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적이라고 단정 짓고 물리치려고 하기보다는 감정을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게 우리에겐 더 도움이 된다.
_레온 빈트샤이트(감정이라는 세계)
여기까지 이 매거진 <감정 디톡스>를 읽어 왔다면, 당신은 이렇게 말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마음의 뿌리라는 핵심 감정이란 거 나도 인정한다.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부정적인 감정이 있다. 매번 느끼고 생각할 때마다 나도 괴롭다.
독성에 물든 부정적인 감정을 직시하기보다 회피하다 보니 음주나 흡연, 게임 같은 중독성 습관으로 나를 괴롭히기도 한다. 감정의 독성은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도 노력을 안 해 본 게 아니다. 감정이나 생각을 바꾼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당신이 말하는 감정 디톡스란 게 대체 뭔데, 이렇게 장황설을 늘어놓고 있는가?"
당신이 말이 맞다. 당신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하기까지 시간을 너무 끌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려 한다. 이 매거진의 본론은 지금부터 시작하려는 독에 물든 감정을 어떻게 해독하느냐이다.
꺼내놓기
감정 디톡스의 첫 단계는 '꺼내놓기'다. 당신은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핵심감정'을 만들어 왔다. 부정적인 생각과 기억을 쌓고 다져왔다. 이것이 독성에 물든 묵은 감정이다. 꺼내놓기는 묵은 감정을 청소하기이다.
꺼내놓는 방법은 당신에게 수치심, 죄책감, 자책감 등 부정적인 감정을 떠올리게 하는 경험과 기억을 돌아보면서, 그때의 상황과 느낌을 생각는대로 써보는 것이다. 아마도 수시로 떠오르곤 했지만 청소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나를 괴롭히는 감정이 떠오르는 건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고,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며, 나 말고 누구나 내게 지금 당장 질책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대개 내적 외적 자극이 없다면 자발적으로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으려 한다.
만약 부정적인 핵심감정이 당신이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힘들고 괴로웠다면 아마도 상담을 받았거나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면서 해소해 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리 심각하지 않거나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용기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회피전략'을 수시로 혹은 지속적으로 써왔을 것이다. 그 '회피전략'이 위안이 되거나 나름 재미 또는 성취감을 주었을 것이다.
'회피전략'은 적당히 당신의 이해나 재미나 성취와 맞아떨어졌서 지속해 왔을 것이다. 회피전략은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해 왔기 때문에, 언젠가는 건강, 금전 혹은 정신적인 문제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거나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그 근본을 돌아보는 과정의 시작이 지금 하고자 '꺼내놓기'이다.
방법은 이렇다. 종이 한 장을 꺼낸다. 맨 위에 '나를 가장 불안정하게 했던 사건'이라고 적는다. 그 아래에 1, 2, 3... 번호를 매기면서 써 내려가자.
부정적인 핵심감정의 루틴에 따라 수시로 떠올리는 경험, 기억, 생각들을 글로 써보는 것이다. 이렇게 글로 쓴 당신의 감정은 결국, 당신에게 불안, 두려움, 수치심, 죄책감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강화하고, 이 감정이 다시 더 많은 기억을 끌어오는 악순환이 되어 왔을 것이다.
이러한 핵심감정의 악순환은 인간의 뇌의 '부정성편향'과 그대로 두면 복잡도 혹은 무질서가 증가하는 '엔트로피 법칙'이라는 자연의 법칙이 작용한 결과다. 이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때가 되었다.
모두 꺼내놓자. 불안정한 사건의 예는 내적이거나 외적인 것, 상상 혹은 실제 하거나 현재 혹은 미래도 모두 가능하다. 묵은 감정 꺼내놓기(적어보기)는 내면에 잠재되어 있고, 지금까지 부정적인 핵심감정을 만들고 키워온 감정의 과거와 뿌리를 돌아보는 작업이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감정적 문제가 해소된다"라고 했다.
물론 이 한 가지 방법으로 오랜 세월 나를 괴롭혀 온 그 강렬한 기억과 감정이 일시에 해소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분명 효과가 있었다. 특히 누군가에 대한 원망이 누그러졌고, 어린 시절에 내가 고통받은 상황에 대한 기억을 글로써 꺼내놓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 '상처받은 어린 자아'가 위로와 이해를 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
감정 꺼내놓기 즉 '글로 써보기'는 한 때 크게 유행했던 '정리하기' 열풍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삶의 나락에 빠졌던 사람들이 '정리하기'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사는 극적인 사례들이 많이 소개되었다.
