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이 유행은 얼마나 지속될까요?
러닝 크루, 러닝 클럽이라는 말이 요새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제가 일하는 직종은 운동 좀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물론 저는 아닙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운동하는 불쌍한 인생입니다) 요즘처럼 밖에서 운동하기 좋은 때는 사무실에서 운동 관련 얘기가 자주 화제에 오르곤 합니다.
A : 자전거 코스로는 00 가 좋아요, 어제 거길 갔는데요...
B : 어제 트레일 러닝했습니다. 어디 산이었는데요...
C : 얼마 전 스파르탄 레이스 갔다 왔는데요, 거기 정말 힘들더라고요, 별의별 장애물에다가...
D : 테니스 클럽에서 어제 몇 경기를 뛰었는데요
E : 실내 운동으로는 배드민턴이 제일이지, 나랑 우리 클럽 갈 사람??
주로 이런 얘기들이 들렸다면 올해부턴 이상하게도 다른 운동 대신 달리기 얘기가 주를 이뤘습니다. 신기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습니다(40대 중반이 넘은 나이에 꼰대가 되기 싫어 사소한 걸로 후배들에게 잔소리 안 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냥 요즘 애들 운동 열심히 하네 이 정도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달리기 얘기의 빈도가 늘어다더니 이젠 사무실에 러닝화까지 등장했습니다. 저희는 08시 40분부터 09시까지 어제 근무팀과 교대하면서 각종 차량과 장비를 점검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물론 각자의 사정상 한 두 사람은 화장실을 가는 경우가 있어 뒤늦게 점검 대열에 합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이라 그 정도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참 장비점검 중인데 팀장님이 제게 아래와 같은 말씀을 하시네요.
팀장님 : 어이, 000(저를 부르는 호칭입니다, 그냥 생략합니다) 사무실 안에 아직도 점검 안 하는 사람이 있어, 함 가봐, 후배들 잘 좀 가르쳐, 으잉
나 : (농담 반, 진담 반 같은 팀장님의 말에 저도 살짝 혈압이 오릅니다)네? 아니 지금 점검 시간인데, 누가 아직도 사무실에 있는 걸까요?(팀장님의 의중을 알기에 반쯤 장난으로 대답했습니다)
사무실 문을 열었더니 러닝화 자랑에 정신없는 후배 둘이 남아 있었습니다. 아, 이마 사이에 살짝 힘이 들어가고 주름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들어온 지 5년도 안 된, 배울 게 산더미 같은 녀석들이 제가 사무실 문을 열 때까지 러닝화를 얼굴 높이로 들어가며 제품의 특장점을 설명하느라 정신없습니다. 전직 영업사원 앞에서 이 녀석들이 무슨 재롱을 부리는 건지, 아침부터 야단치고 싶은 마음을 내리눌렀습니다(맘 같으면 아주 그냥....) 제가 사무실로 들어가는 순간 타이밍 좋게 후배들이 신발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점검하러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장비점검 시간에도, 잠시 일하다 짬이 나는 순간에도, 밥 먹고 쉬는 시간에도 돌고 돌아 얘기의 주제는 달리기였습니다. 예시입니다. "어제는 10km를 뛰었네, 오늘은 5km만 최고 속도로 뛸 거야, 저는 비번날에 하루 20km를 뛰어요, 신발은 퓨마가 좋아요, 뉴발란스가 좋아요, 이 제품이 가벼워요, 카본화가 끝내준다더라."
과연 이 유행의 끝은 언제일까요? 체력을 키우기 위해 움직이는 모든 행동을 운동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느샌가 달리기가 요즘 운동의 대표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저는 이 유행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소방관의 이상적인 체력은 심폐지구력 : 근력 = 5.5 : 4.5 또는 6:4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심폐지구력에 치우친 운동만으로는 각종 출동 시 원활한 활동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유행대로라면 화재 현장에서 무거운 물건은 살포시 내려놓고 냅다 달리기만 잘하는 소방관이 나오지 않을까 심히 걱정됩니다. 다리를 다친 이후 달리기와는 담을 쌓고 살아서인지 한쪽으로 치우친 운동 유행이 쉽게 눈에 들어옵니다(달리기 대신 유산소 운동으로 인터벌이나 등산, 실내자전거를 탑니다, 아직도 재활 중입니다). 겨울이 되어 날씨가 추워지면 자연스레 달리기 열풍이 사그라들까요? 유행도 좋고 운동도 좋지만 중용(中庸, 어떠한 일에서나 사실과 진리에 알맞도록 하여 편향, 편중하지 않는 것이다-위키백과)의 의미를 되새기며 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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