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은 May 03. 2023

실내화 실종 사건 2



지난 번 수진이가 실내화 실종 사건의 범인으로 밝혀지고 나서, 난 한동안 모두의 실내화가 안전한 줄 알았다. 아니었나 보다. 오늘 출근하니 돌봄 1반 선생님이 화장실 가는 아이들을 하나씩 막아세우며 신발장을 확인하고 있다. 


“나 진짜 미치겠어. 누가 자꾸 가져가는 거야.”


연계형 교실로 들어가자 이번에는 김 선생님이 날 불러 살짝 말한다. 


“수진이가 아니야. 선생님네 반 애들이 했다던데?”


그러더니 낄낄 웃으신다. 선생님이란 나다. 내가 원래 1반 담당이었어서 1반에서 범인이 밝혀졌다는 소리다. 이미 스물 대여섯 명으로 늘어난 1반 아이들 중 누가 했는지 내가 알리가. 난 처음부터 실내화를 누가 가져가는지는 별 관심이 없었다. 우산 꽂이나 화장실 안에서 발견되어 두짝이 다 돌아오기만 하면 됐다. 이 정도의 서스펜스는 도깨비 장난같아서 귀여운 수준 아닌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선생님들 마음은 또 다르겠지만. 


연계형 교실에서 주영이와 희수와 규민이에게 영어 문법을 가르치고, 현민이와 수진이한테 수학을 가르치면 두 시간이 훌쩍 간다. 


돌봄 1반으로 돌아오니 벌써 다섯시가 넘었고 아이들은 대부분 집에 갔다. 난 남은 아이들을 교문까지 바래다주었다. 예은이를 미술학원까지 바래다 주는데 1학년 예은이가 내 심드렁한 맞장구를 듣더니 묻는다.


“선생님, 선생님은 왜 맨날 저희가 애들인 것처럼 얘기하세요?”

“그래, 앞으론 더 어른처럼 말할게...”


이제 돌봄 1반에 남은 건 수빈이밖에 없다. 1반으로 되돌아 가니 수빈이는 없고 강 선생님이 휴지로 교실 여기저기를 닦고 있었다. 그러더니 날 보자마자 많은 얘기를 쏟아냈다.


“선생님, 나 미치겠어. 정말. 아니 수빈이 얘가 다 한 거야. 얘가 실내화를 가져가는 걸 내가 봤지. 왜 그랬냐고 물었거든? 그랬더니 자기는 절-대 아니래. 절-대. 막 아니라고 잡아떼는거야. 그래서 알았다 하고 잠깐 화장실 다녀오니까 글쎄 얘가, 손소독제를 교실 책장이고 어디고 다 뿌려놔가지고, 이거 닦지도 못하고, 나 없는 사이에 이런 거야 진짜.” 


세상에나. 범인은 수빈이였구나! 책장의 책과 서랍이 손소독제로 번들번들거리는 게 보였다. 갑자기 왜 손소독제를 교실 전체에 흩뿌리고 싶었는지 알 수야 없지만 행복해서 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무서워, 나 진짜. 얘가 너무 무서워. 어떻게 어른 몰래.”


강 선생님은 고개를 계속 저었다. 난 휴지로 소독제를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물티슈로 교실 소독을 안해도 되려나. 


수빈이는 손에 소독제가 잔뜩 묻어 화장실에 갔다. 교실을 거의 다 닦을 때쯤 수빈이가 돌아왔다. 강 선생님께 들켜서 그런가 초조하고 불안해보이는 느낌은 저번보다 더 강하게 느껴졌다.


“선생님. 저랑 놀아요!” 

“그럴까? 선생님이랑 소꿉놀이할까?”


시간은 다섯시 반. 내 퇴근 시간도 다섯시 반이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강 선생님이 말했다.


“가요. 선생님. 이만 퇴근해요. 수빈이는 어머니 오신다고 하셨어.”


이미 소꿉놀이 상자를 꺼내온 수빈이가 눈에 띄게 실망했다. 


“안돼! 선생님은 가실 시간이야. 너는 다른 거 말고 여기 색칠 공부 하고 있어.”


잠시 고민했지만 퇴근하라는 말을 안 따를 이유는 없어서 난 퇴근 준비를 했다. 

양산을 펼치고 학교 계단을 내려오는데 누가 뒤에서 나를 불렀다. 수빈이가 계단까지 따라나와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계단 창살에 발을 딛고 올라서 있는 수빈이는 작고 어렸다.


“선생님! 선생님! 잘 가요! 근데 다음에 저랑 놀아요! 꼭 저랑 놀아줘야 해요!”


난 알겠다고 말하며 마주 손을 흔들어주었다. 선생님이 뭐라고 교실에 안 들어가고 계속 거기 서 있어. 한여름이라 창살도 학교도 전부 뜨거웠다. 절박해 보이는 아이는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아무 걱정도 하지 않으면 좋을텐데. 수빈이가 손소독제를 쏟아붓건 실내화를 가져가건 그 애는 여전히 내 첫출근 때 있었던 세 명 중 하나고, 늘 내가 아끼는 아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괜찮다. 괜찮다고 말해줄까. 하고 뒤돌아 봤을 때 수빈이는 없었다. 

이전 20화 성훈이 이빨 빠진 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