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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은 Mar 15. 2023

선생님은 나쁜 사람이야.


근무 두 달 차. 학교가 방학한 뒤로 돌봄교실은 오전 일찍 문을 연다. 내가 하는 일은 주로 이렇다. 오전8시 50분에 출근해 돌봄교실 1반의 문을 열고 바닥과 책상을 청소, 소독한다. 선생님은 10시 반 출근이기 때문에 그 동안 오는 아이들을 자리에 앉히고 아침 공부를 시킨다. 문제집 2장. 오전일찍 오는 아이들은 보통 두 명에서 네 명. 평화로운 시간이다. 인사성 밝은 2학년 태성이가 먼저 들어온다. 태성이보다 조금 늦게 오는 아이는 1학년 기현이. 인사할 때면 늘 눈썹을 살짝 울상 짓고 인사한다. 대부분 인사를 안하고 들어온다.

 

태성이는 엄마가 시킨 대로 기탄 수학 4장을 푼다. 기현이의 경우 한자 공책에 ‘가나다라’한글을 열 번씩 쓴다. 기현이가 한글을 다 쓰게 하는 일은 쉽지 않다. 삼 분에 한 번씩 한숨을 푸욱 내쉬며 턱을 괸다. 

하지만 돌봄 교실 공부 시간의 목적은 사실 공부보다는 아이들이 가능한 한 가만히 앉아 있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 선생님도 잠깐의 평화를 누릴 수 있으니까. 


그 뒤로는 독서 시간. 책 읽기를 좋아하는, 혹은 별 불만 없이 책을 잘 읽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책장을 펼치자마자 온몸에 좀이 쑤시는 아이들이 있다. 태성이는 전자고 기현이는 후자다. 

독서 시간을 어떻게 지도하는가는 선생님마다 다르다. 반듯하게 앉아 책을 꼼꼼히 읽는 것만 독서로 인정하는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있기만 하면 별 말 안 하는 선생님이 있다. 이것도 쉬운 건 아니다. 바르게 앉은 아이가 옆에 드러누워 만화책을 읽는 아이를 보면 왜 쟤만 저렇게 읽냐고 항의하니까(돌봄 교실의 핵심은 공정성과 형평성이다. 아이들은 예리하고 혼자만 편한 아이를 가만 두지 않는다!)


난 조용하기만 하면 책 읽다가 코를 파 뭐라고 하지 않는 선생님이다. 물렁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와 아이들만 있을 때, 수빈이는 누워 다리를 꼬고 태성이는 만화책을 읽는다.

방학 시간표에 따라 오후에 태성이는 돌봄 2반으로 올라간다. 돌봄 1반에는 기현이와 나만 남는다. 이제부터 난이도가 높아지는 일. 놀이 시간. 


선생님들은 기현이를 반기지 않는다. 방학 시간표를 짜는 동안 돌봄 1-3반 선생님들은 과연 누가 쉽지 않은 아이를 맡을 것인가를 두고 룰렛 돌리기를 한다. 각 반마다 한두 명씩 쉽지 않은 아이들이 있다. 1학년 기현이도 그 중 하나다. 강 선생님은 돌봄 2반 선생님과의 긴 논쟁 끝에 기현이를 방학 동안 돌봄 1반 학생으로 넣었다. 

기현이와 나는 레고 블록을 가지고 놀았다. 커다란 블록 상자를 쏟아놓고 기현이가 하자는 대로 집과 로봇을 만들었다. 사실 선생님은 블럭을 건들지 말고 맞장구만 쳐주는 게 제일 좋다. 아이들은 블록에 자기만의 방식이 있기 때문에 어설프게 건드렸다간 싸늘한 잔소리를 듣기 마련이다(메가블록 로보트에는 바퀴 안 달렸는데요. 같은) 크고 높은 목소리로 화려하게 맞장구를 쳐 줄 수록 아이들은 좋아한다(물론 이것도 진심이 아니라는 게 티나지 않을만큼 잘 조절해야 한다). 오늘 기현이는 네 명의 가족을 만들었고, 가족 한 명마다 로봇 하나를 주었다.  나는 엄마 로봇을 잡고 신나게 놀았다. 기현이도 신났다. 기현이는 로봇을 이용해 집에 불을 냈고 집이 (상상 속에서) 활활 타는 걸 보며 깔깔 웃었다. 나중에 동생 로봇이 울었다. 동생 로봇이 연료 탱크를 잘못 건드려 불이 났기 때문이다! 아빠 로봇이 화를 냈고 엄마 로봇의 차례였다.


