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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은 May 12. 2023

파업


연일 뉴스에 학교 돌봄전담사 파업 예고가 나왔다. 파업 이유는 8시간 전일제 전환과 시간제 근무 폐지, 행정 업무를 포함한 적정근무 시간 확보 등이었다. 압축노동, 공짜 노동을 야기하는 시간제 근무 대신 주40시간 전일제로 돌봄 전담사를 고용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는 나중에 내가 혼자 뉴스를 찾아보고 안 사실이고, 내가 다니는 돌봄교실 파업에 대해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나 도 까맣게 잊고 있다 출근하니 아침에 돌봄 2반이 북적북적하고 선생님은 없었다.

“오늘 2,3반 선생님은 안 나오실 거예요. 나은씨가 2반에 가서 애들을 봐주세요.”

돌봄 1반 문을 여니 정신이 하나도 없어보이시는 강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나 혼자 아이들을 보라고? 2,3반 아이들이 한 데 합쳐져 서른 명이 넘었다. 별 탈 없으면 인력은 한 반에 담당 선생님 한 명과 보조 선생님 한 명이다. 이 정도 아이들이면 네 명의 인력이 있겠지만 오늘은 나 혼자 뿐이다. 아니, 선생님. 저는 이 일을 맡을 깜냥이 안 되는데요! 라고 말하기도 전에 강 선생님은 교무실로 사라지셨다. 


서른 명이 넘는 아이들을 보는게 아예 못할 일은 아니다. 책 읽게 시키고, 거리두기를 유지하고, 체온 측정하고. 일 자체는 계속 해왔던 일이다. 내가 걱정했던 건 이런 상황에서 무슨 일이 생길 경우 전부 내 책임이 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잠깐 신경을 놓치면 당연히 무슨 일이든 날 수 있다. 뜨겁고 무거운 급식차, 날카로운 책끝, 아이들끼리의 다툼. 난 일개 알바생이고 책임도 권력도 없는 이 상태에 무척 만족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책임자를 맡으라니. 이건 아니야. 난 이 일을 맡으면 안 돼. 라는 생각에 손에서 땀이 났다. 

김 선생님이 출근 초반 내게 해준 말을 난 계속 잊지 않았고(여기선 절대 책임질 일 하지 마. 독박 쓰는 건 자기야), 사실 돌봄교실의 구조가 교묘한 책임 떠넘기기와 모른 체 하기, 눈치 싸움으로 돌아간다는 걸 난 알고 있었다.  


당시 여러 학교들이 파업으로 돌봄교실을 운영하지 않았으나 내가 다닌 돌봄교실은 쉬지 않았다. 돌봄전담사 선생님 두 분이 나오지 않으셨다. 그 인력을 채운 건 오전 시간제 선생님들이었다. 두 시간 뒤에 연계형 오전 시간제 선생님이 돌봄 3반아이들을 데려갔고 다른 오전 시간제 선생님이 연계형 교실에 오셨다. 시간제 선생님들은 파업에는 큰 관심이 없어보였다. 조금 더 허술하단 것만 빼곤 여느때와 같은 근무 시간. 


시간제 선생님과 돌봄 전담사 선생님의 상황이 다르니 그럴 만도 하다. 돌봄전담사가 네 시간 근무로 과도한 행정 업무와 부족한 임금때문에 좀 더 안정적인 제도 개선을 원한다면 오전 시간제 선생님은 돌봄 전담사와 달리 자격 조건도 거의 보지 않고, 주2.5시간, 한 달 단위의 위촉장을 쓴다. 한 달 단위로 쓰는 이유는 코로나19 상황이 언제까지 갈 지 모르니 이 대체 인력이 얼마나 필요하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일하는 이 년 내내 계속 근무하긴 했지만 말이다. 학교 수업으로 오후 돌봄교실만 열게 되거나 8시간 전일제 근무가 이뤄지면 이들은 더는 일하지 못할 것이다. 시간제 선생님들이 원하는 건 아마 파업보다는 출근을 하루라도 더 하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난 돌봄교실에 일하고 있어도 근로계약서자체가 없는 근로생이다 보니 파업이 포용하는 품 안에 나는 없다. 멀리서 응원하는 마음이야 보낼 수 있다만. 현장은 뉴스 기사보다 더 복잡하다.

오후에 나는 오전반 연계형 교실 선생님과 같이 고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로 나갔다. 오랜만에 밖에서 노는 거라 아이들은 신나게 뛰었다. 보안관 선생님이 사무실에서 나와 인상을 찌푸리고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보안관 선생님의 역할은 사회적 거리두기 시기 운동장에 아무도 없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게 보이다 민원이 들어가면 보안관 선생님의 책임이다) 놀이터에서 노는 것도 당연히 좋아하실 리 없기에 오전반 선생님과 나는 20분 정도만 놀다 들어오기로 했다. 난 아이들이 놀이터 밖 운동장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맡았다. 11월 한 겨울이라 추울만도 한데 맨손으로 구름 사다리를 만지고 깔깔대며 잘 논다. 학교 밖에는 학교 비정규식의 근무조건 개선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오전반 선생님이 내게 가까이 와서 말했다.

“난 아니라고 생각해. 선생님. 우리는 노력하지 않았잖아.”


오전반 선생님은 소위 연고대 중 한 군데 국문과를 나와 계속 입시 학원 선생님으로 일했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나서 일자리를 찾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내게 일전에 말한 적이 있다. 입시 학원에서 일할 때 그녀의 시급은 아무리 적게 받아도 오만 원이었다.

“우리가 저런 걸 요구하면, 지금 정규직 교사들이 한 노력이 뭐가 돼? 저 사람들이랑 우리가 같은 대접을 받으면, 임용고시까지 본 노력이 없어지는거잖아. 저걸 요구하는 게 말이 안되는거지.”

난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물어보고 싶은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지만(우리?), 묻지 않았다.

“우리는 그냥 봉사하는 거야. 봉사한다고 생각하고 일 안하면 이 일 못해.”


봉사는 결국 공짜 노동이고, 공짜 노동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일을 못한다는 건 역시 이들도 압축 노동과 공짜 노동의 열심히 제공하고 있는 인력 중 하나인 것이다. 노동자의 권리가 파이 자르기 싸움이라고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는 나는 한 달려나가는 아이들을 보며 한 귀로 흘렸다. 그녀가 이 일을 그만두더라도 어린 아이가 있는 입장에서 다시 입시 학원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오전반 선생님은 얼마 뒤 돌봄교실을 그만두었다. 병행하던 유치원에서 과학교사 일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그건 주 5일6시간 근무였고 고용보험에 퇴직금도 주었다. 오전반 선생님이 떠난 자리엔 금방 새로운 선생님이 들어왔다.

후일 강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돌봄전담사 파업으로 약간의 성과가 있었다고 한다. 돌봄전담사는 행정 업무 수당 3만원을 받게 되었다. 행정 업무 수당으로 덕분에 본래 행정을 나눠 맡았던 부장 교사 등은 행정 업무를 전처럼 많이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그 외에 근무 시간 조정 등은 여전히 투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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