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지바고>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스트렐리니코프가 ‘파벨 안티포프’였던 시절, 순수하고 여린 그는 자신의 열정을 온전히 라라에게 바친다. 그러나 결혼 직후 그녀가 고백한 코마로프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 그것으로 말미암은 육체적 타락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맹목적인 사랑은 갈 곳 없는 분노로 바뀌었고 이내 그것은 코마로프스키와 같은 악인들이 활개 치던 구시대를, 나아가 보편적인 악을 향한다. 라라가 말하듯이, 그는 ‘사회악을 가정의 현상으로 오인하는 숙명적 오류를 범한’ 것이다.
라라와 가정을, 그들을 향한 사랑을 지키고자 했던 파벨은 지바고와 다른 방향으로 그의 의지를 실현했고 격동의 시대 속에서 ‘개인의 생존과 부활’을 꿈꿨다. 1차 세계대전 참전을 시작으로 그의 복수극은 잇따른 혁명까지 지속된다. 혁명에의 집념은 도덕적 신념에서 피어났으나 극에 달했고, 종전 이후 죽은 것으로 알려진 파벨은 ‘학살자, 총살자’, ‘스트렐리니코프’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부활했다. 결국 ‘역사’에 항거를 넘어서 목적 달성을 위해 어떤 잔혹한 행위도 서슴지 않았지만, 혁명이 완성된 직후 수뇌부와 가까웠던 이유로 정부의 숙청 대상이 된다.
스트렐리니코프의 신념은 너무 강해서 결국 그 자신 또한 시대의 보편성과는 동떨어진 인물이었다. 그는 ”다른 혁명가들과 같이 미치광이였지만, 그의 광태가 이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가 겪어온 시련에서였다는 점”에서 그들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의 생은 탄압으로부터 도피 끝에 자살로 마무리된다. 당대는 강한 개성과 의지를 갖고 적극적으로 투쟁하는 개인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스트렐리니코프의 비극적 운명이 그 현실을 반영한다. 지바고와 라라와는 이러한 그의 운명을 예견하고, 동정한다. 그가 파멸하는 이유는 “악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궤도를 벗어난 기차와 같은 조절할 수 없는 메커니즘 탓이다.”
여주인공 라라는 정 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두 주인공의 유일한 접점이자,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여인이다. 그녀의 강인하고 아름다운 생명력은 새하얀 설원 위에 홀로 우뚝 솟은 마가목 나무의 붉은 열매로 형상화된다. 파르티잔으로부터 탈출을 감행하던 지바고가 이 신비로운 나무를 발견하고, 그로 하여금 “나의 마가목 아가씨” 라라를 떠올린다.
그녀는 낡은 제도를 증오하던 주변인들로부터 자연히 진보적 가치관을 접한다. 그 영향으로 혁명이 성공한다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양장점을 운영하던 그녀의 어머니가 고용인들의 총파업 참여에 상심할 때, 라라는 이렇게 위로한다.
“엄마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잖아요. 악의가 있어서 하는 짓은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일 거예요. 지금 주위에서 하고 있는 일은 인도적인 일을 위해서, 약자를 보호하며 부녀자를 위해서 하는 일이에요. 그래요, 그것을 부인하지는 마세요. 그 덕택에 언젠가는 우리들도 잘살게 될 날이 올 테니까요.”
라라가 바라는 것은 이처럼 혁명의 지극히 이상적인 결과였다. 그리고 그녀는 이상을 위해 어느 정도 자기희생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숭고하고 강한 정신을 지녔다. 하지만 현실은 어딘가 뒤틀려 어느새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우리’만 존재할 수 있는 국가에서 ‘개인’은 너무나도 억압되었고, 마침내 ‘전통적으로 자리 잡힌 모든 것, 일상생활과 인간의 보금자리와 질서에 관계되는 모든 것이 사회 전체의 변혁이나 개조와 함께 무너져’ 버린다. 참전한 남편의 행방을 쫓아 스스로 간호원이 되어 전선에 뛰어든 그녀는 이를 깨닫는다.
그럼에도 그녀는 현실 속에서 여전히 ‘혁명의 이상’을 찾으며, 실현 가능성을 믿는다. ‘개인’의 행복에서 비롯하는 ‘우리’의 행복, 그것을 바라면서도 회의감에 현실 도피를 선택하는 지바고와 다른 면모다. 어릴 적부터 알던 친구이자 혁명가로 활동하는 갈리울린에 대해 이야기하는 라라는 ‘카자흐의 대위나 경찰 대장과 같은 속물과는 다르다’며, 그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의 존재 덕분에 라라는 혁명에 대해 지바고와 다른 견해를 가지게 된다. “혁명은 그녀의 가까운 곳에 있었으며, 혁명의 내부에서 보면 이해되는 일이 여러 가지 있다”라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여전히 인류의 힘, 시대를 바꿀 수 있는 개인의 힘을 통한 ‘진정한 혁명’을 믿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가혹한 운명에 맞서 온 라라는 파샤처럼 혁명에 대한 뜨거운 열의를 지녔으면서도, 지바고와 같은 이상향을 꿈꾼다. 이런 그녀를 두 사람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수의 발을 씻기던 막달라 마리아로, 개인의 아픔을 보듬는 자애로운 어머니로 형상화되는 라라는 당시 존재하기 힘들었던 아름다운 혁명의 ‘이상’과도 같다. 비극적으로 끝난 사랑 이야기처럼, 그것에 도달하기에 지바고와 스트렐리니코프(파샤)는, 당대 러시아의 현실로서는 불가능했다.
참고: <의사 지바고> 도서출판 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