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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칙칙폭폭 Aug 07. 2021

가끔 보는 고모의 기우일지 모르는 꼬마의 승부욕

그리고 은메달을 주머니에 넣은 올림픽 복싱선수

5살 조카가 유치원 방학을 맞이하여 할머니 집으로 오게 되었다. 때마침 나도 일주일 가량을 본가에 머물러야 하는 일이 생겼다. 모든 게 귀엽기만 한 할머니, 할아버지 사이에서 어느샌가 나는 초콜릿, 사탕, 영상을 금지하는 엄격한 고모가 되어있었다. 귀여워해 주기만 하고 싶은데 어느샌가 육아에 진심이 되어버린 나는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보기로 결심했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어릴 때 잠시 봐주며 형성된 관계도와 책임감이 쉬이 벗겨지지 않는다. 게다가 육아책은 읽어보지도 않고 아이는커녕 미혼인 나의 교육방침이 제대로 되었을 것 같지도 않아 여러모로 진퇴양난이다.


유치원에서 사회생활을 해서 많이 자란 조카는 훌쩍 자라 있었다. 애교쟁이에 공주가 된 조카는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조금 당황스럽긴 했다. 걱정이 된 것은 꼬마의 승부욕이었다. 어린아이들은 모두 다 이기고 싶어 하고 좋은 것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할아버지와 윷놀이를 하면서도  이기기 위해 저 멀리에서부터 윷을 배열해와서 던지고, 그러면 안된다고 하면서도 그저 귀여워서 봐주는 할아버지의 관계가 괜찮은 것인가. 친구들과 지내면서는 그러지 않을까. 좋은걸 차지하기 위해 고집부리는 건 아이들의 대체적 심리여서 양보만 하게 한다면 항상 어디선가 ‘지고 오는’ 게 아닐까….


그리고 나는 그런 조카의 모습에 진정으로 화가 났고…. (어린아이를 접할 기회가 조카밖에 없기에 항상 어른처럼 대하고 만다…) 조카의 입에서 “어~ 어~ 친구들이랑 같이 놀 때 친구들이 나랑 안 놀아줘!”라는 이야기를 듣자 더욱 걱정이 되었다. 조카가 지어내서 이야기를 잘하고, 말문이 트이자 이런저런 아무 말이나 잘하니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친구 이야기를 하면서 얼핏 내비치는 어두운 얼굴도 신경 쓰이는 점이었다.


정정당당하게 이겨야 진정하게 이긴 거라고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마땅히 이 이야기를 전달할 동화도 생각나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기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정정당당하게 이기지 않은 건 정말 이긴 게 아니야!’, ‘친구와 놀 때는 모두 다 재밌게 놀아야 하는데 이렇게 하면 그럴 수 없어, 양보하는 사람이 진짜로 이기는 거야’라고 말해보긴 했으나 정말로 이해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기엔 너무 어린것 같기도 하고…


게다가 올림픽 기간인 지금, 아침 뉴스에 영국의 복싱선수가 은메달을 땄음에도 불구하고 시상 내내 시무룩한 표정으로 시상대에 올라, 받은 메달 조차 걸지 않고 주머니에 스윽 집어넣은 일이 나오자 더욱 신경 쓰였다. 게다가 기사 헤드라이트에 “나는 그렇게 자라…”라는 말이 쓰여있자 더 심각해졌다.


승부욕이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일에 대한 추진력이나 열정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없는 것보단 좋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안 그래도 치열한 경쟁사회인 우리나라에서 결과에만 치중한다면 무너지고 상처 입고, 상처 입히기 십상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걱정이 가끔 보는, 어린아이를 조카밖에 볼 기회가 없는 고모의 기우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집 꼬마가 잘 지는 법을 배워서 실패에도 그 실패를 양분 삼아 잘 성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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