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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은 Apr 05. 2023

도시락

먹이는 일 1

코로나 초기에는 급식 배식을 하지 않아서 아이들이 도시락을 싸 왔다. 그때는 남은 음식이야 아이들이 도시락에 다시 담아 가져가면 됐으니 음식 먹이는 일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할 일은 시간 맞춰 아이들을 줄 세운 뒤 화장실에 보내고, 누가 화장실에서 물장난 치지 않는지 확인하고, 자리에 앉힌 뒤 도시락을 먹는 내내 교실에서 말하지 않게 하는 일이었다. 물론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점심 시간에 아이들은 밥도 먹도 마스크도 벗는다는 생각에 신나서 특히 흥분한다. 화장실에서 오지 않는 아이를 확인하기 위해 잠깐 눈을 뗐다간 마스크를 벗은 아이들이 교실 안을 종횡무진 뛰어다는 풍경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도시락을 싸오지 않는 아이는 늘 있다. 항상 과자 한 봉지를 점심이라며 들고 오는 사학년 현민이도 있다. 다들 맞벌이일 게 분명한 부모님의 바쁜 일상도 이해하고, 과자 한 봉지로 충분하다는 현민이도 이해하지만 (나 역시 현민이 나이에 많은 끼니를 그렇게 때웠으니까)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다들 도시락을 먹는 데 구석에서 혼자 과자로 끼니를 때우게 두고 싶지 않다. 


김 선생님의 서랍에는 그런 상황을 위한 비상 식량이 있다. 원래는 햇반이 있었으나 현민이와 몇몇 아이들이 햇반을 다 비웠고 이젠 신라면 컵라면만 남았다. 물론 김 선생님의 개인 물품이다. 선생님이 라면을 먹는 건 한번도 보지 못했지만. 

선생님이 사비로 아이에게 음식을 주는 걸 들켜서는 안 된다. 난 증거 인멸을 위해 소란스런 교실을 현민이를 데리고 조용히 나간다. 오후까지 비어 있는 다른 반 교실 문을 열어놓고 학교 본관에 있는 정수기에서 라면에 뜨거운 물을 받는다.


“뜨거운 물은 위험하니까 선생님이 할 거야. 조심해야 해.”


현민이는 말수가 적기 때문에 나를 따라 정수기에 갔다 교실까지 고개만 끄덕이면서 조용히 따라온다. 난 이 일을 몇 번 하면서도 어쩐지 우습다. 어차피 현민이는 사학년이고 컵라면이라면 많이도 만들어 먹어봤을 텐데 이제 와서 어린 애는 뜨거운 걸 만지면 안 된다니. 그래도 현민이 손은 나보다 한참 작기 때문에 맡기기엔 아주 불안하다. 젓가락이 안 보이면 빈 교실 서랍을 뒤져 이유는 모르겠지만 늘 많은 젓가락을 찾아낸다. 삼 분 동안 기다렸다 현민이는 컵라면을 먹는다. 컵밥은 저번에 먹었고, 이게 마지막 라면이다. 김 선생님이 또 채워 놓으실려나. 언제까지 선생님의 사비로 아이들을 먹일 수는 없는 데 말이다. 


현민이가 후루룩 먹는 동안 난 조금 떨어져 앉아 불 꺼진 교실에서 잠깐 휴식을 누린다. 가끔 핸드폰도 하지 않고 현민이가 동그란 머리를 움직여 라면을 먹고 있는 걸 구경하기도 한다. 배도 고프고, 현민이가 열심히 먹는 걸 보고 있으니 좋다. 내가 한 무리의 아이들을 김 선생님에게 맡기고 여기 있는 건 현민이를 혼자 둘 수는 없고 증거 인멸도 확실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십 분이면 컵라면은 다 먹고 나는 옷 속에 젓가락과 라면을 숨긴 뒤 쓰레기장으로 간다. 배가 불룩한 모양으로 걸어가고 있으면 현민이가 슬쩍슬쩍 선생님들이 오나 망을 본다. 난 사실 이 때가 제일 재밌다. 음식물 쓰레기통에 라면 찌꺼기를 버리면 완전한 증거 인멸이다. 


“아무도 못 본 거 확실하지?”


사실 누가 본다고 해도 그렇게 그냥 지나칠 것이다. 돌봄교실에서 규칙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관심같는 관리자는 아무도 없다. 관심이 많았다면 도시락이 없는 아이들을 위한 식료품 칸이 이미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 선생님이 아니라도 어느 돌봄 반에나 마지막 서랍과 냉장고에는 숨겨둔 비상 식량들이 있다. 끼니가 필요한 아이들이 있을 때를 위한 것이다. 과자 때신 라면, 라면 대신 빵, 빵 대신 밥. 일단 잘 먹이고 싶은 마음. 먹여야 한다는 책임감. 이게 돌보는 마음의 핵심인가. 현민이야 그게 왜 중요한지 모르겠지만, 알아주건 몰라주건 김 선생님의 서랍은 채워지고 또 비워진다. 


“내일은 과자 말고 빵 같은 거라도 가져 와.”


방금 먹은 게 마지막 컵라면이라는 걸 아는 내가 현민이에게 말했다. 

현민이가 네, 하고 작게 대답하는 데 아무래도 또 과자를 들고 올 것 같은 예감이다. 그러면 김 선생님은 텅 빈 서랍을 보며 어떻게 해야 하나 또 고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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