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x저작권위원회 삽화 공모전
이미 성인이 되어서도 동화를 읽는다. 여전히 익숙하면서도 특별한 울림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릴 적의 감상에서 시작된 공명이다. 잔잔히 몰려오는 추억에 잠겨 다시 활자를 뜯어보자면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발견하고 새로운 감회에 젖는다. 동시에 처음 책을 접한 유년기로부터 성장했음을 새삼 자각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순수와 동심을 그대로 상기시키는 것이 작가로서의 소명이라 말하듯, 안데르센은 많은 명작동화를 펴냈다. 꾸준히 사랑받는 작품 중에서도 <눈의 여왕>은 그가 의식한 의무감을 가장 잘 드러내는 듯하다.
만물을 악하게 비추는 마법의 거울이 하늘로부터 떨어진다. 그것이 산산이 조각나버린 시점에서 인세(人世)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는 사악한 요정들의 실수로, 그 파편이 우연히 어린 카이의 눈과 가슴에 박히자 세상은 부정적으로 뒤틀려 보인다. 못된 행동을 일삼던 소년이 마침내 눈의 여왕에게 홀려 사라졌기에 겔다는 친구를 되찾고자 모험을 떠난다.
어린 시선을 벗어나니 더 다양하고도 새로운 내용들이 보였다. 카이가 눈의 여왕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낀 이유가 궁금했고, 그 외에는 누구도 그녀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새삼 주목했다. 그녀와 대립하는 ‘봄’을 닮은 존재로서 겔다를 인식했음에도, 간과할 수 없는 눈의 여왕의 존재감이 악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렇게 두 아이의 성장 이야기 곳곳에서 발견한 요소들과 작가가 암시하는 ‘영원’의 표상을 엮어 동화를 재해석했음을 서두에 밝힌다.
카이는 눈의 여왕을 바라보았어요. 눈의 여왕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이보다 더 지혜롭고, 이보다 더 사랑스러운 얼굴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였죠. 이제는 더 이상 창밖에서 손짓하던 때처럼 얼음으로 만들어진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어요. 카이의 눈에 눈의 여왕은 완벽했고, 전혀 무섭지 않았어요. (중략)
깨진 거울 조각이 소년의 시선에 녹아들고 비치는 세상이 그를 가둔다. 순진무구한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드는 무렵 겪는 방황은 어른처럼 행동하려 하지만 아직은 한없이 어릴 뿐이기에 드러나는 편협함이다.
때마침 겨울의 작은 결정이 땅에 내려앉기 시작하며 하얀색을 덧씌운다. 이내 눈의 여왕으로 빚어진 그것은 이미 박힌 거울 조각에 반영된 새로운 세상이었다. 에워싸는 추위가 마치 ‘영원’ 속에 모든 것을 가둬 버리려는 듯했다. 만물을 압도하는 여왕이 어느새 소년의 시선 끝에 맺히고 가슴에 스며들었다. 모든 생명의 흐름을 꽁꽁 얼리는 순간은 미성숙한 아이가 보기에 완벽함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차가움으로부터 완전무결함이 탄생했으리라 짐작한 것이다.
매서웠던 겨울의 기세가 온기에 잦아들 때쯤 겔다가 찾아왔다. 흘러내리는 소녀의 눈물은 참 따스해서 차갑게 박혔던 거울 파편을 녹였다. 그것은 마치 지나간 계절의 부산물처럼 카이에게 남아있었지만, 순환의 운명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여왕도 시간 흐름에 맞춰 떠나버렸기에 가장 완벽해 보이는 순간을 영원토록 지속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찰나의 얼음 공간에 많은 것들이 보존되어 되살아나길 기다린다. ‘오렌지와 포도가 더 잘 자라도록 흰색을 칠해주러 산으로 떠나는’ 여왕은 계절의 순환마다 과일의 성장을 기꺼이 돕는다. 그녀는 눈 아래에 정체된 생명이 움트는 봄을 맞이할 수 있도록, 그때 활짝 피어날 힘을 비축하도록 보살피는 존재였다.
네가 그 모양을 짜 맞추면 널 자유롭게 풀어줄게. 그리고 온 세상을 너에게 줄게. 새 스케이트도 주고.
여왕은 카이를 떠나기 전에 얼음 퍼즐로 ‘영원’이라는 낱말을 맞춰보라는 과제를 냈다. 정답을 찾아 자유로워지기 전까지는 추위에 혼자 남아 고뇌하는 시련을 겪어야 한다. 미끄러운 빙판 위를 이동할 수단이 있어야 또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발이 묶인 겨울 성을 벗어나 더 거대한 세상을 향해 나가야만 한다. 다양한 경험은 성장 과정에서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선 스케이트가 필요했다.
한편 겔다는 홀로 남았을 때 그 말의 뜻을 이해했고, 그것이 얼마나 많은 의미를 가졌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고독을 극복하기 위해 카이를 찾아 나섰으나 여정은 아이에게 너무나 험난했다. 봄처럼 생기 있고 용감한 소녀는 많은 생명에게 사랑받아서 동식물과 산적의 딸 등 여러 존재로부터 도움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를 도왔던 핀족 여자의 말처럼 카이를 구할 힘은 소녀에게 잠재해 있었고, 그 본질적인 깨달음은 그녀 스스로 얻어야만 했다. 그것만은 어느 누구도 도와줄 수 없었다.
이처럼 각자 역경들을 겪으며 성장했을 우리에게 작가 안데르센은 당부하고자 한다. 그의 메시지는 마지막 장에서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지 않다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는 성경 구절로 구체화된다. 순수했던 어린 시절 추억과 마음이 남아 있다면 하느님의 나라에, 그 ‘영원’의 세계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불완전한 인간은 그 소중한 것을 쉽게 잊는다. 이를 되살릴 수 있도록 진정한 ‘어른’으로서 여왕은 아이의 곁에 있었다. 그리고 성장한 소년과 소녀의 선택에 결말을 맡긴 채 떠났다. 추위로 다른 생명의 성장을 다져 주기 위함이다. 이것이 <눈의 여왕>을 통해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어른’들의 역할이다.
여왕은 소년의 성장을 예상했지만 여전히 어린아이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그녀가 낸 수수께끼는 카이의 가슴속에 머무를 ‘스케이트’의 가치가 단순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두 아이의 재회와 동시에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순간, 비로소 흩어진 조각이 완성된다. 얼음 조각들이 이때를 축복하듯 춤추며 짜 맞춘 것이다. 이렇게 영원’과 ‘성장’의 연결지점에서 끝나는 이야기가 다소 모순적이다. 하지만 작가는 독자들이 그 사실로부터 어떠한 깨달음을 얻게 되리라 확신한다.
자, 이야기를 시작합시다. 이 이야기가 끝날 때쯤 우린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거예요. (Now then, let us begin. When we are at the end of the story, we shall know more than we know now.)
<눈의 여왕> 첫 문장에서 그는 이미 예고했다. 어른이 아이들에게 조언하듯, 작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 ‘성장 과정’을 보여줄 것임을 말이다. 이미 자라 버린 어른들에게는 스케이트가 유용한 이동 수단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것을 타고 놀았던 어릴 적 추억을 즐거움과 함께 상기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렇게 언제나 동심을 간직할 수 있다면 우리의 순수는 ‘영원’하다고 이야기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