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홍콩 영화
처음 그를 본 건 바로 이 영화였다.
‘천장지구(天若有情)’.
세련된 제목의 뜻도, 홍콩의 사회적 배경도, 느와르라는 장르조차도 잘 몰랐던 나에게,
그저 유덕화라는 이름의 남자가 가슴을 울렸다.
청자켓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뒷골목을 질주하는 청춘.
그는 건달이었고, 폭력배였으며, 사랑에 서툰 남자였다.
하지만 그 눈빛 하나로, 그 담배를 무심히 털며 창밖을 바라보던 순간만으로도
나는 그를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남자라고 믿어버렸다.
그 시절의 나는, 아마도 사랑에 목마른 나이였을 것이다.
어디선가 누군가 나를 ‘절절하게’ 사랑해주길 바랐고,
거칠지만 진심인 고백이,
한 여자를 위해 모든 걸 내던지는 영화 같은 사랑이
현실 어딘가에도 있으리라 믿고 싶었다.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은행 강도 후, 쫓기는 그들이 한참을 달아나던 도중 —
우연히 휘말려버린 조지지가 화물트럭 위에 매달린 채 공포와 싸우고 있던 순간이다.
차에서 뛰어내릴 타이밍은 이미 놓쳤고,
뛰어내리지 않으면 위험한 고속 질주가 이어지던 그 상황.
그녀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매달렸다.
아니, 자신의 자존심과 두려움을 함께 움켜쥔 채 버텼다.
나는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 상황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얼떨떨했을까 싶으면서도
그녀의 얼굴에는 오기가, 두려움을 삼킨
결기가 묻어 있었다.
절박한 상황이었지만, 거기엔 힘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천장지구는 단순히 멋진 남자
유덕화를 위한 영화가 아니었다.
운명처럼 만난 남녀가 서로를 통해
조금씩 변해가는 이야기였다.
사랑은 그렇게,
무심히 달리던 트럭 위에서조차
사람을 흔들고, 흔들리게 만든다.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그 마지막 질주.
그는 이미 피투성이였다.
싸움에서 얻은 상처, 살아온 인생의 흔적,
그리고 그녀를 향한 마지막 용기.
얼굴에 코피를 흘리며 바이크를 타고,
마지막 힘을 다해 그녀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눈물이 났다.
그는 사랑을 구걸하지 않았다.
그저 한 번만, 단 한 번만
그녀를 세상으로부터 데려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 —
그녀가 떠나기 직전,
차 문을 열고 타려던 순간
그는 그녀를 뒤에서 끌어 안고
아무 말 없이 바이크에 태웠다.
도망치듯 달리던 그 길 끝에서
그들은 웨딩드레스를 파는 가게 앞에 섰고,
유덕화는 주유소에서 가져온 개스통을
가게 유리창에 던져 깨버렸다.
그 무모하고 미친 순간이,
어쩌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드레스를 훔쳐 입고,
턱시도를 걸치고,
두 사람은 다시 길을 달렸다.
그 순간,
세상엔 그들뿐이었다.
누구도 허락하지 않았지만
서로를 향한 진심이 너무도 뜨거워
더는 감출 수 없었던
그 마지막 사랑의 질주.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유덕화도, 나도 나이를 먹었고
세상은 많이 달라졌지만,
가끔은 그 시절의 나를 꺼내어 그를 다시 만난다.
흑백에 가까운 기억 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청자켓을 입고,
피 묻은 얼굴로,
바이크를 타고...
그리고 나에게 《천장지구》는…
한때의 내가 간절히 믿고 싶었던 사랑의 모양이다.
거칠고, 서툴고, 너무도 무모했지만
그 안엔 진심이 있었고
그 진심이 누군가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믿음을 품게 해주었던 이야기였다.
그리고 유덕화는 60이 넘은 나이가 되었지만
나의 최애 홍콩 배우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