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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은 Mar 25. 2023

우리 부모는 어떤 사람

학부모들이 만나면 아이들 얘기를 하듯이, 아이들도 모이면 부모들 이야기를 한다. 저학년일수록 그렇다. 아직은 부모와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내서 그런가. 


1,2학년 아이들이 푹신한 매트 위에 앉아 담소를 나누다보면

“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라는 사랑스러운 질문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엄마는 햄버거 먹지 말라 하는데 아빠는 나랑 있으면 맨날 라면 끓여줘서 좋아.”

상당히 구체적인 이유도 있고(과연 라면을 맨날 끓여주는 게 좋은 일인가는 생각해볼 문제다)

옆에서 엄마보다 아빠를 좋아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는 승진이도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난 우리 엄마가 나보다 더 좋은데.” 


물론 이야기는 아주 쉽게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도 한다.

발단은 1학년 윤호가 어제 회초리로 맞았다는 이야기.

“난 옛날에 옷걸이로 맞은 적 있는데.” 민규가 빵을 먹으면서 말한다.

“난 이만한 막대기로도 맞은 적 있어!” 예은이도 목청을 높인다.

“내가 하지 말라 그랬는데 엄마가 막 쫓아와서 때렸어!”민규가 말랑한 제 살에다 대고 시범을 보인다.

물거품같은 여덟 살 몸에 때릴 데가 어디있나…아이들이 대결이라도 하듯 더 심하게 맞은 걸 자랑하는 걸 보는 내 마음은 씁쓸하기만 하다. 


1학년이 일화를 늘어놓는 선에서 끝난다면 2학년은 조금 더 발전한다. 

2학년 태훈이와 호원이와 민혁이도 푹신한 매트 위에 앉아 담소를 나눈다. 방금 전까지도 선생님(나)의 제지를 무시하고 열심히 교실을 뛰어다녔다. 이 녀석들이 지치기는 하는구나. 목청 큰 1학년과 달리 2학년은 속닥거린다. 이제 아홉 살에게는 자기들만의 세계가 있다.


이야기의 내용은 역시나 부모들. 


“호원이 얘네 아빠 되게 좋아. 착하셔.” 태훈이가 호원이네 아빠를 만났나 보다.

“우리 아빠는 나 안 때려.” 태훈이가 이어 말한다.

“우리도 잘 안 때려.” 민혁이가 말한다.

“아냐, 너 저번에 니네 아빠가 때려서 엉덩이랑 다리에 멍 엄청 크게 들었잖아.” 태훈이가 이의를 제기한다.

“아니, 그건, 내가 뭐 말을 좀 안 들어서 그런거고…원래는 잘 안 때려.” 민혁이가 발톱을 주무르면서 얼버무린다.

뛰어다닐 때는 한 마리의 사악한 원숭이같더니 민혁이가 저렇게 침울해 하기도 하는구나.

“한 번을 때려도, 때리는 데 어떻게 좋은 사람이야?”

태훈이의 기준은 확실하다. 

“그러니까 호원이네 부모님은 좋은 사람이고, 우리 엄마아빠는 조금 좋고, 민혁이 너네 부모님은, 음.”

“조금 나빴어.” 호원이가 말한다.

“조금 나빴지.” 민혁이가 동의한다.


아이들의 논의는 진지하다. 우리 부모는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앞으로도 계속 아이들을 헷갈리게 할 질문. 나야 여기서 부모 편을 들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으므로 다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애 때리지 않는 좋은 사람이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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