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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유리로 된 벽을 주먹으로 깨다(7Eleven 편의점)

2000. 9월 어느 날 23시~00시 사이

by 거칠마루

제대한 후 쉼 없이 아르바이트를 계속했다. 군대에 있을 동안 나와는 다른 세상을 살아온 선‧후임들을 보며 난 세상을 너무 몰랐구나 자각하게 됐다. 그래서 제대하고 난 뒤엔 여러 가지 일을 해보며 세상에 대한 경험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1가지 일을 오래 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일을 2~3달 정도 경험하는 걸 원칙으로 삼았다. 그중 첫 시작은 주유소, 그다음은 봉제공장, 이번에 쓸 24시간 편의점 야간 알바였다.

막 4달간의 봉제공장 알바를 끝내고 새로운 일을 알아볼 때였다. 원래는 맥도널드나 롯데리아 같은 곳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보건 교육을 받아야 했고 자리도 잘 나지 않았다. 사랑방 같은 구인 광고를 뒤져보았지만 운전을 해야 하는 일이 많아 내 입장에서 접근 불가였다(2002년 여름까지 운전면허 없었음).


집 근처 걸어서 10분 거리에 7Eleven 편의점이 있었다. 일단 일자리 있나 물어보자는 마음으로 무작정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혹시 일자리 있을까요? 조심스레 건네본 말에 사장님은 대뜸 이력서를 가져와 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웬일로 금세 일자리가 구해지나 싶었다. 서둘러 이력서를 썼고 다시 편의점에 가서 사장님께 드렸다. 그 편의점은 사장님과 친척 1분이 번갈아서 주간 근무를 하고 야간은 2명의 알바가 담당하는 구조였다. 때마침 야간 알바 1명이 비는데 다음 주부터 출근할 수 있냐고 물으셨다. 당연히 출근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일하는 시간은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였다. 시간당 1500원, 대략 월급은 55만 원 정도였다.


주로 출근하면 아래와 같은 순으로 일을 시작했다. 매대(각종 물건이 진열된 선반)에 과자, 라면 등을 빈틈없이 채운다 → 냉장식품과 냉동식품을 유통기한이 빠른 순으로 정리(주로 유통기한이 늦을수록 뒤로 보낸다) → 바깥 테이블 정리 및 쓰레기 치우기 → 01시경 본사에서 보낸 물건 수령 후 품목별로 확인, 정리(대략 30분에서 1시간 걸림) → 매장 내 청소로 끝이 났다. 그리고 손님이 가져온 물건을 계산했다. 지금처럼 카드 계산이 일반화되지 않았을 때라 현금을 받고 거스름돈을 돌려주는 걸 실수 없이 처리해야 했다. 주로 팔리는 품목은 라면, 담배, 음료 순이었고 하루 80만 원~100만 원 정도의 매출이 나오는 편의점이었다.

일하는 11시간 동안 다양한 사람들이 편의점에 들렀다. 특히, 길 건너편 특공무술 도장이 있었는데 그곳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관장과 사범은 하루에 1번 이상 담배와 컵라면을 사러 왔었다. 내가 겪은 운동하는 사람들은 다들 예의가 바른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겪었던 운동하는 분들과는 달랐다. 내가 먼저 반갑게 인사해도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했다. 내가 아닌 다른 알바나 가게 사장님이 먼저 인사를 건네도 마찬가지의 반응이었다. 그래서 도장을 운영하는 사람치고는 인격수양이 덜 됐다고 생각했다. 한참 제대하고 혼자서 운동할 때라 어떤 운동이 좋을까 알아보고 있었는데 특공무술 도장의 관장, 사범의 평소 행실을 보고 난 후 저 도장은 바로 걸렀다. 다정한 인사 한 번이 상대에게 얼마큼의 호감을 주는지 저절로 실감할 수 있게 되는 계기였다.

편의점 알바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을 때였다. 23시~00시 사이로 나름 한가한 시간대였다. 특공무술 사범 1명과 일행으로 보이는 여성(20대 후반 추정) 2명이 먼저 편의점으로 들어섰다. 핫바와 컵라면 등 먹거리를 산 그들은 왁자지껄 떠들며 편의점 한쪽에 있는 긴 탁자로 갔다. 그 탁자는 통유리로 된 벽이 있어서 바깥을 보며 간단히 음식을 먹을 수 있어 손님들이 주로 쓰는 공간이었다. 그 일행은 술을 어느 정도 그러니까 기분이 좋은 정도를 넘어 꽤 마신 듯 보였다. 남들 신경 쓰지 않고 여기가 술집인지 편의점인지 구분도 못한 채 먹고 즐기며 떠드느라 바빴다. 그 덕에 다른 손님들도 왔다가 그냥 나가버리기 일쑤였다. 같이 아르바이트하는 형이 조금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때뿐 다시 시끄럽게 떠들었다.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며 편의점에서 산 먹거리를 거의 먹어가는 중이었다. 저것만 다 먹으면 저 사람들 가겠구나, 조금만 참자 되뇔 때였다.

