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방학, 아침에 출근하니 3학년 지우가 현관 계단 앞에서 실내화 가방을 차고 놀고 있었다.
“안 들어가고 뭐해?” 내가 물었다.
“교실 문 잠겼어요.” 지우가 말했다.
돌봄교실이 있는 2층으로 가니 연계형 교실은 정말 문이 잠겨있다. 돌봄2,3반은 8시부터 선생님들이 출근하기 때문에 열려 있다. 연계형 김 선생님은 아홉 시 반에 출근하신다. 방학 동안 김 선생님의 근무시간은 아홉 시 반부터 열두시까지 주 12.5시간. 오후에는 다른 시간제 선생님이 와서 2시간 반을 근무하고 간다. 이 아담한 근무시간의 의도는 당연히 주휴수당을 피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아이들이 선생님 출근 시간에 맞춰 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맞벌이 가정인만큼 부모님이 출근하고 나면 하나 둘 씩 돌봄교실로 오는 데 고학년을 맡아줄 곳이 없다. 돌봄 2,3반은 저학년 교실이고 그 자격 조건에 충실하다.
지난 번에 지우는 너무 일찍 왔고, 그래서 돌봄 2반에서 잠시 책을 읽고 있었다. 아이를 바래다주러 온 학부모가 그걸 보고 어떻게 3학년 남자애가 돌봄 교실에 있느냐면서 민원을 넣었다.
결국 오전에 일찍 오는 내가 연계형 교실 자물쇠를 열고 아이들을 들여보낸 뒤, 한 시간 동안 아이들을 맡는 걸로 했다.
나무 바닥이 그대로 드러나고, 난방도 잘 돌지 않는 연계형 교실에 앉아 푹신한 매트와 장난감, 새 책이 있는 저학년 돌봄교실을 보면은 고학년이 여기서 천덕꾸러기 신세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연계형 교실은 애초에 저학년 교실과 달리 지자체 지원이고, 예산도 다르고 고용 주체도 다르니 서로 거리가 있는 건 당연하다만 아이들 입장에선 작년까지 다녔던 돌봄교실에 못 들어간다는 것도 이상할 것이다. 연계형 아이들도 다 2년간 저학년 돌봄교실을 거쳐 왔으니까.
혹여 아이들끼리 문제가 생기면 연계형 교실 아이들이 먼저 눈칫밥을 먹는 것도 사실이므로 김 선생님은 늘 우렁한 호통으로 아이들이 복도에서 뛰어다니거나, 동생들을 건드리지 않게 단속하지만 늘 성공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왜 돌봄교실은 고학년 반은 운영하지 않을까? 연계형 교실도 본래는 없었으나 학부모들의 요구로 만들어진 거라고 하니, 아홉살 아이가 열 살 됐다고 돌봄이 필요하지 않은 것도 아닐테고. 아홉 살까지 푹신한 매트 위에서 놀던 아이들은 왜 열 살이 되면 삐걱이는 책상에 앉아 노는가.
내 생각은, 고학년 아이들은 다루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저학년 돌봄은 양육 노동과 비슷하다.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고 일상의 기본 습관들을 가르치고…아이들과 쌍방 소통이 잘 안되므로 에너지를 더 소비하지만 어떤 면에선 편하기도 하다. 저학년 아이들은 내 영혼없는 맞장구로 어느정도 커버할 수 있다. 반면 고학년은 열 명이던 스무 명이던 일대일 관계다. 한명 한명의 상태와 성격과 배경이 다르고, 그에 맞춰 아이들을 대해야 한다. 한 학년 올라갈수록 아이들이 일으킬 수 있는 문제는 더 복잡해져서 따돌림, 학습부진, 이상행동 등 다양하다. 2학년 윤지의 오빠 4학년 윤호의 경우, 무언가 참지 못할 일이 생기면 머리를 자꾸 긁다 교실 밖 복도에 드러누워 소리를 질렀다. 희수와 주영이의 경우 은근한 따돌림이 물 밑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행동은 복잡해지는 데 통제는 어렵다. 이제 아이들은 선생님의 권위말고도 더 납득할 만한 이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말로 아이들을 통제하려면 민주적이고 논리적이고 그러면서도 사랑을 담아 카리스마 있게 지휘해야 한다. 김 선생님이 어떻게 그 일을 다 해내는지 모를 일이다. 돌봄은 이제 양육보다는 교육에 더 가까워지고, 학습 교육과 더불어 비행을 막기 위한 노력도 해야한다. 승준이의 형 4학년 승현이의 경우, 어느 날 연계형 교실 시원이와 다른 무리와 함께 가스레인지에 담뱃불 붙이는 흉내를 냈고 김 선생님한테 그 소식이 들어가 일주일 내내 된통 혼났다. 비행의 싹만 보여도 매섭게 잡는 김 선생님의 기술은 쉴 틈이 없다. 적어도 아이들과 상호 소통이 되는 것이 고학년들을 맡을 때의 즐거움이라면 즐거움이랄까. 3-4학년만 되어도 선생님이 힘들어서 진이 빠진 걸 금방 눈치챈다.
