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은 May 10. 2023

고학년


겨울 방학, 아침에 출근하니 3학년 지우가 현관 계단 앞에서 실내화 가방을 차고 놀고 있었다.

“안 들어가고 뭐해?” 내가 물었다.

“교실 문 잠겼어요.” 지우가 말했다.


돌봄교실이 있는 2층으로 가니 연계형 교실은 정말 문이 잠겨있다. 돌봄2,3반은 8시부터 선생님들이 출근하기 때문에 열려 있다. 연계형 김 선생님은 아홉 시 반에 출근하신다. 방학 동안 김 선생님의 근무시간은 아홉 시 반부터 열두시까지 주 12.5시간. 오후에는 다른 시간제 선생님이 와서 2시간 반을 근무하고 간다. 이 아담한 근무시간의 의도는 당연히 주휴수당을 피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아이들이 선생님 출근 시간에 맞춰 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맞벌이 가정인만큼 부모님이 출근하고 나면 하나 둘 씩 돌봄교실로 오는 데 고학년을 맡아줄 곳이 없다. 돌봄 2,3반은 저학년 교실이고 그 자격 조건에 충실하다.


지난 번에 지우는 너무 일찍 왔고, 그래서 돌봄 2반에서 잠시 책을 읽고 있었다. 아이를 바래다주러 온 학부모가 그걸 보고 어떻게 3학년 남자애가 돌봄 교실에 있느냐면서 민원을 넣었다. 

결국 오전에 일찍 오는 내가 연계형 교실 자물쇠를 열고 아이들을 들여보낸 뒤, 한 시간 동안 아이들을 맡는 걸로 했다. 

나무 바닥이 그대로 드러나고, 난방도 잘 돌지 않는 연계형 교실에 앉아 푹신한 매트와 장난감, 새 책이 있는 저학년 돌봄교실을 보면은 고학년이 여기서 천덕꾸러기 신세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연계형 교실은 애초에 저학년 교실과 달리 지자체 지원이고, 예산도 다르고 고용 주체도 다르니 서로 거리가 있는 건 당연하다만 아이들 입장에선 작년까지 다녔던 돌봄교실에 못 들어간다는 것도 이상할 것이다. 연계형 아이들도 다 2년간 저학년 돌봄교실을 거쳐 왔으니까. 

혹여 아이들끼리 문제가 생기면 연계형 교실 아이들이 먼저 눈칫밥을 먹는 것도 사실이므로 김 선생님은 늘 우렁한 호통으로 아이들이 복도에서 뛰어다니거나, 동생들을 건드리지 않게 단속하지만 늘 성공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왜 돌봄교실은 고학년 반은 운영하지 않을까? 연계형 교실도 본래는 없었으나 학부모들의 요구로 만들어진 거라고 하니, 아홉살 아이가 열 살 됐다고 돌봄이 필요하지 않은 것도 아닐테고. 아홉 살까지 푹신한 매트 위에서 놀던 아이들은 왜 열 살이 되면 삐걱이는 책상에 앉아 노는가. 


내 생각은, 고학년 아이들은 다루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저학년 돌봄은 양육 노동과 비슷하다.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고 일상의 기본 습관들을 가르치고…아이들과 쌍방 소통이 잘 안되므로 에너지를 더 소비하지만 어떤 면에선 편하기도 하다. 저학년 아이들은 내 영혼없는 맞장구로 어느정도 커버할 수 있다. 반면 고학년은 열 명이던 스무 명이던 일대일 관계다. 한명 한명의 상태와 성격과 배경이 다르고, 그에 맞춰 아이들을 대해야 한다. 한 학년 올라갈수록 아이들이 일으킬 수 있는 문제는 더 복잡해져서 따돌림, 학습부진, 이상행동 등 다양하다. 2학년 윤지의 오빠 4학년 윤호의 경우, 무언가 참지 못할 일이 생기면 머리를 자꾸 긁다 교실 밖 복도에 드러누워 소리를 질렀다. 희수와 주영이의 경우 은근한 따돌림이 물 밑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행동은 복잡해지는 데 통제는 어렵다. 이제 아이들은 선생님의 권위말고도 더 납득할 만한 이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말로 아이들을 통제하려면 민주적이고 논리적이고 그러면서도 사랑을 담아 카리스마 있게 지휘해야 한다. 김 선생님이 어떻게 그 일을 다 해내는지 모를 일이다. 돌봄은 이제 양육보다는 교육에 더 가까워지고, 학습 교육과 더불어 비행을 막기 위한 노력도 해야한다. 승준이의 형 4학년 승현이의 경우,  어느 날 연계형 교실 시원이와 다른 무리와 함께 가스레인지에 담뱃불 붙이는 흉내를 냈고 김 선생님한테 그 소식이 들어가 일주일 내내 된통 혼났다. 비행의 싹만 보여도 매섭게 잡는 김 선생님의 기술은 쉴 틈이 없다. 적어도 아이들과 상호 소통이 되는 것이 고학년들을 맡을 때의 즐거움이라면 즐거움이랄까. 3-4학년만 되어도 선생님이 힘들어서 진이 빠진 걸 금방 눈치챈다. 