갑자기 통유리로 된 유리벽 바깥에 특공무술 관장이 나타났다. 그 역시 얼굴이 빨개진 걸로 보아 얼큰하게 취한 상태였다. 그 관장은 이미 편의점 안에 들어와 있는 사범 등 나머지 일행을 보더니 바깥에서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는 안에 있는 일행 중 1명의 여성과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옆에서 지켜보니 안에 있는 여자는 바깥에 선 관장 보고 들어와서 같이 먹자는 장난을 치고 있었고 통유리 밖에 선 관장은 니들이 나와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안에 있는 여자가 때려봐, 때려봐 하는 식으로 밖에 선 관장의 약을 올려댔다. 난 거기까지만 보고 같이 일하는 형에게 양해를 구한 후 담배를 피우러 잠시 자리를 비웠다. 더 이상 그들의 장난을 보고 싶지 않았다. 편의점에서 일하다 보니 이상한 손님 여럿을 보는구나 싶었다.


담배를 거의 다 피워갈 무렵, 편의점 어디선가 쾅하고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수류탄이 터진 줄 알았다. 아직 군대 물이 덜 빠져서인지 몸이 먼저 반응했다. 후다닥 일어나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같이 장난치던 두 사람 중 밖에 선 관장이 통유리로 된 벽(두께 1.3cm)을 주먹으로 쳐서 부순 것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마 유리벽을 깨지 못했을 텐데 운동한 사람이라 그런지 남달랐다. 다만 통유리를 깬 결과는 참담했다. 주먹을 내지른 오른쪽 손목 안쪽 부분 5cm*10cm*3~4cm(가로*세로*깊이)의 살이 패인 상태로 흰색 뼈가 보이는 상황이었다. 그 상처에서는 관장의 심장 박동에 맞춰 피가 벌컥벌컥 솟구치고 있었다. 안에서 같이 장난치던 여자는 얼굴에 유리 파편이 튀어 엉엉 울고 있었다. 여자의 상처는 다행히 별 것 아니었지만 관장은 아주 심각했다. 같이 일했던 형은 얼어붙은 채 어쩔 줄 몰라했다. 형에게 다가가 119 신고와 사장님께 전화하라는 부탁을 하고 뒤돌아서 피 흘리며 신음하고 있는 관장에게 갔다. 군대에서 배운 대로 상처와 가장 가까운 지혈점인 팔꿈치 윗부분 10cm 지점을 압박했다. 워낙 상처가 커서 내 손으로 압박한 것 가지고는 출혈양만 줄어들 뿐 완전한 지혈은 되지 않았다. 앰뷸런스가 도착할 때까진 내가 옆에서 지혈을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 관장에게 소리쳤다. “아픈 거 알아요, 119 불렀으니 곧 올 거예요, 조금만 참아요” 관장이 그 말을 알아듣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다친 손을 붙잡고선 아픈 것을 참느라 계속해서 신음소리만 내고 있었다.


이윽고 사장님과 경찰, 119 앰뷸런스가 약속이나 한 듯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경찰은 사고조사를, 사장님은 소금물을 만들더니 피가 흘린 곳에 부었다. 그래야 피가 잘 빠진다면서. 난 구급대원에게 다친 관장을 인계하고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경찰과 소방이 철수하고 난 뒤, 사장님은 우리에게 다시 어찌 된 일인지 물으셨다. 깨진 유리벽은 비닐과 종이 포스터로 막았다. 수리하는 데 2~3일 정도는 걸린다고 했다. 나중에 들은 걸로는 다친 관장은 신경 손상이 심해 아마도 손을 잘 쓰지 못할 거라고 했다. 아무리 결과가 좋아야 다친 손으로는 운동은 고사하고 밥이나 겨우 떠먹을 정도라는 말을 사장님께 들었다. 술 취한 채 그저 주먹 한 번 내지른 결과 치고는 후유증이 컸다.

이 일을 겪은 후 응급처치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갖게 됐다. 그 뒤로 응급구조과나 간호학과 학생들과 얘기할 기회가 생기면 그때 내가 했던 지혈이 맞는 건지,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없었는지 물어보고는 했다. 아, 그렇다고 해서 그 일 때문에 소방관을 하게 된 건 아니었다. 당시 내게 공무원은 관심사 밖의 일이었다. 그래도 다친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도와줬던 경험은 내게 큰 자산으로 남아 긍정적인 모습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 그리고 술을 마시던, 마시지 않던 주먹은 함부로 쓰지 않아야 한다는 걸 마음 깊이 새기게 됐다.

진짜 이런 경험은 아무나 하기 쉽지 않은데, 나는 왜 이런 경험을 하게 될까? 궁금증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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