돌봄교실이 고학년을 기피하는 이유는 알 것 같다. 그런데 이들이 복잡하고, 다루기 어렵다고 해서 돌봄교실 밖으로 밀려나야 할까?
난 오히려 고학년일수록 돌봄교실과 같은 공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책임을 맡고 있는 어른과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이 없으면 아이들은 밖을 배회하게 될 테고, 거기서 벌어지는 문제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아홉 살이건 열세 살이건 아이들은 여전히 아이들이다. 미숙하기 때문에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필요가 있다. 안정된 성장과 생활을 위해 일정 수준까지 학습할 필요가 있고, 연계형 교실이 작은 공부방처럼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학습은 이 아이들이 안정된 성장과 생활을 위한 방법 중 하나다. 잘 돌보기 위해 교육을 같이 한다고 해야 하나. 물론 공부시키는 게 저학년들 종이접기만큼 아이들을 통제하기 좋은 방법이란 것도 사실이긴 하다.
한바탕 공부 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김 선생님은 나를 불러 말했다.
“안정감이야, 선생님. 우리 애들은 다 맞벌이 가정이고 애들 혼자 있을 때가 너무 많아. 그래서 얘들은 여기에서 무엇보다 안정감을 느껴야 해. 그게 제일 중요해.”
얘네들 떠나고 나면 진짜 그만 둘거야. 김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그 말을 했다. 늘 열정과 호탕함으로 넘쳐보이는 김 선생님도 가슴 속에 사표를 품고 사시는구나. 늘 소란스럽고 왁자지껄하지만 아이들이 여기서 안정감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김 선생님이다. 한 사람이 계속 자길 신경쓴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 안정감은 만들어지는건지. 윤호는 더는 복도에 드러눕지 않고 승현이는 문제집이 찢어져라 공부 중이다. 주영이와 희수는 둘이 합심해 나를 놀리는 재미에 빠졌다.
난 3학년 지우를 데리고 쓰레기장으로 갔다. 돌봄 1반이 이사 준비로 낡은 책들을 많이 버렸기 때문이다. 연계형 교실은 예산 지원이 턱없이 부족해 새 책을 살 여력은 없고, 이런 재활용을 자주 이용한다. 책등이 찢겨지고 몇 장 없어지긴 했지만 ‘why?’시리즈가 잔뜩 있다. 동화책은 저학년을 위한 거니 그냥 두고 만화책들만 끈으로 묶어 손에 들었다. 지우도 책탑 하나를 팔로 안아든다.
“그거 다 들 수 있어? 안 무거워?”
“네. 더 들 수 있어요. 선생님 든 거 저 주세요.”
내 옆구리까지 오는 녀석이 더 들 수 있다니 안 될 일이지. 난 지우의 책탑에서 떨어지려 하는 만화책을 받아 들었다. 현민이가 궁금해서 복도에 나와 있었다. 둘이서 책을 나눠 들고 가는 동안 난 천천히 겨울 햇빛이 복도와 아이들의 동그란 뒤통수를 물들이는 걸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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