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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은 Apr 30. 2023

실내화 실종 사건

돌봄 교실의 서스펜스는 별 거 없다. 뜨거운 음식이 오가는 급식 시간을 제외하면, 노란 의자와 컬러비즈와 190-200 사이즈 실내화들이 있는 저학년 교실에 큰 사건이 일어날 일은 많지 않다. 멀리서 보면 뭐 저런 걸 가지고 진지하게 추리하나 싶지만, 지금 돌봄 교실 선생님들은 교실 창 밖을 주시하고 있다. 아이들에게서 자꾸 실내화가 없어진다는 민원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처음 시작은 돌봄 2반이었다. 승우가 화장실에 가려 했더니 신발장에 실내화 한짝만 사라져 있었다. 한참 뒤에 실내화는 우산 꽂이 안에서 발견됐다. 그 후에는 승현이, 예은이, 호원이 돌봄 1,2,3반을 불문하고 내화가 한짝씩 없어졌다. 화장실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신발장 뒤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선생님들은 누가 고의적으로 실내화를 가져간다는 걸 알고 나서 반별로 아이들을 불러 물어보았다. 범인은 아무도 나오지 않았지만 부작용이 생겼다.


누가 실내화를 한짝만 훔쳐가는 장난을 친다는 걸 알고 다른 아이들도 몰래 같은 장난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돌봄1,2,3반과 연계형 교실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실내화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범인도 여러 명으로 늘어났다. 용의자는 수진이였다가 민혁이였다가 지유였다가, 아무려나 쉽지 않은 아이들이 가장 먼저 용의자에 올랐다. 그리고 소문을 듣자마자 그 애들이 바로 따라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내게 귓속말로 자기가 본 걸 열심히 속닥거린다. 

“지유가 제 신발 가져가는 거 제가 봤어요.” 

희연이가 의기양양하게 내개 말한다.

난 보조 선생님이기 때문에 실내화 서스펜스야 어찌돼던 상관없다. 어차피 내게 말하기 전에 담당 선생님한테 벌써 말했을 것이다. 너무 많은 아이들이 제각각 목격한 게 많아서 뭐가 정말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봤으면 말렸어야지. 내가 심드렁하게 말하자 희연이는 입을 쭉 내밀고 자리로 간다. 

“현지가 민우 실내화 한 짝만 들고 화장실로 갔어요.”

예은이가 와서 말한다. 그러나 민우 실내화는 이미 제자리로 돌아와서 멀쩡히 두 짝 다 있다. 담당 선생님들도 범인을 찍었다가 바꿨다가 혼란스럽다. 


연계형 교실에 가니 김 선생님이 나를 슬쩍 불러 귓속말을 했다.

“수진이가 가져가는 걸 애들이 봤대. 걔가 범인이었나 봐.”

드디어 범인이 잡혔나! 난 누가 가져갔건 범인이 잡혔으니 실내화를 둘러싼 뜬소문은 사라질 거라 생각했다. 

“희연이를 늘 질투하니까, 걔 실내화 가져가서 숨겨놓고 했나 봐.”


수진이는 다 같이 모여 노는 아이들과 조금 떨어져 창 밖을 보고 있었다. 선생님들은 실내화 실종 사건을 아이들 문제 행동의 일부로 보고 상당히 심각하게 추적하고 있었다. 실내화는 시간이 지나면 다 돌아왔다. 잠깐의 일탈이 이렇게 주목받다니, 학교란 기존 틀에서 조금만 어긋나는 것도 내버려 두지 않는건가 싶었지만 선생님은 또 선생님들대로 문제 행동을 일찍 알아차리지 않으면 나중에 골치아파진다. 아이들이 어떤 식으로 자기의 혼란을 드러내는지는 각양각색이다. 담당 선생님들은 고삐가 손에 들려 있을 때 탄탄히 죄여야 한다는 편이다. 조금만 느슨해져도 실내화를 모두가 슬쩍 훔쳐보듯이 선생님의 통제권이 손상되기도 한다. 아무려나 실내화가 더 사라지지 않고 수진이도 아이들과 잘 어울릴 수 있으면 가장 좋은 일이겠지. 그건 수진이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난 돌봄 선생님이니까 바둑판을 들고 수진이한테 갔다. 수진이가 집에 갈 때까지 남은 두 시간. 알까기로 세 판정도 열과 성을 다해 패배하면 수진이를 깔깔 웃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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