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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Apr 04. 2024

<나의 트랜지션 일기> 55장: 남자에요, 여자에요?

나에요

[55장: 남자에요, 여자에요?]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한테 관심없다’ 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어렸을때부터 과도하게 남의 눈치를 보는 문화 속에서 자랐지만, 바쁜 현대인들은 서로한테 관심을 가질 여유조차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다. 대체적으로 맞는 말일수는 있는데 한 가지 예외가 있다. 사람들은 남의 성별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관심이 많다. 일단 내가 앞에서 말한것처럼 남녀로 분리된 화장실을 이용할 때가 제일 심하다. 트랜지션을 시작하기 전, 원피스를 입고 밖에 나갔을 때가 몇 번 있었는데 길거리에서도 시선 때문에 힘들었지만 특히 화장실을 이용할 때가 제일 힘들었다. ‘남자’로 보이는 사람이 ‘여자옷’을 입은채로 남자화장실에 들어가니까 근처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흘끔거리면서 지나갔다. 어떤 아저씨가 나를 붙잡고 “여기 남자화장실인데 왜 들어오셨냐” 라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여자화장실을 들어가기는 두렵고 그렇다고 남자화장실을 쓰자니 시비가 걸리고..내가 원하는 옷을 입는것부터가 큰 용기를 내야하는 일인데 공중화장실 이용은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정체화 이후에도 한동안은 그냥 바지만 입고 남자화장실을 썼다.     

내가 아무리 여성정체성을 가지고 있어도, 가지려고 해도, 화장실에 들어갈때마다 지정성별이 의식되는건 어쩔 수 없었다. 끔찍하게 밀려오는 디스포리아에 몸서리가 쳐졌다.   

한동안 그러다가 머리를 어느정도 길렀을 때, 확실히 여성으로 패싱될 수 있을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여자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때에도 역시 마음은 편하지 못했다. 화장실을 사용하는 여자들 중 아무도 나를 신경쓰거나 쳐다보지 않았지만 괜히 내 마음이 찜찜하고 불편했다. ‘혹시나 들키면 어쩌지’ 하는 걱정과, 내가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는 - 전혀 그런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래서 성확정수술을 하기 전까지는 지갑에 정신과 진단서를 넣어놓고 다녔다. 혹시나 들키거나 신고를 당하거나 하면 보여주려고. 남자가 성범죄 목적으로 ‘여장’을 하고 여자화장실에 들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는건 사실이니 나는 그런 경우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될테니까. 


성확정수술까지 받은 이후에는 화장실과 관련해서는 큰 불편함은 없었다. 하지만 대신에 화장실 이외의 다른 일상은 여전히 불편한 일이 많다. 어디 가게를 들어간다던가, 택시를 탄다던가, 처음보는 누군가와 인사를 한다던가 하는 등의 상황에서 내 성별에 대한 언급을 듣는 경우가 많다. “(머리가 길어서) 여자분인줄 알았네요.”, “(위아래로 훑어보며) 근데 여자분이세요, 남자분이세요?” 라는 등의 질문을 면전에서 듣게되는 일이 이렇게 많을줄 몰랐다. 심지어 길을 물어보는 아주머니한테 길을 알려줬더니만 나를 빤히 보더니 “머리가 길고 이쁘장한데 목소리가..남자에요?” 라고 한 적도 있었다. 나는 성대수술을 하고 허스키한 중성적 목소리가 되었는데, 사회적 기준으로 치면 남자목소리로 들리긴 한다. 수술의 효과로 인해 의식해서 높게 말하면 음역대가 더 올라가긴 하지만 굳이 억지로 부자연스러운 고음을 내고 싶진 않았고, 결정적으로 나는 지금의 내 목소리가 좋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봤을때는 ‘생긴거는 여자같은데 목소리가 남자같아서’ 그렇게나 이질적이고 징그럽나보다. 벌레보듯 혐오스럽게 쳐다보는 시선을 참 많이도 겪었다. 그것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억지로 의식해서 말하면서 녹음해서 수백 번 들어보기도 하고, 너무나 절망적으로 느껴질때는 차라리 자해를 해서 목소리를 잃는게 나을까? 장애를 입어 말을 못하게 되면 당연히 아주 불편하고 힘들겠지만 적어도 남자취급을 받진 않을테니, 그게 낫지 않을까도 진지하게 생각을 해봤다.



'voice pitch' 라는 음역대 측정 어플. 이 숫자의 미세한 높낮이가 트랜스젠더들에겐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성대가 성별을 결정하는건 아니지 않나.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하다고. 내가 내 인생을 걸고,

그 모든 수술과 위험과 불리함을 감수하고 확립한 내 성별정체성을, 고작 내 목소리 몇 초 듣고나서 그렇게 쉽게 함부로 판단하고 무너뜨려도 되는건지. 그리고 설령 속으로 판단하더라도 그걸 굳이 면전에서 입 밖으로 꺼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일상에서 타인의 성별을 판단하는게 그렇게도 중요할까? 그리고 판단하더라도, 혹은 판단하기 어렵더라도 그걸 굳이 그 사람 앞에서 얘기해야 할까? 이건 성소수자 문제를 떠나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기본적 예의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 예의없는 사람들 때문에 나를 바꾸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여자같은 남자든, 남자같은 여자든, 징그럽든 어떻든 뭐, 그런 언어로 내 존재가 규정될 수 없음을 이제는 잘 안다. 어떻게 보여지든 나는 나니까. 남자냐구요? 여자냐구요? 나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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