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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은 Mar 25. 2023

맞는 건 아프다

잊기 쉬운 사실. 


아마 내가 여자고 대학생이라 돌봄교실에서 덜컥 일하게 되긴 했지만, 내게 아이들 돌보는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이게 굳이 배울 필요 없는 ‘그냥 하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물론 당연히 그냥 하면 안 된다. 서류 더미라면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예측불가 조삼모사이므로 늘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한다. 통제하되 간섭하지 말기, 간섭하되 방해하지 말기…뭐 이런 식으로 아이들 돌보기에는 아주 미묘한 선을 잘 잡고 있는게 중요하다. 다들 눈치껏 하라는 분위기여서 나는 혼자 집에서 티비 프로를 보며 알아갔다. 금쪽같은 내새끼와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개 행동 교정 프로그램이 왜 아이들 돌보는 데 도움이 되냐고 묻는다면 넘치는 에너지와 남의 말을 안 듣는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조금 있다고 하겠다. 

금쪽같은 내새끼를 보다보면 아이들을 모범적으로 키우는 방법만 알면 멋진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거 같지만 현실은 좀 더 복잡하다. 좋은 돌봄을 주고 싶은 내 마음과 달리 나도 모르게 기이한 권력 관계의 일부분이 되어 있곤 하다. 


방과후 연계형의 희수가 영어 공부 시간이 끝나고 내게 안겨 말했다.

“선생님, 저 영어 완전 잘하죠. 천재죠?”

안타깝지만 4학년 희수는 아직 알파벳도 다 알지 못한다.

“선생님은 거짓말은 못 해, 희수야.”

희수가 내게 몸을 확 떼고 말했다.

“어떻게 저한테 그런 말을 해요? 이제 저희 엄마가 교무실 가서 얘기하면 선생님 혼나요. 엄마가 막 교장썜한테 얘기하면 선생님 저한테 사과해야 해요. 저희 엄마 장난 아니에요.”


갑자기 김 선생님이 목청을 높히면서 희수를 불렀다. 희수를 불러 감히 대학생 선생님에게 겁을 줄 수가 있느냐, 네가 무어라도 된 줄 아느냐하며 혼쭐을 내었다. 나야 농담 하나 했다고 잘려도 뭐 어쩔 수 없다만, 희수가 너무 혼나는 걸 보고 있으니 내가 다 민망했다. 최근 희수의 공부 태도는 좋지 않았다. 문제 하나를 푸는데 오분 동안 다른 곳을 보고 있었고, 내게 짜증을 냈다. 오전에 저학년 교실에서 닳고 닳은 나는 아무려나 머리에 열이 뻗쳐 오르는 걸 가라앉히며 공부 시간을 끝냈다. 김 선생님은 전부 보고 있었는지 희수에게 말했다.


“너, 오늘 선생님이 너희 어머니한테 다 말할 거야. 누가 선생님한테 그런 버르장머리 없는 태도로 공부를 배워?”

난 사실 아이들이 내 머리 위로 기어올라 축구를 해도 상관없다. 그러는 동안 누워 있기나 하고 싶다. 부모님한테 말한다고 뭐가 달라지랴. 


다음주 월요일, 연계형 교실에 가니 희수는 여전히 발랄했다. 공부 시간이 되자 먼저 영어 노트를 꺼내고 날 기다렸다. 웬일이람. 김 선생님이 지나가면서 킬킬 웃었다.


“김희수, 너 선생님이 문자보고 아빠가 뺨 때렸다면서?”


난 깜짝 놀랐다. 희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나한테 시범을 보인다. 아빠가요, 제 뺨을 이렇게, 쫙쫙 때렸어요. 아니, 난 김 선생님을 봤다 희수를 봤다. 왜 뺨을 맞아. 나한테 버릇없이 굴어서? 나 때문에 뺨을 맞은건가? 희수는 침울하니 가만히 있는데 나만 어쩔 줄 몰랐다. 미안해.라고 말하면 김 선생님과 희수의 아빠가 나를 노려볼 거 같고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으면 난 체벌에 가담한 사람이 된 거 같고. 원하지도 않게 이런 죄책감을 느껴야 하다니 머리가 아팠다.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희수에게 뺨을 맞아서 아프지. 그건 너무했어. 라고 멍청한 소리를 하고 수업을 시작했다. 희수는 순하게 공부를 따라왔는데 그게 편하면서도 별로 기분 좋지 않았다. 기분 좋지 않은 편함. 언젠가 나는 그냥 편안함만을 느끼게 될까? 


고학년에게 체벌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김 선생님이 잘 따르는 4학년 승혁이는 키도 크고 운동도 잘한다. 에너지가 넘쳐서 좋게 말하면 리더십이 있고 나쁘게 보면 반항적이다. 선생님이라 해도 지지 않기 때문에 난 대부분 승혁이를 유연하게 피해가는 쪽이다. 눈싸움을 하면 내가 지게 되는 그런 아이랄까. 승혁이는 김 선생님를 무척 잘 따르는데 굳이 말하면 군대 상사와 부하같은 느낌이다. 김 선생님이 워낙 호탕하고 카리스마가 있기도 하지만 만만치 않은 승혁이가 김 선생님을 잘 따르는 데는 또 이유가 있다. 희수가 뺨을 맞고 며칠 뒤에 김 선생님이 내게 해준 이야기.  


“선생님, 쟤가 정말 장난 아니었거든? 나도 너무 힘들어서 한번 승혁이 부모님한테 문자를 보냈지. 이러이러해서 저는 못 하겠다고. 집에서 교정 좀 해달라고. 그랬더니 다음날 승혁이 쟤가 집에서 아주 허벅지가 시퍼렇게 멍들게 맞았나봐. 앉지도 못하더라고. 그 뒤로는 내 말이라면 껌뻑 죽어.”


음. 그런 구조가 있었군. 훈육의 목적으로 행해지는 체벌. 난 그게 효과가 있다는 게 무서웠다. 그러면 이게 아이를 교육하는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되니까. 내 경험 상 뺨을 때리는 건 훈육도 훈육이지만 상대에게 모욕을 주는 방법이다.  아이들이 자라기 때문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갈등. 어른들은 때리면서 통제하는 데 익숙해지고 아이들은 맞는데 익숙해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희수도 승혁이도 뽀얀 얼굴을 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뛰어다닌다. 맞을 때는 몰랐는데 폭력은 늘 벌어지고 세상은 이렇게 평화롭구나. 난 이 모든 걸 그냥 받아들이는 게 이렇게 쉽다는 사실에, 그리고 난 더 이상 맞는 이의 편이 아니라 때리는 이의 편에 서 있다는 게 뜨악하고 슬프고 두려웠다. 맞는 게 정말 아프다는 사실을 나도 잊어버리게 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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