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7개월 동안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게 되었다.
약 10년의 회사생활 동안 수많은 안녕과 안녕을 하며 - 가장 많은 사람들의 아쉬움, 또 동시에 가장 많은 축하를 받았던 퇴사였던 것 같다.
누군가로부터는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사과를, 누군가로부터는 눈물을, 누군가로부터는 애정어린 감사와 응원을, 누군가로부터는 당시엔 내가 미웠지만 지나고보니 회사에서 가장 큰 귀인은 당신이었던 것 같다는 마음 찡했던 말을, 누군가로부터는 무덤덤한 격려를 받았고 그 모든게 앞으로 내가 더 일을 잘 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나는 퇴사를 정하고 같이 일했던 사람들을 위한 작은 선물을 사고 편지를 썼고, 조금씩 내가 하던 일을 매듭지었다. 이제는 나의 구-회사가 되어버린 곳에서는 여러 툴을 스마트하게 쓰고 있어 나의 인수인계 자료 외에도, 조금만 검색하면 나오는 과거 히스토리 덕에 나의 팀원들에 대한 걱정은 일도 없었다. 물론 일을 하는 동안에도 그들이 보여준 든든함이 가장 큰 부분이겠지만.
퇴사를 하겠다고 상사에게 이야기를 했다고 애인(이자 짝궁이자 베프라고 불리우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했을 때, 그는 사전 상의나 별도의 언지가 없어 다소 놀란 듯했지만 이내 "잘 했어 나라야. 어떤 결정이든 너가 한 결정은 잘 한거야. 대견해"라며 응원을 해주었다. 그 역시도 내가 다음 일을 잘 할 수 있는, 혹은 100세인생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어떤 일을 하든 지속적으로 든든한 자양분이 될 것 같다.
퇴사 다음날, 나는 전 회사(라 부르는게 상당히 어색하다)에서 많이 친했던, 나와 비슷한 시점에 비슷한 고민을 한 후 퇴사를 한 동료와 평소 가보고 싶었던 식당을 찾았다. 그는 전 회사에서 여러모로 나에게 많은 귀감이 되어주었던 - 내가 좋아하는 '그 어떤 척이나, 자기합리화 없이 진정으로 자유로움과 프로페셔널리즘의 발란스를 잘 유지하고 있는 사람'인데 - 우리 둘은 여러모로 생각하는 바나, 사람에 대해 느끼는 바 혹은 통찰하는 바의 핀트가 비슷할 때가 많아 몇 시간동안 대화를 주고 받는 편이다.
직장인들이 몰리는 시간을 피해서 만나자-라는 의지와 달리 애초에 우리가 선택한 핫플레이스는 직장인들은 가지 않는 곳이었고,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약 4-50분 웨이팅이라는 말에 주스를 한 잔 시켜 구석에서 홀짝이며 그간의 안부를 물었다.
우리는 그동안의 이야기들을 나누며 각자 일에 대한 가치, 생각, 앞으로의 방향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차가 비슷하여 그런지 현재 하고 있는 고민 역시 비슷해 둘 다 연신 신기하다며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에게 "저는 이직, 아니 회사생활과 연애가 많이 비슷한 것 같아요" 라는 말을 했다.
퇴사 전 '이직할 곳'을 열심히 준비하지 않았던 나는 - 현 회사에 더욱 더 충실히 마무리를 해야겠단 생각 + 신경을 분산 시키지 못하는 성격 덕 - 무언가 이직을 위한 이직을 하면 탈이 날 것 같았다. 정말 고심 끝에 도전 해 보고 싶었던 포지션 외에는, 단순 옮기기 위한 행선지를 고려하는 것은 나와 맞지 않았다.
연애 역시 나는 마찬가지다. 어쩌면 타이밍이 잘 맞아, 외롭기에, 혹은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쉬이 새로운 도전을 탐색하는 일부 친구들과는 달리 나는 죽이되든 밥이되든 현재의 관계를 마무리 짓고, 나만을 위한 기간을 지닌 후 다음으로 이동을 했어야 했다. 그 기간이 산뜻한 리프레싱 기간이 되기도 했고, 혹은 빠져나오기 힘든 나만의 고사 기간이 되기도 했다. 여하간 고지식한 성격 탓에 현 사람과의 관계가 점점 식어간다 한들 끝까지 열심히라 종종 미련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새로운 연애 전에 '내가 무엇을 중요시 하는지' 생각을 해보고 나와 충분히 대화를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을 한다. 기존에 내가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은 연애를 하며 하등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 "아, 내 삶엔 이런게 중요하구나"를 깨닫고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 것이 현재의 애인이었다. 물론 그가 '완벽한 사람'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많이 훌륭한 사람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내가 중요시 하는 것들에 많이 부합이 되어서다.
