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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수리 이야기 4

2015. 7월 ~ 2018년 1월 이문동 00 연립

by 거칠마루

2015년에 다시 전셋집을 얻을까, 무리해서 아파트를 살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부동산을 통해 우연히 석관동의 00 아파트를 보게 됐다. 90년대 후반에 완공됐고 24평이지만 집주인이 싱크대 리모델링까지 마쳐놓은 상태였다. 제일 맘에 드는 점은 현관문 앞 공용공간을 거의 개인 창고처럼 쓸 수 있다는 점이었다. 집을 내놓은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방문한 탓에 아파트 집주인은 당황한 듯 보였다. 집이 밝고 깨끗해서 첫인상부터가 맘에 들었다. 2억 5천만 원에 집을 내놓았다고 했다. 집을 보고 나오면서 바로 계약하고 싶다고 말씀드리자 집주인이 화들짝 놀라며 아직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자는 대답을 하셨다. 부동산 사장님은 일단 며칠 기다리면서 다른 집도 알아보자고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집을 샀어야 했다. 괜히 더 알아보자며 다른 부동산에 들어갔다 전세 물건으로 풀린 지 2시간밖에 되지 않은 집을 보러 가게 됐다.


그 집의 첫인상은 오래된 집이었다. 처음 보자마자 난 평생 낡은 집에서만 살 운명인가 보다 싶었다. 79년에 완공됐고 18평에 방 3개, 거실, 화장실 1개가 있었다. 다만 곰팡이가 있는 걸로 보아 입주 전에 돈이 들더라도 도배, 장판은 꼭 해야겠다고 싶었다. 연립주택의 특성상 외부 침입에 아주 취약하다. 그래서 계약 전에 외부창에 방범 필름을 붙여 달라는 특약을 넣었다. 집주인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 부동산에서 뭔가 한마디를 덧붙인다.

부동산 : “여긴 집주인이 2명이에요”

나 : 네, 무슨 말씀이신지???

부동산 : 원래 집주인은 문서에 나온 소유자의 누나랍니다. 사정이 있어서 명의를 아직 안 옮겼다네요, 어차피 두 분이 다 알고 있고 그동안 아무런 문제없었어요

나 : 일단 망설여지네요, 전세계약이 끝날 때 계약금 반환 문제는 없겠죠?

부동산 : 네, 지금까지 별일 없었어요. 실 소유주와 문서상 소유자 두 분 모두 연락 잘 됩니다


살짝 걱정이 됐지만 전세 물건 중 괜찮은 집이 없었다. 계약하고 싶었던 석관동 00 아파트에선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전세물건이 귀해서 더 지체했다가는 놓칠 것 같았다. 그때 조금 더 기다렸어야 했는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막심이다. 그냥 전세 계약하기로 결정했다. 원래 살던 세입자가 내가 이사 갈 날짜보다 3일 정도 먼저 빠져서 입주 청소와 도배, 장판을 새로 하는데 여유가 생겼다. 세입자가 빠진 텅 빈 집을 아내와 다시 둘러보러 갔다. 이런, 생각보다 곰팡이가 많았다. 안방과 욕실 그리고 거실 쪽에 곰팡이가 퍼져 있었다. 욕실 벽에 붙은 타일이 깨져 그 안으로 물이 스며들고 그 결과 욕실과 붙어 있는 안방 벽까지 곰팡이가 퍼진 걸로 보였다. 좋은 도배업자를 만났고 그분이 욕실 벽에 있는 깨진 타일과 곰팡이 제거작업까지 모두 마무리해 주셨다. 다만 도배 중에 위층에서 우리 집으로 연결된 오수관이 깨진 상태를 발견하셔서 또다른 공사를 하게 됐다. 도배하는 분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연결된 수리업자를 불렀다. 4시간 정도 이어진 공사 후 그분은 깨진 오수관을 이어 붙이고 밑으로 새어 나온 오물을 닦아내고 뚫린 벽을 야무지게 메꿔놓으셨다.


전에 살던 세입자는 도둑이 들었던 경험 때문에 에스원 경비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다. 이사하기 전에 둘러볼 때는 현관 입구에 오토 도어록 대신 에스원이라고 적힌 경비회사에서 설치된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세입자가 이사 가고 나자 그 자물쇠도 떼어버려서 빈 공간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아내가 인터넷을 검색하더니 열쇠업자를 불렀다. 15만 원의 새 자물쇠 설치에, 오래되어 부식된 문 손잡이 교체까지 총 20만 원의 공사비가 나갔다.


