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떠난 여행
예빈이가 열한 살이 되던 겨울,
온 가족은 한국에 갔습니다.
눈이 소복이 내리던 어느 날,
보령의 작은 시장 골목을 걷고 있었지요.
하얀 입김이 호호 나오던 그 길목,
예빈이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한복집 쇼윈도 안에서 곱게 걸려 있던 고운 옷들이
하얀 세상 속에 색을 피우고 있었지요.
분홍빛, 하늘빛, 진보라빛…
그건 꼭 겨울 들판 위에 핀 꽃 같았습니다.
예빈이는 눈을 떼지 못한 채,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우와…”
가게 안은 따뜻한 온기로 가득했어요.
바닥에는 온돌이 지글지글했고,
사장님은 한복을 다리며 고운 김을 피우고 계셨지요.
예빈이는 혼자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여기서 일해도 좋아요.
매일매일 이 한복들을 입어볼 수 있다면요.’
하지만 현실은,
내일이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예빈이는 용기를 내어 말했지요.
“엄마, 저… 한복 하나만 사 주세요.”
엄마는 잠시 멈칫하며 말하셨어요.
“예빈아, 너 평소에 한복 잘 안 입잖아.
게다가 너 자꾸 크니까 금방 작아질 텐데…”
그 말이 다 맞는 이야기였지만,
예빈이의 마음은 이미 한복처럼 곱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럼, 제 용돈으로 살게요. 정말 정말 갖고 싶어요.”
엄마는 예빈이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셨어요.
예빈이는 새하얀 봉투 속에 들어간
연보랏빛 치마와 연분홍 저고리를 손에 꼭 안았습니다.
그리고 사장님이 마지막에 살며시 얹어준 진주 머리띠 하나.
예빈이는 꼭 연꽃 공주가 된 기분이었지요.
그날 밤, 호텔 창밖으로는 눈이 조용히 내리고 있었습니다.
예빈이는 새 한복을 이불 옆에 꼭 두고 잠이 들었지요.
그리고 꿈을 꾸었습니다.
하얀 눈 위에 펼쳐진 연못.
그 위로 연꽃 한 송이가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지요.
그 연꽃 위에, 누가 타고 있었을까요?
바로, 예빈이였습니다.
새 한복을 곱게 입고, 진주 머리띠를 단 채 말이에요.
연꽃이 멈춘 연못가에는
고운 한복을 입은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콩쥐였습니다. 옛이야기 속에서 연꽃을 타고 나타났던 그 소녀 말이에요.
“안녕하세요, 예빈아. 나는 콩쥐예요.”
예빈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숙였지요.
콩쥐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너는 마음이 참 곱구나.
한복 하나에 담긴 네 마음을 내가 보았단다.”
예빈이는 조용히 말했어요.
“그 한복이 너무 예뻐서…
매일 입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들었어요.”
콩쥐는 고개를 끄덕이며 예빈이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그 한복은 너의 진심과 닮아 있단다.
기억해요, 예빈아.
한복은 너를 더 예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네가 원래 예쁜 아이란 걸 보여주는 거란다.”
다음 날 아침,
예빈이는 눈이 녹아가는 창밖을 보며
자기 옆에 놓인 한복을 꼭 껴안았습니다.
비록 아직까지 그 한복은
2024년 1월 1일, 새해 첫날에만 입었을 뿐이지만—
예빈이의 마음속에는
그 겨울날 연꽃 위의 꿈이,
지금도 고운 빛깔로 피어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