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떠난 여행
2015년에 태어난 예준이는, 이제 만 열 살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누나에게 꼼짝 못하고 살아가지만,
어릴 때는 더 심했습니다.
누나 예빈이와는 딱 30개월 차이.
누나 눈에는 엄마가 늘 예준이만 끼고 도는
것처럼 보였지요
그래서 가끔은 엄마가 안 볼 때
예준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귀엽다~” 하다가도
툭 치거나 슬쩍 꼬집고는 했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예준이는 단 한 번도
엄마에게 이르지 않았습니다.
울지도 않고, 억울하다고 하지도 않고, 조용히 참았지요.
엄마는 그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웠습니다.
지금도 이 남매는 싸우기도 하고, 서로 놀리기도 하지만
또 어떤 날은 둘도 없이 다정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누나는 자기가 뭐라고 하거나 툭 거들거나 꼬집는것은
괜찮은데 누군가 예준이를 건드리면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짜 짜 짜 짜 짱가" 가 되어 나타나 예준이를 보호 해줍니다.
가끔 엄마의 눈에는 그것이 과보호 같아 보이기도 하지요.
"도대채 누가 엄마니?"
가끔 또 엄마는 말합니다.
둘이 대차게 싸워 재낄 때에는
“예빈이는 친할머니 댁으로, 예준이는 외할머니 댁으로 보내야겠구나! 맨날 싸우기만 하니…”
그러면 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를 보며 웃고,
금세 평화를 되찾습니다.
물론 그것도 잠시, 곧 다시 티격태격하는
우리 집 남매들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외할머니께서 달라스에 가셔야 하는 일이 생기셨습니다.
예전에는 혼자서도 잘 다니시던 할머니셨지만,
요즘은 먼 길이 조금 버거우신 듯했습니다.
엄마는 예빈이에게 말했습니다.
“예빈아, 할머니랑 먼저 달라스에 가 줄래?”
예빈이는 망설임 없이 말했습니다.
“응! 내가 잘 모실게요. 할머니랑 시카고에서 달라스까지 비행기 타고 잘 갈 수 있어요!
비행기가 흔들릴까봐 조금 무섭기는 하지만 잘 할께요.”
그 말에 엄마는 마음이 놓였습니다.
어느새 든든한 큰딸이 되어 있구나 싶었지요.
엄마는 예준이에게도 같이 먼저 그곳에 가있으면 어떨까 말했지만
예준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안 돼요, 엄마. 그날은 방학하기 전 마지막 날이에요.
그날은 공부는 안하고 학교에서 아이들과 게임도 하고
간식도 먹어요. 그런 날 결석하면 너무 아쉬워요.
저 며칠 뒤에 엄마랑 같이 갈게요!”
엄마는 마음 한켠에 조금 걱정되었습니다.
어린 아들을 누나 없이 며칠을 혼자 두는 것도,
딸을 할머니와 먼저 보내는 것도
모두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지요.
예준이가 태어난 이후로 둘이 이렇게 5일씩
떨어져 있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예빈이도, 예준이도 너무나 잘 지냈습니다.
누나 없이도 씩씩하게 등교한 예준이,
엄마 없이도 할머니를 챙기며 달라스에서 잘 지낸 예빈이.
둘 다 정말 대견했지요.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왔습니다.
엄마와 예준이가 비행기를 타고 달라스에 도착한
날이었습니다. 엄마는 예빈이가 공항에 마중 나와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공항엔 누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순간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아… 이제 다 컸구나. 엄마 없이도,
동생 없이도 잘 지내는구나…’ 하고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예빈이와 다시 만났을 때,
예빈이는 너무 반가워서 펄쩍펄쩍 뛰며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엄마! 예준아!” 하며 두 팔을 벌리고 뛰어왔지요.
예준이도 “누나~!” 하고 소리치며 누나에게 달려가
꼭 껴안았습니다. 그때 엄마는 보았습니다.
예준이의 두 눈에 그렁그렁 맺혀 있던 반가움의 눈물을요.
십년간 같이 지내던 누가가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요.
말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이 예준이에겐 정말 소중했던 모양입니다.
그날 이후로도 이 남매는 여전히
싸우고, 웃고, 또 싸우고,
그러면서도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세상에 하나뿐인 친구로 자라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