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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a Days Jan 09. 2021

물건에 대한 서사 -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에서 사 온 작은 액세서리 케이스

이사를 하며 마주한 나의 물건들을 보며 맥시멀리스트인 나의 물건들에 대한 서사를 풀어나가 보는 게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하나하나 마주 하는 것에 애정을 담아 서사를 풀어내면 그 나름의 이유와 또 마음들이 생기겠지 싶다. 


어릴 적, 물건을 구매하는 것은 어느 정도 나의 콤플렉스를 완화해 주는 무엇이 되었고, 취향을 다져가고 쌓아나가는 것은 지금도 하나에 꽂히면 제쳐두고 몰두를 하는 나의 성격과 강한 에고가 시너지를 내어 과한 물건 구매로 연결이 되었다. 그랬기 때문에 실제 부모님께서 물려주시는 좋은 물건들이 빛을 발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중학교 2학년이 되자마자 나는 아버지 직장의 발령에 따라 동유럽에 있는 우크라이나라는 생소한 국가로 가게 되었다. 나는 처음 듣는 그 나라의 이름 역시 창피하여 당시 다니던 중학교에서 ‘어디로 가니’라고 하면 동유럽에 있는 국가요 정도로만 이야기를 했었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 늘 영어 성적만큼은 100점을 받던 나도, 정말 동양인이라고는 나와 내 동생밖에 없는 프라이빗 국제학교에 가서는 꿀 먹은 벙어리였다. 특히나 이 프라이빗 국제학교는 나처럼 아버지 발령으로 우크라이나에 살게 된 아이들 뿐만 아니라 유럽 등지의 난다 긴다 하는 정치인과 사업가의 자녀들이 있는 곳이라, 처음에 텃세도 많이 겪고 한국에서 막 온 똑 단발에 동글동글 돌아가는 안경을 쓰고 영어도 어눌한 아이가 적응을 하기에는 녹록 치 않은 곳이었다. 


하지만 나의 성격도 성격인지라 유독 까다로운 동시 나를 탐탁 치 않게 보았던 영어 선생님 앞에서 대판 몇 번 대들고, 몇 달 조금 고생하며 이 악물고 과외를 하는 동시 (나는 이를 악 물었다만 이전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그 선생님은 우리 집에 먹으러 오는 느낌이었다), 나를 계속 괴롭히는 무리들을 대수롭지 않은 척 버티다 결국 그들의 마음까지 대부분 산 후, 다음 학기 때부터 반장 같은 개념의 학생회 학년 대표를 맡게 되며 8학년 때부터 12학년 때까지 그 자리를 놓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학교에서 제일 공부를 잘하고 예쁜 동시 그 나라에서 유명한 사업가의 집 아이와 절친이 되어버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나를 쉬이 건드리지 못하게 되었다. 하나 말할 것은 우리 그 아이에게 다가간 것은 내가 아니었는데, 아직도 우리가 어떤 접점으로 그렇게 친해진지 모르겠다. 여하튼 우리는 매 주말 서로의 집에 가서 자고 하루에 두세 시간씩 통화를 하는 사이가 되었고, 그 친구 덕에 나는 헝가리에 가서 좋아하는 영국 밴드의 공연을 보는 법도 알게 되고, 생경한 경험들도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이곳에서 평범한 동양인인 내가 계속 살아남으려면”의 몇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엄마가 싸주는 기깔난 도시락이었다. 엄마가 싸주시는 김밥과 유부초밥을 한 입 얻어먹기 위해서 나를 무시하던 아이들도 내 앞에서 순한 양이 되어 한 입만 달라고 입을 벌리는 게 우스꽝스러웠다. 학창 시절 내내 그 도시락통이 나중에는 어떤 훈장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화장품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 엄마는 당시에도 나이에 비해 많이 어려 보이고 어떤 것을 입어도 돋보이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손재주도 좋아 화장을 참 예쁘게 하셨는데, 그런 엄마의 옆에서 화장을 훔쳐보며 이것저것 바르기 시작했다. 


그러한 관심이 이어져 결국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화장품을 구매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외로운 타지 생활에 혹여 도움이 될까 싶어 딸이 원하는 물건은 다 사주셨던 아버지 덕에 고등학생인 나의 화장대 위에는 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색조 화장품이 놓여있었다. 그 화장품을 들고 친구들 집에 가서 화장을 해주면 친구들은 정말 마음에 들어 하며 나를 금손이라 칭했는데, 어쩜 내가 해주는 화장의 스킬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화장품들이 나를 우쭐하게 만들어준다는 착각을 했던 것 같다. 



여하튼 그런 시간들을 풀어내며 오늘 함께 소개할 물건은 우크라이나에서 사 온 나무로 된 액세서리 케이스. 내가 금으로 된 장신구를 보관하는 통이다. 지금의 서울 날씨가 일상이었던 우크라이나에서 주말마다 열리는 핸드메이드 장터 <안드례브스키 스뿌스크>에서 구매했던 물건이다. 당시에는 촌스럽게만 느껴졌던 그 나라의 공예품이 왜 이리 예쁜지. 당시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던 나의 짧은 안목이 아쉽기만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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