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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은 Apr 24. 2023

눈물의 이유


2학년 호원이가 계속 운다. 오전 돌봄 시간 내내. 아침 EBS를 틀어주는 시간에도 텔레비전 화면을 보며 얼굴을 훔치고 아예 휴지를 책상에 갖다 놓고 운다. 소리 내서 엉엉 우는 건 아니고 눈물이 질끔질끔 꾸준하게 흘러내리는 정도다. 우는 건 점심 시간까지 계속돼서 오전반 선생님들은 한 번씩 호원이를 불러 달랜다. 엉덩이도 토닥여주고 안아도 주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지만 호원이의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일주일 째 계속되니 눈가가 빨갛게 짓무르려 한다.


원래 호원이는 잘 우는 아이가 아니다. 굳이 말하면 민혁이와 태훈이와 함께 (나는 속으로 원숭이 3인방이라 부르는 무리) 교실을 휘어잡을 정도로 활기차고 목청 높은 아이다. 그런데 난테없이 아침부터 울고 있으니 선생님들도 어리둥절하다. 점심 시간이 지나면 또 괜찮아져서 신나게 블록을 가지고 놀고 뛰지 말라는 내 목소리는 완전히 무시한 채 부리나케 태권도 학원으로 달려간다. 


구름이 잔뜩 낀 오늘 아침도 호원이는 눈물을 닦았다. 난 휴지로 마구 눈을 문지르는 호원이 손을 잡고 말렸다. 

“선생님, 엄마가 잘못 되면 어떡하죠?”

호원이가 일주일 째 우는 이유는 한 가지다. 머릿속에 드는 알 수 없는 무서운 생각.

“큰일나서 엄마가 죽으면 어떻게 하죠?”

호원이 집에 뭔가 우환이 생겼다 하기엔 모두 일상대로 흘러가고 있다. 호원이 어머니는 출근했고, 아버지도 출근했고 전화로 여쭤보아도 큰 사건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호원이가 별 이유 없이 계속 엄마한테 전화하고 싶어해 회사에 있는 호원이 어머니도 당황스럽다. 

“자꾸만 그 생각이 들어서 무서워요. 엄마아빠가 죽으면 어떻게 할 지 너무 무서워요.”

오전반 선생님은 2시간 반 동안 열심히 호원이를 달래준다. 그런 일은 오늘도 내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고 엄마와 떨어져 있는 이 시간을 행복한 상상들로 가득채우자며 호원이를 안아준다. 호원이가 좋아하는 과자, 동생, 놀이기구로 상상을 채우려 노력하지만 선생님의 노력에도 호원이의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흰머리가 지긋하신 오전반 선생님은 좋은 분이다. 호원이가 운다고 혼내지도 무시하지도 않는다. 


일주일 간 호원이의 눈물을 보며 내가 느낀 건, 그 어떤 방법으로도 달래줄 수 없는 눈물이 아이에게서 흐를 때도 있다는 것. 오전반 선생님은 흠잡을 데 없이 호원이를 달랬다. 상냥하고 인내심있고 차분하게. 호원이는 그 품에 안겨 울음을 멈춘 게 아니라 더 마음 편히, 씻어내리듯이 울었다. 선생님의 좋은 말도, 차분한 말도, 위로도 그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내가 온 몸과 마음을 의지하고 있는 사람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수도 없다는 걸 깨달은 아이의 두려움과 슬픔을 어떻게 달랠 수 있으랴.


짓무른 호원이의 눈가를 보며 과연 이대로 두어도 될까 고민하던 날, 점심시간이 지난 후 호원이는 신나게 달려갔고 난 퇴근하는 길에 팟캐스트를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떤 책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신간 소개 코너에서 팟캐스트 진행자는 말했다. 진행자는 자기가 어렸던 여덟 아홉 살 무렵에 그는 밤중에 갑자기 눈을 뜨고 죽음이 무언지 깨달았다고 한다. 내 옆에 자고 있는 엄마 아빠가 한 순간에 죽을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그 순간 눈물이 마구 나와 잠들었던 부모님을 깨웠다. 부모님이 왜 우냐 묻는데 잘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냥 죽음이라는 유한성을 깨달은 당혹스러운 슬픔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냥 괜찮아졌다. 눈물이 갑자기 나온 것처럼 갑자기 멈췄다. 죽음이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걸 그냥 받아들인 것처럼 눈물도 나오지 않았고 그대로 열심히 자라났다. 어떤 신간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이야기가 스치듯 잠깐 지나갔다. 어린 아이에게는 갑자기 삶의 비밀을 깨닫는 그런 순간이 오는 것 같다고. 난 그제서야 호원이의 눈물과 어떻게 해도 위로가 되지 않던 일주일이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진행자와 비슷하게 호원이도 지나고 있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공포, 유한성, 그걸 알아도 눈물을 계속 흘리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호원이는 모를 테지만 홍역을 앓는 것처럼 한바탕 슬픔이 그 애를 휩쓸고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나고 나면 이 혼란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시기가 올 것이다. 호원이의 엄마가 ‘엄마가 당장 없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무서워’라는 전화에 당황스럽고 피곤하게 ‘어? 그게 무슨 소리야?’ 답하는 것처럼.


일주일이 지나고 호원이는 다시 울지 않았다. 그 애는 자기가 울었다는 사실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씩씩하게 교실을 뛰어다닌다. 누구도 달랠 수 없는 이유로 아홉살 호원이가 일주일 내내 눈물을 흘렸다는 건 나와 몇몇 사람만 기억할 것이다. 나는 이 아이들이 훗날 전혀 기억하지 못할 자기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홉살 호원이는 내게 언제나 아홉살 호원이다. 그 사실이 우습고 씁쓸하고 후련하고, 복잡미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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