당신은 지금 너무 많은 감정과 기억,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마치 너무 많이 먹어서 소화불량에 걸린 것처럼, 새로운 것을 채워놓을 여유가 없는 것과 같다. 지금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깨닫지 못한다고 바꿀 생각도 못했을 뿐이다.
당신은 지금 독성이 물든 묵은 감정을 새로운 긍정적인 감정과 기억, 생각으로 채우기 위해 이 글을 읽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당신의 머릿속을 비워야 한다.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들을 미련 없이 과감하게 벗어던지자. 그 방법이 지금 설명하는 묵은 감정을 글로 써서 표현하는 이다.
이 작업에는 부수적인 효과가 있다. 당신의 독성에 물든 묵은 감정, 당신이 오랫동안 기억하거나 생각하는 부정적인 감정을 확인하는 것이 바로 당신의 핵심감정을 찾는 과정이다.
감정 디톡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핵심감정을 찾고 그 감정을 우선 디톡스하는 것이다. 핵심감정 디톡스가 이뤄지면 감정적 문제의 80%는 해소된다고 봐도 좋다. 왜냐하면 계속 강조하고 있지만 핵심감정은 모든 감정의 필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묵은 감정을 글로 써본다는 것은 감정의 필터를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실천이 없다면?
한 가지 당신이 명심해야 할 게 있다. 앞서 말한 '중력의 법칙'을 기억하는가? 중력을 거스르기 위해서는 추진력이 필요하다. 우선 추진력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당신이 변하기 위해서,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인생 궤도를 벗어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스스로 선택하는 의지이고 실천이다.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전문가가 당신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해결책을 제시한다고 해도 당신이 받아들이고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없다.
'그건 다 아는 얘기 아닌가?', '뭐 별거 없잖아.' 이렇게 생각하고 또 다른 더 쉽고 당신이 별로 힘쓸 것도 없는 '정신 승리' 정도로 해결해 주는 방법을 찾아 헤맨다면, 당신은 현재의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다.
'5분 규칙'을 활용하자
시작이 가장 어렵다. 미루지 않고 당장 시작하는 방법으로 '5분 규칙(five-minute rule)'이 있다. 무언가 하기 싫은 일이 있다면, 그 일을 당장 시작하고 적어도 5분간 유지한다. 이렇게 하면 결국 그 일 전체를 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5분 규칙'은 '미완성 효과'라고도 불리는 '자이가르닉 효과'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자이가르닉 효과'는 러시아의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닉(Bluma Zeigarnik)이 제시했다. 사람들이 특정한 작업을 수행하는 동안 그 작업을 중도에 멈출 경우, 즉 미완성 상태에서는 그에 대해 기억을 잘 하지만, 일단 일이 완성된 이후에는 그 일과 관련된 정보들을 망각하는 현상을 말한다. 즉 뭔가를 하다 멈추면 기억에 남고 끝까지 해내려는 동기와 압박이 작용한다는 말이다.
정말 하기 싫더라도 딱 5분만 하겠다고 결심하고 자리에 앉자. 타이머를 5분에 맞추자. 종이나 노트를 준비하자. 펜을 들고 나를 괴롭게 했던 기억 몇 가지를 적어보자.
앞으로 제시하는 방법들도 마찬가지다. 딱 5분만 직접 해본다고 결심하고 실행하자. 그것이 당신에게 맞는 것이라면 당신도 모르게 멈추지 않고 계속하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미련 없이 5분 후에 그만둬도 좋다. 필요하다면 타이머를 맞추고 5분만 집중해도 좋다. '5분의 규칙'은 실행을 앞두고 생기는 심리적 저항감을 극복하게 해주는 방법이다. 그것이 자신에게 맞다면 끝까지 해내도록 도움을 준다.
PS.
본문에 '나를 가장 불안정하게 했던 사건'은 각자 노트에 펜으로 적는다면 좋다. 펜으로 적는 게 번거롭고 내 경험과 기억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고 싶다면 아래 링크에 자유롭게 익명으로 적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