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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은 May 03. 2023

돌봄과 교육

놀이와 프로그램 위주인 저학년 돌봄교실과 달리 연계형 교실은 문제집 풀기로 돌아간다. 점심 시간 후에 40분 공부 15분 쉬기. 숙제도 많다. 연계형 교실 담당 선생님인 김 선생님의 제일 목표는 아이들 공부 시키기. 성적 올리기. 나와 같은 대학생 선생님은 탐나는 인재다. 연계형 교실은 교육부 지원을 받지 않기 때문에 근로 장학생 같은 인력을 쓸 수 없지만, 김 선생님 부탁에 돌봄 1반 강 선생님이 나를 연계형 교실 보조 선생님으로 보냈다.


일단 공부를 시키라는 지시를 받았으니 시키긴 한다만, 문제는 선생님인 내가 아는 게 없다. 

무슨 알파벳 앞에 a가 붙는지 the가 붙는지를 몰라 첫 시간부터 문제였다. 수학은 말할 것도 없고. 난 그저 답지의 해설을 불러주는 일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주영이, 희수, 규민이는 내게 영어를 배우고 준서, 민호는 수학을 배운다. 다섯 명과 두 시간 내내 실랑이를 하면 기운이 쪽 빠진다. 그 누구도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다. 규민이 빼고. 


돌봄 교실에서만은 놀게 해도 좋을 텐데 왜 이렇게 애들을 공부시킬까. 공부가 하기 싫어 입술이 댓발 나오고 연필로 문제집을 죽죽 찢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그냥 그만 하라고 하고 싶다. 


하지만 김 선생님은 김 선생님만의 사명이 있다. 예를 들어, 4학년 희수가 알파벳도 다 알지 못한다면 그걸 가만 둘 수 없다. 코로나 이후로 온라인 수업도 잘 진행되지 않은만큼 아이들 학력 수준은 내가 봐도 많이 떨어져 있었다. 학원을 계속 다니던 아이들은 꾸준하게 실력을 유지했지만, 부모가 학업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에는 실력이 쑥쑥 떨어져서 같은 학년이어도 차이가 크게 났다. 4학년 주영이와 희수의 차이도 그만큼 크다. 주영이는 영어 단어를 쉽게 발음하고 희수는 알파벳을 헷갈린다. 

희수가 학원을 다니지 않는 건 아니었다. 주영이와 희수는 같은 수학학원을 다닌다. 문제는 학원은 진도 나가는 게 제일 우선이기 때문에 개념을 잡기보다 눈에 빠르게 보이는 성과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진도 나가기에 급급하면 아이가 한 번 뒤쳐지게 되면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준서나 희수 다 학원을 다니지만 학원에서는 이 애들의 학습 수준에 깊게 관심 같지 않는다. 


희수나 준서, 수진이는 기초 학습에서 학년보다 뒤쳐지는 걸 알기 때문에 김 선생님의 집중 관리 대상이다. 

집중 관리는 내 몫이지만 크게 하는 건 없다. 그냥 옆에서 문제 풀이를 봐주고, 개념을 여러 번 알려주고, 천천히 풀면 살짝 재촉하면서 기다리는 일이다. 


가르치면서 알게 된 건 시간이 충분히 있고, 학생이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다 금방 배운다는 것. 

의지는 내가 만들어줄 수도 강요할 수도 없고 상대가 화가 나 있을 땐 아무것도 가르칠 수 없다는 것. 

내가 하는 일은 아이들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고 재촉하고 다시 기다리는 일. 

나중에는 답지에 머리를 박고 

“나도 너네 공부시키기 싫어~그래도 해야 하는 걸 어떡해~”

하고 우는 소리를 하면 몇 명은 나를 불쌍히 여겨서 몇 문제 더 풀어준다. 


김 선생님의 목표는 뭘까. 이렇게 열살 아이들을 다그치고 가르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좋은 대학에 가기?

3학년 규민이는 선생님이 공부 시키지 않는다.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더 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규민이는 오히려 공부 안 하는 게 숙제다. 김 선생님은 규민이가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가 그게 관심과 인정을 받는 방법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맞벌이 부모님 사이에서 외로움을 버티는 방식이 공부라면 무척 바람직한 방법이지만, 그래도 나도 김 선생님도 규민이는 그날 숙제말고는 더 공부시키지 않는다. 똑똑하거나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괜찮은 공간이 있다는 걸 규민이가 알았으면 좋겠기 때문이다. 규민이는 자주 김 선생님과 함께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겨 집에 간다.

“규민이는 집에 언제 가?”