- 엄마 로봇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상상 속에서) 활활 불타는 레고 블록을 보면서 엄마 로봇을 어떻게 써먹을지 영혼 없는 고민을(보통 기현이가 답을 정해줄 테니까) 했다.


-매를 맞아요!

기현이가 동생 로봇을 들고 외쳤다. 그러더니 다른 로봇을 동생 로봇을 마구 때렸다. 

-아니야, 동생 로봇은 매를 맞지 않아. 어린애는 매를 맞지 않아.

난 당황해서 엄마 로봇을 들고 말렸다. 

-아네요! 매를 맞아요. 

- 불이 난 건 실수야. 그건 잘못 아니야. 동생 로봇은 매를 맞으면 안돼.

난 계속 기현이를 설득했고, 기현이는 동생 로봇을 한참 때리더니 입이 댓 발 나왔다. 난 기현이가 저렇게 울상인 이유를 모르겠다. 

기현이의 동생 로봇은 너무 맞은 나머지 부서졌고, 기현이는 이내 로봇들을 다 치우고 다른 놀이를 하려고 새로 블록을 조립했다. 하지만 놀이 시간은 이미 이십 분 전에 끝났다.


강 선생님이 나를 불러서 나는 급하게 일어났다. 돌봄 1반은 곧 2층으로 이사할 것이기 때문에 이삿짐을 싸야 할 일이 많았다. 기현이가 나를 붙잡았다.

-저랑 더 놀아요!

-선생님 가서 일해야 해. 기현이 혼자 놀 수 있어.

-안돼! 저랑 더 놀아요! 

기현이가 내 옷소매를 붙잡고 늘어져서 옷이 쭉 늘어났다. 아무려나 선생님의 보조인 나는 책장으로 가 이삿짐 정리를 했다. 책장 속 책을 다 꺼내 낡은 건 버리고, 쓸만한 건 노끈으로 묶어놓는 일이었다. 딱딱한 책 무게가 상당해 마음같아서는 기현이랑 노는 게 더 편했다. 한동안 열심히 책을 묶고 있는 데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은 나쁜 사람이야.

기현이가 부서진 로봇들을 가지고 날 보고 있었다. 얼굴은 울상하고 입까지 댓 발 나온 채 딱 내가 보이는 장소에 로봇을 들고 앉아 계속 같은 말을 했다.

-선생님은 나쁜 사람이야…


나와 놀고 싶다는 걸 표현하는 새로운 기법이었다. 처음에 웃으면서 듣던 나는 뒤에서 십오 분이 넘도록 같은 말을 점점 더 크게 듣자 신경에 거슬리기 시작하더니 땀이 조금 났다. 어떡하란 말이지? 놀아주고는 싶어도 강 선생님이 시킨 일은 해야하고, 강 선생님이 애한테 저런 말 듣는다고 나 일 못한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나 나쁜 사람 아닌데 쟤가 대체 왜 저러지? 정말 쉽지 않다…뭐 이런 생각으로 얼굴에 열이 올랐다. 중간에 강 선생님이 기현이를 말렸지만 기현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 말을 오십 번 정도 듣다보면 나도 입이 댓 발 나온다. 옹졸한 나는 아까까지 재밌게 놀던 걸 있고 기현이에게 마음이 틀어지고 있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강 선생님도 스트레스가 올라왔는지 내 뒤편에서 웅얼거리는 기현이를 2반 전통놀이 프로그램에 보내버렸다. 기현이는 한숨을 푹푹 쉬며 나갈 때까지 선생님은 나쁜 사람이야를 놓지 않았다.

