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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은 May 09. 2023

언제 그만둘까


한적한 오후의 돌봄교실. 아이들은 제각각 블록 쌓기나 아이클레이를 하고 있다. 나는 교실 끝 책상에 앉아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생각했다.

이 일을 그만둬야지.


일을 그만두고 싶은 이유는 많았다. 첫째로,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돌봄은 눈에 보이는 일이 아니다. 내가 서류를 다루는 일을 했다면, 근무하는 8시간 동안 어떤 일을 했는지 서류가 말해줄 것이다. 쌓인 서류 뭉치를 보면서 성취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돌봄교실은 오늘 아침에 등교한 아이가 집에 갈 때까지 무탈하게 그 모습그대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일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돌봄교실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징표다. 나는 눈에 보이는 성과와 결과물이 내 열심을 증명한다고 배워왔는데 돌봄은 정확히 그 반대의 세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교실을 위해 선생님은 물 밑에서 아이들을 관찰하고 달래고 제지하고 도와줘야 하지만, 그 모든 노력이 눈에 띄지 않을 수록 돌봄 노동을 잘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안정적이되 누가 이 교실을 안정적으로 만드는지는 보이지 않게 하는 일. 물론 이런 걸 잘 한다고 해서 칭찬이나 보상이 돌아오진 않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교실이야 대단할 게 없는 일 아닌가. 돌봄교실에서 일하는 건 결국 감정과 에너지는 계속 소모되지만 충족되는 건 딱히 없는 일이다. 아이들이 종종 주는 종이 드래곤이 보상이라면 보상이라 해야 할까. 아이들에게서 성취감을 찾으려 하면 안 된다. 그러면 아이들이 선생님의 뜻대로 움직여 주어야 하는데 경험해 본 바 세상에 그런 아이는 없다. 내가 일하던 당시 시급은 10500원이었다. 근로장학생이었으므로 4대보험이나 주휴 수당, 근로계약서는 없었다. 난 내가 소모하는 에너지가 시간당 10500원보다 많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굳이 말하면 시간 당 3000원 정도의 에너지를 더 소비하는 느낌이었다.


더구나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다루는 일인만큼 동등한 관계가 아닌데서 오는 스트레스도 크다. 이 일을 하면서 얻은 특징은 내가 ‘나’라는 단어를 별로 안 쓰게 됐다는 점. 일할 때 나는 ‘선생님’이고, 나도 아이들에게 나를 선생님으로 지칭한다. 선생님은 책임이 뒤따라오는 호칭이다. 내가 무엇을 느끼고 원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아이들과 있을 때 항상 나를 선생님이라고 하는 건 근무 중에 치밀어오르는 내 자아를 내려놓기 위한 의도이기도 하다. 내 의사와 자존심은 다 제쳐두고 아이들에게 맞춰야 돌봄이 원활하게 돌아간다. 나를 내려두고 타인에게 전부 맞추는 일. 엄마들이 아이들 키우는 과정에서 왜 자기를 잃어버린 느낌이 드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런다고 아이들이 고마워하는 것도 아니고, 고마워할 이유도 없다. 난 이렇게 자아를 내려놓는 걸 꽤 잘 했지만, 그렇다고 이런 일에 숙련되기도 싫었다. 대외활동 지원서만 해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걸 하고 싶어하는지 화려하게 설명해야 하는데 돌봄교실에서의 일은 정반대의 이렝 날 익숙해지게 만들었다. 내가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고, 책임은 있되 그에 따른 보상은 없는 걸 감내하는 일. 온갖 소모전으로 기운이 빠진 채 집에 오면 난 내 대학 동기들보다 할머니나 엄마와 더 가까운 처지에 있다고 느꼈다. 내가 중요하지 않다고 매번 느끼는 건 비대한 자아를 겸손하게 해 주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제 막 민증 없이 술 사는데 익숙했던 내가 그 정도의 겸손함을 바랐는지는 모를 일이다.


