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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수리 이야기 3

2013. 7. ~ 2015. 7. 이문동 1.5층

by 거칠마루

2011년부터 2년간 살던 집은 14평 남짓 했지만 2년 동안 좋은 집주인을 만나 사는 동안 별 탈없이 무사히 보냈다. 이문동에서 제법 유명한 떡집을 운영하는 집주인은 매일 새벽 4시면 떡을 만들기 시작하셨고 가끔 새벽에 깬 아이를 달래느라 주인아저씨가 가게 셔터를 올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4시면 문을 여는 집주인의 성실한 삶의 자세는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 집과의 행복은 짧게 끝나고 말았다.


점점 아이가 자라 이젠 14평 남짓한 집이 점점 작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될 수 있으면 이곳에서 이사하지 않고 집을 마련할 때까지 살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이 이사할 곳을 찾아봐야 했다. 이번에도 아내의 회사 근처인 이문동 주변을 알아봤고 서둘러 계약했다. 갈수록 전세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있었다. 큰 길가에서 안쪽으로 15m만 들어가면 새로 이사할 집이 나왔다. 반지하 2세대, 1층과 2층, 옥탑에 각 1세대씩 사는 다세대 주택이었다. 이 집 역시 20년은 훌쩍 넘긴, 사람으로 치면 노년의 집이었다. 해마다 전세보증금은 올랐고 오른 보증금만큼 대출을 받아야 했다.


드디어 이사를 시작했다. 아내는 당시 둘째를 임신한 지 6개월쯤 되어 내가 이사 과정을 감독, 지휘해야 했다. 이사업체는 믿음직스러웠다. 1층이지만 반지하 때문에 계단 10여 개를 올라야 집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1.5층이었다. 아이로 인해 짐이 제법 있는 편인데도 이사업체에서는 최선을 다해 이삿짐을 처리해주셨다. 문제는 청소업체였다. 거실 창문이 고장 나 한쪽이 움직이지 않자 대번에 여긴 못 움직이니 손 닫는 부위만 청소하겠다. 저쪽은 상태가 안 좋은데 어떻게 하냐? 일하러 온 분들이 일하기보다는 불평에, 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원래 청소업체를 부르면 3명이 달라붙어도 23평은 최소 오후 3시는 지나야 청소를 마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업체를 잘못 골랐는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더니 점심 먹기도 전에 청소를 마쳤다고 했다. 일단 어이가 없었지만 이사 첫날부터 싸우기 싫어 미비한 점만 몇 개만 얘기하며 마무리를 부탁했다. 하기 싫어하는 티가 역력했다. 다시는 이 업체를 부르지 않으리 다짐하며 이사청소를 마쳤다.

한참 이사 중에 업체 사장님이 날 찾는다.

사장님 : 여기 화장실에 세면대가 없네요

나 : 네? 그럴리가요?

확인했는데 정말로 세면대가 없다. 이사 오기 전 집을 둘러볼 때만 해도 멀쩡히 잘 있던 세면대가 왜 사라졌을까? 부동산에 전화를 하고 부동산은 다시 전 세입자에게 연락해 자초지종을 알아봤다. 전에 살던 세입자가 집주인과 사소한 마찰이 있었다고 했다. 원래 전 세입자가 자기 돈을 주고 설치한 거라 세면대를 떼서 가져갔다고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사를 자주 하다 보니 별 일이 다 생겼다. 그럴 거면 차라리 이사 올 내게 말을 하지, 야속한 마음을 뒤로한 채 서둘러 세면대를 설치해 줄 업체를 찾았고 18만 원을 들여 세면대를 설치했다.


서울에 산 지 7~8년이 지나는 동안 느낀 점은 서울 집주인들은 사는 집만 빌려줄 뿐이지 될 수 있으면 집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세입자가 돈 주고 설치하면 집주인이 자기는 가만히 앉아 이득 보는 걸 즐긴다고 해야 할까? 이런 어이없는 일을 겪을 때마다 집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커져 갔다.


우여곡절 끝에 이사는 마무리됐고 몇 달쯤 지나자 아내는 옥색으로 칠해진 방문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친환경 페인트 가게를 수소문했고 가서 페인트를 2통이나 사 왔다. 막상 군대 있을 때 경비함에 페인트를 칠했던 경험을 살려보려 했으나 너무 귀찮았다(그 당시 구급대원이라 계속된 출동으로 항상 잠이 부족했다). 페인트 사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다 해준다며 큰소리를 쳤으나 현실은 귀찮고 힘들었다. 결국 아내가 만삭의 몸으로 방문 전부 페인트칠을 해냈다. 오죽 열심히 했으면 옆집 할머니가 페인트칠하는 아내를 보고 미대 출신이냐며 물어볼 정도였다.


당시 난 24시간 2교대 근무를 하고 있어서 일하는 날엔 아내 혼자 만삭인 채로 4살 큰애를 돌봐야 했다. 한참 활동량이 많은 아이를 만삭인 몸으로 돌보는 건 해보지 않으면 그 고생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어린이날처럼 주말 사이에 휴일이 낀 샌드위치 휴일에는 광주 장모님 댁으로 아내와 아이를 보내기도 했다. 2014년 5월 어린이날을 맞아 광주 장모님 댁에 내려갔고 나만 다시 서울로 올라와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라,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 분명히 문단속 제대로 했는데 이게 왜 열려 있을까 생각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이런, 안방이 온통 난장판이다. 집을 비운 이틀 사이 좀도둑이 들었던 것이었다. 다행히 현금 10만 원 훔쳐간 게 전부였다. 이문동에 있는 주택은 보통 옆집과 거리가 1m 정도다. 그래서 쉽게 넘어 다닐 수 있다. 우리 집 같은 경우는 뒤쪽 베란다의 유리창을 드라이버로 깨고 좀도둑이 들어왔다. 경찰에 신고를 하니 형사들이 찾아왔다. 피해금액을 묻고 우리 집을 둘러보더니 요새 이문동 인근에서 좀도둑이 활개를 쳐서 본인들도 그 도둑을 잡으려고 잠복근무 중이라는 말을 했다. 아마 동일범이 계속 빈 집을 터는 것 같은데 물건은 안 가져가고 꼭 현금만 가져가는 특징이 같다고 했다. 될 수 있으면 외출해도 집에 라디오나 불을 켜놓을 것을 당부했다.

