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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은 Apr 28. 2023

편애

나야 명목상으로는 명찰도 달고 선생님이라는 호칭도 있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선 아이들에 대한 마음이 다 같지 않다. 남몰래 더 좋아하는 아이도 있고 더 익숙한 아이도 있고, 다른 반에서 구박을 받기라도 하면 더 편들어 주고 싶은 아이들이 있다. 일하면서 이름을 외운 아이들만 4-50명인데 공평하게 배분하기도 어렵다. 


돌봄 1반에서 가장 먼저 일했으니, 그때 맡았던 아이들이 어디에 있건 가장 먼저 보인다. 동현이, 시훈이, 수빈이. 첫 학기에는 돌봄 1반에서 나와 평화로운 알까기를 했지만 이후에는 돌봄 2,3 반을 넘나들며 계속 반이 바뀌어 전처럼 많이 보지 못했다. 동현이는 나를 보면 손을 크게 흔들며 인사하는데 시훈이는 고개만 까닥 하고 지나간다. 둘다 제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는 성격이라 프로그램할 때마다 선생님께 한 소리씩 듣는다. 수빈이는 시간이 안 맞는지 거의 보지 못했다. 


남몰래 정을 느낀다고 해서 내가 편애를 할 만한 권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몰래 뒤에서 동그란 뒤통수를 보고 언제 저렇게 컸나 한숨 돌리는 게 다다. 시훈이 아버지는 매일 아들한테 스마트폰 게임으로 놀아주는 것 같던데 그래서인지 시훈이는 갈수록 눈빛과 언행이 날카로워지고 있다. 그리는 그림은 죄다 좀비 그림에 연쇄 살인마의 피묻은 칼이다.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갈 수록 가정이 아이들 학교 생활에 속속들이 스며드는 게 보인다. 아직 어리둥절한 1학년과 달리 학교 생활에 익숙해지고 뭐가 웃기고 뭐가 눈치껏 넘어갈 수 있는지 아는만큼 부부싸움의 현란한 연극을 시연하는가 하면,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아이도 있고, 학교 소방전을 발로 찼다 사이렌이 울려 허둥지둥 달려오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은 더 차분해지기도 하고 활달해지기도 하고 더 우울해지기도 한다. 전의 두 부류는 아무 문제 없지만 후자는 날 슬프게 한다. 아홉살 아이들이 행복한 상태에서 우울과 고뇌에 쌓여있는 표정을 짓고 돌아다니진 않기 때문이다. 

시훈이는 갈수록 욕과 화가 늘었고, 이번에도 다른 아이와 놀다 욕을 해서 선생님께 혼나고 교실 뒤에 섰다. 아이들 사이에선 시훈이 아빠가 굉장히 무섭다는 소문이 돈다. 내가 아는 건 시훈이가 검은 마스크를 늘 턱에 걸치고 다니는 게 아버님과 상당히 똑같다는 점이다. 우울과 고뇌도 똑같은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이들이 혼자 앉아 피칠갑한 칼을 그리기보다는 칠렐레 팔렐레 뛰어다니는 걸 좋아한다. 그래도 시훈이 역시 우울과 방황을 품고 혼자 쑥쑥 자랄 테지. 엉망진창 어른들 세계가 이렇게 굴러가도 된다고 별 문제 없다고 느낄만큼 씩씩하게 자라날 것이다. 가끔 아이들이 눈부신 생명력으로 자라나는 나머지 어른들을 너무 쉽게 봐준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시훈이는 여전히 검은 마스크를 턱에 걸치고 다니고, 난 오랜만에 돌봄 1반에서 수빈이를 만났다. 수빈이는 어느새 2학년이 되었다. 소꿉놀이 하기를 좋아했고 스머프 사다리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열심히 규칙을 새로 만들어냈던 깜찍한 여자아이다. 한번 나와 같이 매트 위에 누워서 뒹굴면서 자기의 비밀을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선생님, 저는 사실 잘 때 엄마 쭈쭈 만지고 자요.”

그럴 수 있지. 아무도 고백하지 않지만 돌봄교실 아이들도 남몰래 다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유년기는 이런 시기지. 수빈이는 그걸 말로 할 줄 안다는 점에서 용기가 있다. 

“엄마가 전 너무 커서 안 된다고 해서 몰래 해요. 근데 그러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요. 졸려요.”

“맞아. 그럴 수 있어.”

“근데 이제 민수가 있어서 그거 못해요.”

민수는 갓 태어난 수빈이의 네 살 배기 남동생이다. 물론 이런 비밀은 나한테도 있었다. 단지 난 이제 어른이니 점잖은 척 티를 안 낼 뿐. 자기 비밀을 털어놓은 건 수빈이인데 난 괜히 내가 수빈이와 아무도 모를 유대감을 형성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1학년에서 2학년으로 넘어가는 동안 수빈이의 일상도 녹록치 않았던 듯 싶다. 