여러 경험과 생각, 그리고 깨우침을 통해 나는 천성이 선하고 따뜻하며 안정적이되 마냥 무르지 않은 사람, 생각이 가볍지 않되 유머러스한 사람, 생활력이 강하고 진취적이며 우유부단하지 않고 어떤 부분에서는 나를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이 나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이 사람을 만난 것은 아니지만, 그가 그동안 보여주었던 모습들이 내가 중요시 하는 것들과 많이 비슷했고 그 덕에 내게 다가왔을 때 나는 무의식적으로 흔쾌히 그가 내밀은 손을 잡았던 것 같다. 그리고 알면 알수록 더욱 더 내가 중요시 하는 가치와 맞아서 조금씩 더더욱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연애처럼 직장을 구하는 것 역시 '내가 무엇을 중요시 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명예를 중요시 하는 사람인지, 금전적인 보상을 중요시 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워라밸인지 혹은 성장기회인지등에 대해. 막 퇴사를 한 전회사로 이직 전 나는 "원래의 나의 기질을 찾고 싶다" 라는 생각이 강했고, 여러 이유로 번아웃이 심하게 왔던 당시 많은 것을 내려놓고 연봉까지 낮추며 그 회사로 갔었다. 실제 다니는 동안 원하는 부분을 상당부분 충족 시켜주고 동시에 나를 성장시켜주었던 회사생활이었다. 물론 번아웃을 느끼게 해준 조직 역시 어느 일정 기간 동안에는 서로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주었던 파트너였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무엇을 중요시 할까. 또 3년 정도가 지난 시점 지금의 나는 '성장'을 갈망하는 것 같다. 나에게는 다소 편하지 않지만, 현 연차에 배우고 익히고 싶은 업무들이나, 그 속에서 나에게 여러 챌린지를 주며 성장하는 기회들에 대해 생각한다. 보고 배울 수 있는, 귀감이 되어주는 대상에 대한 갈망도 있고 내가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역시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중요시 여기는 가치에 상응하는 곳에서 그런 업무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연애와 이직 혹은 회사생활이 비슷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지난 연애가 모두 아름다울 수 없겠다만, 분명 지난 회사생활 처럼 지난 연애도 그 당시의 내게는 내게 필요로 했던 무언가를 주었을테고 분명 그 속에서의 단순히 '사랑'의 개념을 떠나 내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 성장을하고 배운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의 부족했던 부분 역시 반추하며 다음엔 더 잘 하리라는 다짐까지도.
아울러 연애 전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가며 소위 말하는 '밀당'의 과정을 거치는 것 처럼, 경력직의 구직 과정 역시 일방적으로 '저를 채용 해 주세요'가 아닌, 서로 핏 (Fit)이 맞는지, 서로 원하는 바가 일치하는지, 우리가 장기적인 관계로 갈 수 있을지를 가늠 해 보고 상호적으로 고려 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여하튼 나는 아직 서류상의 백수는 아니지만, 대외적으로는 퇴사한 자유의 몸이 되었다. 퇴사를 하면 하고 싶었던 일이 몇가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그동안 연락을 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기였고 나는 연락을 해볼 사람들의 리스트를 만들었는데 약 마흔명을 웃돌았다. 나는 친구들도 일년에 두세번 만나면 많이 만나는 편이고, 캐주얼한 연락도 잘 못 하는 (주변을 잘 챙기지 못하는) 편이라 날을 잡고 연락을 하고 밀린 안부를 묻는 것이 상대적으로 편한 성격이기에 이런 계기가 아니면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렵다.
적어둔 리스트에서 천천히 사람들의 이름을 훑어보았고, 피부과도 예약을 했고, 필라테스도 예약을 했고, 신혼집에도 조금씩 새로운 기물과 가구를 채워넣기 시작했다.
또한 전 회사에서 배운 점, 스스로에 대해 반추하며 많은 것들을 곱씹어보았고, 새로운 일을 위한 준비 그리고 다짐들 역시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이직과 연애는 상당히 흡사해서, 정리와 다짐의 과정 역시 비슷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