짧은 휴식 시간. 강 선생님은 커피를 마셨다.

-쉽지 않아요. 기현이도 선생님들이 다 너-무 힘들다고 안 받고 싶다 그래서 이번 방학에는 저희 반에 넣긴 했는데.

난 여전히 책 정리 중이다.

-기현이 아버지가 성질이 장난 아니에요. 여기 돌봄교실 신청할 때 서류 때문에 문제가 있었는데 아주, 학교까지 와서 성질을 있는대로 부리는 게, 깜짝 놀랐다니까요. 다음에도 그런 식이면 아예 안 받아버리던지 해야지. 


기현이 어머니는 베트남에서 왔다. 돌봄교실은 다문화 가정보다도 맞벌이 가정을 우선하기 때문에 어머니도 어딘가에 재직하고 있다는 증명서가 필요했다. 기현이 아버지는 서류 문제로 학교에 봐서 성질을 부리다 이내 인근 양말 공장에서 아내의 증명서를 떼 왔다. 그녀가 정말 거기서 일하는지는 의문스럽지만 아무려나 기현이는 그렇게 돌봄 교실에 들어왔다. 학교 선생님에게도 가감없이 성질을 내는 기현이 아버지가 집에서는 어떤 아버지려나. 나는 당연히 매를 맞는다고 말한 기현이가 가여웠다. 동시에 그 애가 전통놀이 프로그램에서 최대한 늦게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다. 돌아오면 그 애를 어떻게 대해야 할 지 알 수 없었고, 분명 또 내 혈압을 오르게 할 텐데 그 양면적인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 지도 몰랐다.

그날 기현이는 나한테 삐져서 내게 인사하지도 않았고, 내 말을 듣지도 않았다. 아이들이 싫다 해도 선생님은 아이를 챙겨야 한다. 난 나만 보면 고개를 모로 돌리고, 또는 나쁜 사람이야!를 외치며 내 손을 뿌리치는 기현이의 간식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가방을 챙겼다. 이제는 혈압도 오르지 않고 그냥 진이 빠졌다. 아이 한 명인데도 쉽지 않구나…태성이는 조용히 하교했다. 그날 태성이가 평소보다도 너무 말을 잘 들어서 난 가기 전에 태성이를 한 번 안아주고 보냈다. 기묘하게도 한 아이가 나를 힘들게하면 다른 한 아이는 그걸 메워주려는 듯  착한 아이가 되는 경우가 있다. 태성이는 이 날 무척 바르고 착했다.

하교할 때는 아이들 손을 잡고 하교한다. 뛰어나가거나 잃어버리는 걸 막기 위해서. 당연히 거절할 줄 알고 기현이에게 손 잡고 가자 말했다. 기현이는 내 손을 잡았다. 내가 떠드는 동안 기현이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손만 잡은 채 운동장을 걸었다. 나한테 화가 풀렸나? 운동장 끝 정자에 기현이의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걸으시는데 하교 시간에 맞춰 나오는 게 쉽지 않아 보이신다. 아무려나, 할머니가 보이자 기현이는 내 손을 놓고 달려갔다.


-뛰지 마~그리고 기현이 잘 가~

나는 달려가는 조막막한 기현이의 뒤통수에 대고 외쳤다. 기현이는 할머니 옆에 앉아 가방을 맡겼다. 교실로 뒤돌아 가는 내 등 뒤로 기현이가 운동장이 다 울리도록 외쳤다. 세 번이나. 

-선생님은 ---- 나쁜 사람이야~~~~!!!!!

그래. 나 나쁜 사람이다. 너는 집에 가서 편히 쉬거라. 맞지도 말고 울상 짓지도 말고. 난 몸을 돌려  기현이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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