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에 진심인 사람
어렸을 때부터 생일에 진심이었다. 1년에 한 번 모두에게 축하와 선물을 받고 특별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6살밖에 안된 조카만 봐도 그렇다. 갖고 싶은 건 없지만 모두에게 자신의 생일선물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특히,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각각 챙겨줘야 한단다.(웃음) 그리곤 자기 생일이 있는 달로 바뀌자마자 일어나서 한다는 이야기가 "아싸! 내 생일이 있는 8월이다!"라고 얘기한 걸 보면 말이다.
선물을 받고, 별 것 없는 일상에 친구를 모아 생일파티를 하는 것은 즐거운 기억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일이 더 중요해졌던 건, 내 생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챙겨줬던 사람들 덕분이었다. 특히, 나와 가장 오랜 친구인, 유치원생부터 나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많이 주며 자라온 내 친구 역시도 생일에 진심이었다. 우리는 항상 선물을 정성껏 준비하고 생일편지도 자필로 꾹꾹 몇 장이나 눌러써서 주곤 했다. 어렸을 때 창피한 기억이지만, 언젠가 친구한테 내가 갖고 싶다고 이야기했던 게임 CD를 선물로 받지 못했는데, 그 자리에서 울어버려 여러 사람이 당황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은 오히려 친구가 나를 생각해서 준비해 준 선물에 더 감동받았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처럼, 그날을 위해 달려오다가 사실 막상 그날이 되면 별 게 없을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기대가 너무 커버려서 그 기대에 충족이 되지 않는 게 맞을지 모른다. 그저 가족들과 간단히 케이크를 불고 먹는 것은 시시한 생일이 되어버려 특별하게 보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우울해졌을 때도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특별한 날이긴 하니 기억나는 일화가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나에 대한 연민이 가득했던 생일이었는데, 바로 19번째 생일이었나 보다. 나는 미술을 전공했고 실기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지방에서 서울의 학원을 다니기 위해 잠시 고시원에 방을 얻어 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입시가 급박했을 당시가 훨씬 힘들었지만, 생일날 특별한 것 없이 학원에 나가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사실이 슬펐다. 내 생일은 항상 방학이었고, 방학은 언제나 여유가 넘쳤는데 입시를 앞두었기에 친구를 만나서 논다거나 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쓰다 보니 생각났는데, 내성적인 성격 탓에 미술학원에서 안면 정도는 트고 점심을 함께 먹곤 했지만 그날이 내 생일을 알고 있던 친구는 없었던 것 같다.
오전에는 괜찮았지만 학원에 있는 내내 내 생일이 1분 1초가 지나갈수록 우울해졌다. 점심시간에는 내가 가고자 했던 대학 캠퍼스가 코앞이었기에 가서 음악을 들으면 운동장을 내려다보며 앉아있었다. 근데 오히려 그러고 있는 모습이 더 처량해서 눈물이 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마음에 오히려 스스로를 더 시련을 겪는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몰고 갔던 것 같다. 그러고 오후에 그림을 봐주시던 선생님과 이야기하며 또 조금 울었던 것 같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는데 결국 원장선생님도 알게 되고 학원 끝날즈음 문화상품권을 건네주시며 달래주셨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쓰고 보니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 없는 내성적 아이가 하루종일 학원에서 입시 그림만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 못 한 이야기는 객관적으로 봐도 짠한 것 같다.
이 짠했던 생일이 생각나는 건, 10여 년이 지난 이 생일에 학위논문 때문에 숨죽여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근데 이번엔 짠하지 않다. 아닌가? 짠하지 않아서 더 짠하다. 나보다 먼저 생일을 맞았던 친구가 '이제 나이만 먹는 생일은 기쁘지가 않다'며 말했는데, 나도 그런가 보다. 그토록 중요했던 생일이, 돌연 '생일이 별거냐' 싶었다. 생일의 설렘이 없다는 게 으른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웃프다.
슬픔은 없고 그냥 덤덤히 받아들인다. 그래도 생일을 오래 즐기고 싶어서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긴 했다. 그리고 떨어져 있는 부모님과 서로 축하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통화하고 나와서 맛있는 아침을 먹고 카페에서 논문을 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번 생일에 못하는 건 친구들을 못 만나 왁자지껄한 생일파티를 못하는 것이지 스스로를 위한 선물도 사주고, 챙길 건 다 챙겼나 보다. 여전히 나 생일에 진심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