이 지나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화장실을 가려고 걸었는데 아래로 피가 쏠리니 윽, 생각보다 아팠다. 깁스 풀고 걸음마를 시작하던 그때로 다시 돌아간 것 같았다. 하루 종일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해 얼른 뭔가를 먹고 싶었다. 빵 1개, 초코바 1개, 커피 1개, 물 1병으로 분노의 식사를 마쳤다. 슬슬 통증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골절 접합 수술처럼 개가 물어뜯는 느낌은 아니지만 살갗 아래에서 올라오는 은근하고 묵직한 통증이었다. 걷는 모양은 뒤둥 뒤뚱, 수액걸이의 손잡이를 꼭 잡고 걸어야 했다. 한숨 자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수술 뒤 붕대가 감긴 발목, 주렁주렁 달린 링거액
24년 5월 28일 화요일 : 수술 다음 날
링거는 생각보다 더 불편했다. 링거를 맞은 손은 뭔가를 쥐는 것도, 힘을 주는 것도 힘들었다. 심지어 화장실로 이동하는 5미터만 움직여도 금세 피가 역류했다. 링거에 붙은 스티커를 보니 어제 수술상담실에서 동의했던 비급여 약제(부기 빼는 약, 회복에 도움 된다는 콜라겐, 진통제)가 있었다. 아무래도 오전 회진 때 주치의 선생님께 달려있는 링거만 맞고 약으로 바꾸는 걸 말씀드려야겠다. 한 손으로만 생활하는 게 너무 불편하다.
회진 때 미처 링거 얘기를 못하고지나쳐버렸다. 10시경 정형외과 처치실에서 수술 부위 소독을 할 때였다.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간호사 또는 응급구조사 선생님들이 소독 후 붕대를 감아주시는데 주치의 선생님은 본인이 직접 소독, 붕대 처치까지 하신다. 이 때다 싶어 링거 대신 약으로 먹어도 되는지 물어봤다. 대답은 이미 달려있는 것만 다 맞으면 바로 먹는 약으로 처방해 주신다고 하셨다. 아싸! 이젠 두 손의 자유를 찾을 수 있다.
오늘은 1년에 한 번 있는 체력검정일이었다(소방관은 1년에 한 번 체력평가를 하고 그 결과가 인사고과에 반영됩니다). 아직 내 다리로는 달리기를 할 수 없었고 수술 일정이 있어 올해 체력평가는 넘어가야 했다. 다만 소방관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빠지는 것이기에 수술 사실을 입증하는 서류를 소방행정팀(회사의 인사팀과 같다)에 제출해야 했다. 회사에 제출할 서류(진단서)를 떼고 오늘 근무 중인 후배에게 메시지로 보냈다.
내일부터 근무지만 다음 주 금요일까지 병가를 내고 쉴 예정이다. 지금은 걸을수 있지만 목발 같은 지지대가 필요한 상태여서 회복기간이 필요한 상태다. 3-4일만 지나면 자유롭게 걸을 수 있다니까 쉴 수 있는 지금을만끽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