집에 아무도 없었을 때 도둑이 들어 다행이었다. 아내와 아이만 있을 때 도둑이 들어온다는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뒷베란다에 깨진 유리창을 새로 갈아 끼우고 유리창에 붙일 방범 필름 업체도 알아봤다. 1m x 1m 유리창 6개를 붙이는데 50만 원쯤 했다. 비싸도 어쩔 수 없었다. 드라이버로 유리를 깨는데 방범 필름이 붙어 있을 경우 5초 정도 더 걸리고 그 사이 도둑은 유리창이 쉽게 깨지지 않아 단념하고 돌아간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렇게 수리비 아닌 수리비가 또 들어갔다.


옛날 집이라 정말 난방비가 많이 들었다. 아무리 보일러 온도를 높여도 겨울엔 24도 이상 오르지 않았다. 단열이 잘 되지 않아서 방바닥만 따뜻할 뿐 윗 공기는 차가웠다. 그래서 항상 아이 둘을 재울 땐 옷을 단단히 입혀서 재워야 했다. 계속 추운 상태로 지내서인지 아내는 둘째를 낳고 손목과 발목이 아프다고 했다. 또 나와 큰 아이는 갑자기 비염으로 고생하기 시작했다. 결국 나무와 쇠로 된 오래된 안방 창호를 단열이 잘되는 요즘 창문으로 교체하기로 했다. 그와 동시에 중문을 달아 실내에서 새는 온기를 최대한 막으려고 했다. 안방 창호 공사는 45만 원, 중문 공사는 80만 원이 들었다. 뭐, 아내와 아이를 생각하면 괜찮다 여기면서도 내 집도 아닌데 여기에 돈들이는 게 아깝기도 했다. 여기서 4년 이상 오래 살면 되는 거야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하지만 내 바람은 여기까지였다. 오래된 집이라 그런지 보일러 배관에서 생긴 누수는 도저히 내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래 반지하 천정에서 물이 새 공사를 한다고 집주인의 전화가 왔다. 이미 전에 살던 집에서 경험한 일이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첫 공사는 반나절만에 끝났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다시 몇 주가 지나 물이 새니 다시 공사를 한다는 집주인의 전화가 왔다. 저번 공사는 작은 방의 바닥을 부쉈지만, 이번엔 부엌 싱크대 쪽에서 물이 새 그쪽 부분 바닥 공사를 한다고 했다. 두 번째 공사는 하루 종일 걸렸다. 그때 장모님은 둘째를 봐주러 올라오셨는데 공사기간이 겹쳐 하루 종일 안방에서 아이와 지내는 감금 아닌 감금 생활을 하셔야 했다. 정말 이것도 못할 짓이었다.


보일러 배관 공사를 순서는 이렇다. 장판을 걷어낸다 → 브레이커로 콘크리트 바닥을 부순다 → 시끄러운 소리와 많은 먼지 발생 → 콘크리트 밑에 덮인 모래와 흙을 걷어낸다 → 누수 배관을 찾은 후 수리 이렇게 진행된다. 하지만 업체에선 공사만 할 뿐 모든 뒤처리는 살고 있는 세입자인 내 몫이었다. 공사 시작 전 가재도구에 먼지가 들어가지 않게 비닐을 덮어 씌우는 일도 모두 세입자인 내 몫이었다. 집주인은 그저 공사비를 부담하고 이러이러한 일로 공사하게 됐다고 통보만 했다. 그것도 먼지가 나니 한겨울에 문을 열어놓은 채 공사를 했고 안방에는 4개월 된 아이가 있으니 난방을 꺼놓을 수도 없었다. 난방비는 난방비대로, 뒤처리는 뒤처리대로 짜증 나는 상황이었다.

14년 말과 15년 초 사이, 보일러 배관 공사가 세 차례나 이어지자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몇 달만 지나면 전세기간 2년이 끝나니 그때 이사 가겠다고 집주인에게 얘기했다. 안 그래도 집주인은 자기가 들어와 살려고 했는데 잘됐다고 했다. 3차례의 배관공사 동안 집을 둘러봤던 집주인은 도배며 장판, 창호와 중문까지 설치해서 고맙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는 내가 덧붙였다. 세면대 설치까지 했습니다. 집주인도 웃었고 나도 웃었다. 솔직하게 얘기했다. 이 집 살면서 방범 필름까지 붙인 것까지 하면 300만 원 넘게 들었다. 어차피 이사 와도 제가 해놓은 것들 다 쓰실거다, 이사할 때 가져갈 수도 없으니 50만 원만 달라고 말했다. 5분간의 실랑이 끝에 집주인이 30만 원 보내주기로 결론이 났다. 300만 원이 30만 원이 됐지만 그래도 그거라도 받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젠 내 집을 사야 하나, 아님 이 근처에서 또 전세를 얻어야 하나 답이 없는 고민이 시작될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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