공부 시간이 끝나면 난 책장에서 아무 책이나 꺼내 읽는다. 규민이가 더 공부하고 싶어해서 말린 뒤에 난 물었다. 

“언제라도 가도 되긴 하는데. 집에 아무도 없어요.”

냉장고에 점심 시간에 남은 푸딩을 꺼내서 규민이한테 줬다. 늦게까지 남아 있는 아이들의 작은 특혜다.

“할머니가 하는 모텔 가서 있어도 되긴 하는데, 거긴 티비 밖에 없어서 할 게 없어요.”

“심심하겠네.”

“네, 하루종일 할 게 없어요. 선생님은 할 게 없으면 뭐해요?”

난 열 살 규민이가 우물우물 푸딩을 먹는 걸 보고 있다. 마스크를 벗으니 한층 더 어린애같다. 규민이는 외롭구나. 외로울 때 하루는 너무 길어지지. 

“선생님은 그럴 때 책 읽어. 규민이도 책을 읽는 건 어때.”

내 말에 규민이가 고민해보는 듯 하더니 역시 문제집을 본다. 아니야. 너한테 필요한 건 이게 아니야. 규민이는 이미 4학년 영어 문법도 금방 뗐다. 


준서가 오지 않았다. 수학 풀기 싫어서 온 몸을 뒤틀던 아이였으니  놀랄 일은 아니었다. 김 선생님은 준서의 밀린 숙제를 확인하고 콧김을 후 뱉었다. 

“선생님, 내가 걱정하는 건 그거야. 얘가 공부 싫어하고 안 하는 건 상관없어. 나중에 대학에 안 가도 돼! 근데 얘가 지금부터 이렇게 뒤쳐지면 그냥 다 포기하고 나중에 안 좋은 친구들이랑 어울릴까봐. 준서 걔는 주변 영향을 되게 많이 받아. 공부를 해서 계속 그 소속감을 유지하지 않으면 금방 안 좋은 길로 빠질 확률이 너무 커. 걔는. 그러면 안 돼. 준서는 공부시켜야 해.”

김 선생님의 말에 난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다 이유가 있구나. 


공부가 필요한 아이들이 있고 다른 게 더 필요한 아이도 있고. 연계형 교실에서 교육은 돌봄의 일부다. 아이들이 고학년으로 갈수록 그 학년의 학습 수준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학원도 등수도 새롭게 등장하는 만큼, 거기서 뒤쳐지기 시작했을 때 아이들이 느낄 열등감과 불안, 자괴감을 막아주는 건 돌보는 자의 역할이다. 위로보다는 원망의 눈빛을 잔뜩 받더라도 아이가 스스로 문제 푸는 힘을 가르치는 것 역시 돌봄의 역할 중 하나인가. 뭐가 됐든 나나 김 선생님이나 아이들에게 칭찬받을 일은 없다. 


뉴스에서는 연신 돌봄 교실 근로자들의 파업 예고가 나왔고, 돌봄과 교육은 다르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렸다. 돌봄과 교육이 다르다는 기준은 돌봄 교실과 일반 학급을 나누는 큰 기준이다. 그에 따라 돌봄 교실에서는 교육을 하면 안된다. 저학년 교실이 프로그램과 공예 시간 위주로 돌아가는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교육하지 않고 돌보기만 할 수는 없다. 저학년 교실도 공부 시간은 늘 계획표에 있다. 교육이 중요해지는 학년일수록 학습 수준을 무시하고 그저 돌본다는 건 무책임한 일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무얼 느끼는지,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먼저 판단하고 필요한 걸 제공하는 것. 아이들에게 스스로 헤쳐갈 힘을 주는 것 모두 돌보는 일 중 하나다. 


준서는 지난 수학 시험에 40점을 받았다. 이번 기말 고사에서 준서는 85점을 넘겼다. 성적표를 들고 온 날 준서는 무척 행복해보였다. 늘 책상 앞에서 눈썹을 찌푸리고 있던 준서가 그렇게 신이 나서 웃는 건 처음 봤다. 나쁜 역할도 이럴 땐 맡아서 좋구나. 김 선생님은 문제집 채점하느라 늘 퇴근 시간보다 한 시간 반은 늦게 퇴근하고, 그 시급은 전혀 받지 못하고, 아이들은 공부가 하기 싫어 죽상을 하고 주변 선생님들마저 김 선생님이 과하게 일을 한다며 그만 하라고 하지만, 나 역시 하기 싫다는 아이들을 이렇게 괴롭혀야 하나 늘 고민하지만, 그래도 김 선생님의 그런 고집이 오늘 준서를 웃게 만들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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