셋째로, 난 그냥 사람들에게 내가 돌봄교실에서 일한다고 말하기가 싫었다. 내 생각에 이 일은 별로 멋진 일이 아니었다. 이 세상에는 이십 대가 할 법한 일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들이 있다. 카페 알바, 서빙, 판매, 레스토랑, 편의점, 사무보조…자본주의 사회의 일꾼으로 일하는 업종들이라 해야할까. 난 돌봄 노동이 이런 일들과는 다른 결에 있다는 걸 내심 알고 있었다. 내가 그 일을 좋아하면 할 수록, 내가 사회가 기대하는 여성성이나 모성애나 봉사정신을 갖춘 사람으로 보이는 것도 싫었다. 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좋아서 이 일을 하는 게 아니었고, 착한 사람도 아니었다. 김 선생님처럼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아이들을 돌봐줄 마음은 없었다. 사회는 그런 사람들이 돌봄 교실에 남아 무상으로 제도의 허점을 메꿔주길 원하겠지만 말이다. 아이들 봐주는 일을 한다그러면 ‘나는 네가 하는 일 절대 못 할 거야. 너무 대단해’라던가 ‘좋은 일 하시네요’라는 소리를 종종 듣을 때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랑이니 봉사니 하는 수사들로 이 일을 신성화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돌봄 노동은 저평가 되는 일이다. 안 그러면 임금이 왜 이렇게 낮고, 무상 봉사 인력들로 굴러가겠는가. 내가 무슨 특별한 인격을 갖춘 것처럼 사람들이 말할 때면 어떤 면에서 이들 역시 나누고 있는 책임을 내게 떠맡기는 것처럼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노동도 주류 노동이 있는건지, 내 일에 대해 말할 때 나는 내 세대에서, 사회의 주류에서 동떨어져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들이 상상하는 돌봄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막상 돌봄 교실에서 일을 했을 때는 내가 예상한 돌봄과 전혀 달랐고, 훨씬 난이도가 높았고, 놀라울 정도로 아무 기준도 없었다. 꼭 필요하다고들 하면서 어떻게 이 세계가 굴러가는지는 묻지 않는다면 그냥 관심이 없는 거 아닌가? 나는 돌보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고, (싫어도) 해야 한다고 본다. 쉽지 않지만 그 진창 속에 있다보면 자아의 거품도 꺼지고 나보다는 타인이 더 중요해지고, 우리가 서로 연결된 세상에 산다는 걸 꺠달을 수 있다. 어느 방식으로든 돌봄은 돌봄받은 기억을 바탕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베풀어지기 마련이다.


난 사회의 일원으로서 아이들에게 사랑이 아닌 책임감을 느꼈고 아마 그게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이런 책임을 다른 사람은 굳이 느끼지 않고도 돈을 벌며 잘 살 것이다. 내 마음 한 켠에서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추후 내게 도움 될 아르바이트를 해서 스펙도 쌓고 경쟁력도 키우고 훌륭한 인재가 될 수 있게 나를 갈고 닦는 사람. ‘내’가 세상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이 되어 사회가 마련한 경쟁력의 계단을 한칸한칸 밟아 올라가는 사람. 하지만 그게 정말 내가 원하는 걸까? 내가 이렇게 돌봄의 세계에 눌러앉아있는 사이 다른 사람들은 날 제치고 멋진 직장과 멋진 스펙으로 훌쩍 날아가버리면 어떡하지? 난 그렇게 별볼일 없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건가. 고심하는 사이 하교시간이 되어 나는 아이들 손을 잡고 한 명씩 교문으로 바래다 주었다.


1학년 예은이는 영리하고 독립적이라 하교할 때도 혼자 가고 싶어한다. 오늘도 신발을 신으며 고민하는 거 같길래 내가 물었다.

“왜, 예은이 혼자 갈 수 있어?”

“아뇨. 계단까지 같이 가주세요. 계단은 무서워요.”
예은이는 계단을 내려갈 때면 이상한 소리가 난다며 내 손을 꼭 붙잡고 간다. 그건 예은이 실내화 가방이 난간에 쓸리는 소리다. 내가 설명했지만 예은이가 믿지는 않는다.

계단을 지나 예은이는 내 손을 놓고 책가방을 두 손으로 잡는다.

“선생님, 내일도 계단 내려올 때까지 같이 가주세요.”

“그래, 걱정하지 마.”

언제 그만둘지는 몰라도, 적어도 내일은 아니구나. 내일은 나를 필요로 하는 예은이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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