돌봄교실이 고학년을 기피하는 이유는 알 것 같다. 그런데 이들이 복잡하고, 다루기 어렵다고 해서  돌봄교실 밖으로 밀려나야 할까? 


난 오히려 고학년일수록 돌봄교실과 같은 공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책임을 맡고 있는 어른과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이 없으면 아이들은 밖을 배회하게 될 테고, 거기서 벌어지는 문제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아홉 살이건 열세 살이건 아이들은 여전히 아이들이다. 미숙하기 때문에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필요가 있다. 안정된 성장과 생활을 위해 일정 수준까지 학습할 필요가 있고, 연계형 교실이 작은 공부방처럼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학습은 이 아이들이 안정된 성장과 생활을 위한 방법 중 하나다. 잘 돌보기 위해 교육을 같이 한다고 해야 하나. 물론 공부시키는 게 저학년들 종이접기만큼 아이들을 통제하기 좋은 방법이란 것도 사실이긴 하다. 

한바탕 공부 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김 선생님은 나를 불러 말했다.

“안정감이야, 선생님. 우리 애들은 다 맞벌이 가정이고 애들 혼자 있을 때가 너무 많아. 그래서 얘들은 여기에서 무엇보다 안정감을 느껴야 해. 그게 제일 중요해.”

얘네들 떠나고 나면 진짜 그만 둘거야. 김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그 말을 했다. 늘 열정과 호탕함으로 넘쳐보이는 김 선생님도 가슴 속에 사표를 품고 사시는구나. 늘 소란스럽고 왁자지껄하지만 아이들이 여기서 안정감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김 선생님이다. 한 사람이 계속 자길 신경쓴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 안정감은 만들어지는건지. 윤호는 더는 복도에 드러눕지 않고 승현이는 문제집이 찢어져라 공부 중이다. 주영이와 희수는 둘이 합심해 나를 놀리는 재미에 빠졌다.


난 3학년 지우를 데리고 쓰레기장으로 갔다. 돌봄 1반이 이사 준비로 낡은 책들을 많이 버렸기 때문이다. 연계형 교실은 예산 지원이 턱없이 부족해 새 책을 살 여력은 없고, 이런 재활용을 자주 이용한다. 책등이 찢겨지고 몇 장 없어지긴 했지만 ‘why?’시리즈가 잔뜩 있다. 동화책은 저학년을 위한 거니 그냥 두고 만화책들만 끈으로 묶어 손에 들었다. 지우도 책탑 하나를 팔로 안아든다.

“그거 다 들 수 있어? 안 무거워?”

“네. 더 들 수 있어요. 선생님 든 거 저 주세요.”

내 옆구리까지 오는 녀석이 더 들 수 있다니 안 될 일이지. 난 지우의 책탑에서 떨어지려 하는 만화책을 받아 들었다. 현민이가 궁금해서 복도에 나와 있었다. 둘이서 책을 나눠 들고 가는 동안 난 천천히 겨울 햇빛이 복도와 아이들의 동그란 뒤통수를 물들이는 걸 보고 있었다.

이전 23화 낮은 고추가 맵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