서울 와서 사는 동안 계속해서 세스코 서비스를 이용했다. 여기저기 인터넷의 잡다한 서비스를 이용하고 직접 약을 사서 뿌려도 봤지만 세스코의 효과가 제일 좋았다. 두어 달 살아보니 이 집은 유령개미의 천국이었다. 세스코에서 나와 계속해서 소독을 하고 방제작업을 했지만 2년 동안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다만 유령개미 수가 전보다 1/5 정도로 줄이는데 그쳤다. 바퀴벌레는 금방 퇴치하더니 유령개미 앞에서는 영 힘을 쓰지 못하는 세스코였다. 세스코를 통해서 개미가 완전히 없어지질 않자 아내는 또 인터넷을 검색해서 zaps 등 여러 약을 찾아냈다. 그리고 실험해봤지만 약을 놓아둔 때만 반짝하는 효과만 있었지 유령개미는 어디선가 계속해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나마 바퀴벌레가 없는 게 다행이었다.


오래된 집이라 전기 콘센트도 낡은 상태였고 에어컨을 연결하자마자 두꺼비집 스위치가 내려갔다. 헐, 아마도 용량을 감당하지 못해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별 수 없이 전기설비 업자를 불렀다. 리모델링할 때 제대로 배선정리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전선 한 줄에서 많이 분기를 해서 차단이 됐을 거라는 진단을 했다. 배선정리를 마무리하고 에어컨 전용 콘센트를 하나 더 만들어야 했다. 또 15만 원의 수리비가 들었다. 형광등도 낡아 아예 LED 등을 3개 구입해서 아이방, 거실에 달았다. 그나마 이건 쉬운 편이라 내가 직접 할 수 있어 공임을 절약했다.


열쇠, 방범 필름, 도배, 장판, 전기공사 등 이제 할 건 다했다고 생각했다. 아뿔싸, 인터넷 연결을 신청한 지 3일이 지났는데도 아직 전화조차 없다. 고객센터 전화를 하니 조금만 기다려달라 하고 전화는 안 오는 상태였다. 난 계속 기다리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아내는 인터넷을 뒤지더니 답을 알아냈다. 우리가 이용하는 통신사에서 지금 파업 중이라서 기사가 방문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다시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파업 얘기를 물어보자 그제야 죄송하다며 조금 더 기다려달라고 했다. 아마 인터넷 연결까지 10일쯤 걸렸고 출장비만 받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 집에서 산 지 1년이 넘었고 애들은 잘 자라서 두 아이가 모두 유치원을 다니게 됐다. 거실 창문이 집 앞 골목과 마주 보고 있어 될 수 있으면 평상시에도 커튼으로 가리거나 문을 닫아 놓았다. 난 일하느라 집에 없었고 아내는 유치원 등원 시간에 맞춰 혼자서 두 아이를 준비시키느라 바빴다. 더운 여름이라 거실과 안방 창문을 열어 놓았고 먼저 준비를 마친 큰 아이가 창문 밖을 쳐다보았다.

아이 : 아저씨 안녕.

골목 밖에 앉아 있던 어느 사내(30대 추정, 이하 남) : 안녕

아이 : 아저씨 이거 할 줄 알아요? 날 따라 해 봐요. 이렇게

남 : (아이 동작을 따라함, 아마 술이 덜 깬 걸로 추정).....

아이 : (계속 노래 부르며 춤추다) 이거 할 수 있어요? 이건요? 이건 못 하죠? (새로운 동작으로 춤추기)

남 : (갑자기 소리 지르며 다가옴) 문 열어...

아내 : (현관 앞에서 문을 열려다 큰 소리에 놀라며 얼른 문을 잠금) 왜 그래?

(서둘러 창문을 닫고 잠근다)

남 : (계속 문을 두드린다. 소리 지른다)

아내 : (두 아이를 끌어안고 전화기를 든다) 112죠? 이상한 사람이 집으로 들어오려고 해요. 빨리 와주세요.

경찰 : 네, 알겠습니다.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이후 경찰이 출동했고 다행히 별 일 없이 마무리되었다. 그저 술이 덜 깬 30대 남자의 소동으로 일단락됐다. 다만 아내와 아이는 많이 놀라서인지 한동안 골목 밖을 나갈 때면 주변을 둘러보곤 했다. 그때 그 남자가 왜 우리 집 앞 골목에 앉아있었는지 이유는 모른다. 왜 소리 지르며 집 현관과 창문을 두드렸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창에 방범 필름을 붙이고 현관문 손잡이와 자물쇠를 정비하지 않았더라면 경찰이 올 때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는 상상에 맡긴다. 그때부터 아내는 집을 사서 빨리 여길 떠나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사실 이문동 그쪽은 낡고 오래된 집이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절대 전세보증금이 싼 건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우편함엔 여성가족부에서 보낸 성범죄자 신상 통보서가 한 달에 2~3번 꼴로 날아왔고 주변 수 km 이내 성범죄자가 살고 있다는 것에 늘 신경이 쓰인 건 사실이었다.


어느 날 아내의 갑작스레 통보했다.

아내 : “나, 집 안 사면 이혼할 거야”

니 : “허걱, 이건 또 어떡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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