어머니가 퇴근해서 수빈이를 데리러 올 다섯 시 사십분까지 수빈이는 홀로 돌봄교실에 있다. 대부분 아이들이 다섯시 전에 태권도 학원이니 미술 학원이니 일찍 하교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보니 수빈이는 전보다 더 초조해 보인다. 절박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화장실에 가려는 나를 말리고 절대 자기와 떨어지면 안 된다고 한다. 소꿉놀이를 하는데 동생 역의 블록을 마구 혼내고 때린다. 

“넌 왜 이렇게 울어! 그럼 못 써! 맞아야 해!”

난 동생 역을 맡았다가 아빠를 맡았다가 강아지를 맡았다가 한다. 수빈이가 엄마 역이다. 

“아빠는 여기 구석에 둬요.”

우리는 이내 소꿉 놀이를 치우고 도미노 쌓기를 했다. 노란 도미노로 은행잎 모양을 만들었다. 

“선생님, 이거 이렇게 해야 해요! 이렇게 하는 게 좋죠? 맞죠? 선생님도 좋죠?”

수빈이가 그렇게 묻는데 난 혼자 괜히 서글퍼졌다. 선생님한테 이렇게 하는 게 좋느냐고 묻는 수빈이의 목소리가 무척 불안해 보여서 그랬고, 난 수빈이가 자기 좋은 걸 하길 바랐지 내 마음을 신경쓰는 건 전혀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년기는 무척 자기중심적인 시기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이끌고 가도 모자랄 시기에 여러 어른들의 속내를 신경쓰느라 혼란스러운 어린애가 그대로 엿보이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너 좋으면 뭐든 좋아.” 

이런 위로가 별 효과가 없다는 걸 나도 안다. 난 요란스럽게 은행잎 도미노를 쓰러트렸고 그걸로 수빈이를 깔깔 웃게 했다. 

난 다섯시 사십 분에 수빈이를 데리고 하교했다. 내 퇴근 시간에서 십 분 정도 지난 시간이었지만 이 때에야 수빈이 어머니가 퇴근 데리러 올 수 있어서 십 분 더 기다렸다 나왔다. 나도 마음은 퇴근 시간이 되기 오분 전부터 준비하고 싶지만, 아이가 혼자 기다리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근로 조건을 고집하는 건 정말 쉽지 않다. 이래서 돌봄 선생님들이 매일 초과 근로를 하는 건가. 돈 주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일하는 사람들은 늘 고민한다. 자기 자신과 아이 중 누구를 우선할까. 자기를 선택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본 적 없다. 

교문을 나와 어머니가 마중나오겠다는 횡단보도까지 오 분 정도 수빈이와 손을 잡고 걸어갔다.

“선생님, 엄마는 매일 일하느라 늦어요.”

“그렇지. 어머니가 고생이 많으시지.”

“아빠는 일도 안 나가고 맨날 게임해서 엄마가 계속 화내요.”

“…"

“저번에도 민수가 속 썩이고 아빠가 욕해서 둘이 엄청 싸워서 제가 울었어요.”

“수빈이가 슬펐겠구나.”

“엄마가 아빠도 싫고 저도 싫다 그래요.”

“...”

“아빠는 모르겠는데, 엄마랑 살고 싶어요.”

계절은 초여름이었고 가로수는 온통 초록빛이었다. 햇빛이 적당히 따뜻한 좋은 날이었다. 내 손을 붙잡은 수빈이 손은 작고 따뜻했고 난 좁은 도보를 같이 걸어가느라 담벼락에 바짝 붙었다.

“엄마랑만 더 같이 있고 싶어요.”

멀리서 수빈이 어머니가 열심히 걸어오고 계셨다. 초조하게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렸다. 수빈이는 열심히 손을 흔들었고 어머니도 손을 흔들었다. 나도 멀리서나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신호가 바뀌었을 때 수빈이는 내 손을 떼고 엄마 손을 잡았다. 어머니는 내게 연신 감사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고개를 숙이실 것 까지야. 난 어서 들어가시라며 손을 흔들고 다시 횡단보도를 건넜다.


나쁜 사람도 쉽게 사는 사람도 없는 것 같은데 왜 아이들이 행복하긴 이렇게 어려운지. 내가 학부모들의 고충을 이해한다 해서 수빈이도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다. 난 보통 부모를 평생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편이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하는 일은 세상을 더 낫게 만들지도 못하고, 바꾸지도 못하고, 그저 우울한 아이를 달래서 세상이 이대로 기우뚱 굴러갈 수 있게 돕는 건 아닌가. 일단 아이가 부모 손을 잡고 집으로 가고 나면 무척 평화로운 끝처럼 느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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