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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은 May 21. 2023

옆동네 사정


코로나 시국이 2년째로 접어들면서, 새학기 선생님들의 대화 주제는 비슷했다. 새로 온 아이들이 얼마나 예전과 다른가. 


“저번에 생활 인성 교육 프로그램을 새로 갔는데, 아이들이 너무 어려요. 재작년도 애들이랑 달라. 초등학생인데도 아직도 유치원생 같아. 앉아 있지도 못하고, 양보를 할 줄도 모르고. 유치원에서 학교 오기 전에 배워놓는 습관들이 하나도 안 만들어져 있어요. 너무 달라.”


아이브레인 선생님의 말에 이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 상황이 여러모도 아동 발달에 영향을 미쳤나 보다. 내 눈에 아이들이 부산스럽기보다는 어리둥절해보인다. 자기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고, 마스크는 코까지 써야하며, 선생님이 쉬는 시간을 주기 전까지 마음대로 움직이면 안된다는 사실을 배우는 데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이 선생님은 새로운 돌봄 1반을 체계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시간표를 맞춰 벽에 붙여놓고 거기 맞춰서 반장과 스티커 제도를 도입했다. 1반 아이들은 스무 명 남짓이다. 

지금 시간은 받아쓰기 시간이다. 아이들은 ‘가나다라’부터 시작한 한글을 열번씩 써야 한다. 이 선생님은 아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아직 한글도 모르면 어떡하니. 선생님 전에 일하던 데는 애들이 이미 한글까지 다 떼서 왔더라. 자리에 앉으라고 하면 딱 앉아서 할 일 하고. 선생님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더라.”


이 선생님은 옆 자치구에서 이 학교로 이직했다. 옆 자치구가 아파트와 학원이 많다면 이 자치구는 빌라와 복지센터가 많다. 서울에서도 저렴한 곳이다. 몇십 년 째 재개발 논의가 있는 곳이다. 옆 자치구는 굳이 말하면 더 잘 사는 동네다. 깔끔하고, 신축이고, 높은 건물투성이다.

오후에는 오전반 선생님 박 선생님과 함께 연계형 교실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다. 놀이터는 여전히 사용금지라 학교 뒤편에 있는 연못으로 갔다. 뒤편 공간이 길게 남아 있어서 남들한테 보이지 않게 뛰어놀 수 있다. 십오 분의 시간이 주어지자 아이들이 얼음땡을 하기로 했다. 얼음! 하고 외쳤다가 땡!하고 외쳤다 신나게 논다. 아직도 어린 애들은 얼음땡을 하는구나!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이 생각나서 기분이 묘했다. 공기 놀이, 얼음땡, 참참참, 아이들이 하는 놀이는 시대가 변해도 계속 이어지나보다. 

박 선생님도 팔짱끼고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여기 애들은 순해요. 서로 많이 싸우지도 않고, 착해. 순해서 공간만 주면 알아서 사이좋게 잘 놀잖아. 조손가정도 많고 맞벌이도 많아서 그런가 부모님들이 학업에 별로 신경쓰지 않아요. 그래서 애들도 크게 스트레스 안 받고 순한 거 같아. 아직 옛날 애들같아.”


나만 아이들이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느낀 건 아닌가보다.


“선생님, 옆 자치구 애들은 어떤지 알아요? 나 입시 학원에서 일했잖아. 거긴 6학년 되면 애들 죄다 정신과 다녀요. 집도 학원 돌다 열 시에 들어가. 대체 돌봄교사로도 몇 번 일했는데, 장난 아니야. 이미 학부모 단톡방에서 돌봄 교실 어떻게 운영할 지 다 정해놔서 선생님이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나도 없어요. 왕따가 진짜 심한데, 한 마디도 못 해. 아이들이 민원 넣겠다고 먼저 선생님을 협박하니까.”


그건 처음 듣는 옆 동네 이야기였다. 이 선생님의 말과 박 선생님의 말을 종합해보면 옆 동네 아이들은 뛰어난 학업 수준과 함께 좋지 못한 정신건강을 갖고 있나보다. 학부모 민원은 돌봄선생님들이 제일 꺼리는 일 중 하나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영혼 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좋은 아이 돌봄이 무엇인지 확실한 가이드 라인도 없는 상태에서, 선생님만의 판단을 바탕으로 아이들을 통제하는 게 마냥 좋다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이 정신과를 다닌다고 생각하면 씁쓸하다.


박 선생님말대로 돌봄교실 아이들이 학업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일은 별로 없다. 그보다는 기초학습이 부족한게 문제인 경우가 많다. 학습이 부족한 건 문제가 아니지만, 진도가 너무 빨리 나가면서 아이들이 자신의 실력을 감추고 잘 따라가는 흉내를 내는 게 문제다. 


1학년 지희를 보자. 지희는 아직 한글을 다 알지 못한다. 그런데 같은 돌봄1반 아이들 중에 한글을 이미 떼서 그림책을 곧잘 읽는 아이들이 많다. 


“넌 한글 못 읽잖아.”


한글을 다 배운 채연이한테 한 소리 듣고나서 지희는 이제 그림책을 들고 읽는다. 한글을 다 읽는 시늉을 하지만 사실 소리내 읽어보라고 하면 못 한다. 선생님이 물어보면 다 안 다고 대답한다. 선생님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자세히 보면 지희는 한글을 아직 모르지만, 스물 댓 명 중 한 명을 자세히 볼 시간이 선생님에겐 없다. 한글은 계속 접하기 마련이라 언젠가는 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실력이 다른 걸 숨겼다간 나중에 가서 이 격차가 더 커지는 게 문제다. 학원으로도 초반의 학습이 부족한 건 해결하기 힘들다. 4학년 희수는 일찍부터 수학 학원에 다녔지만 문제 풀이에 급급한 학원 진도를 따라가다 아무것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남들과 다르게 뒤쳐진다는 느낌을 받으면 아이들이 주눅들고 우울해한다. 그런 감정에서 아이들을 보호해주는 건 돌봄의 일환이다. 그래서 새학기 내 역할도 돌교실 뒷편에 앉은 아이들이 수업 문제를 끝까지 풀도록 집요하게 닦달하는 일이다. 이미 공부따위 싫다는 아이들은 날 매섭게 노려보지만 막상 풀고 나면 속 시원하게 논다. 시간만 충분히 들이면 아이들은 다 자기 학년의 문제를 풀 수 있다(3-4학년 까지는). 

학교가 요구하는 수준이 전에 비해 높아진 건지, 왜 교실 앞과 뒤 사이의 거리가 갈수록 멀어지기만 하고 좁아지진 않을까? 옆 동네는 다른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좁혀진 거리를 최대한 늘리기 위해 어린 아이들이 약을 먹어가며 문제를 풀고 있을 수 있다. 그 교육은 돌봄은 아닐 것이다. 난 늘 교실 뒤에서 눈치 봐가며 교과서에 낙서를 하던 애들 중 하나였다. 아이들의 미래는 내가 책임질 수 없지만, 흙바닥만 있어도 열심히 뛰어다니며 웃는 아이들의 모습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수진이가 땡을 외쳤다가 승혁이한테 쫓겼다. 수진이가 내게 선생님, 도와줘요! 하고 외쳐서 등 뒤에 얼른 숨겨주었다. 내 등 뒤는 무인도다. 여기로 오는 아이는 위험에서 벗어나 쉴 수 있다.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선생의 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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