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Down)

문학 번역가, 수영 강사로 일하다

by 백지민

다운(Down)


“자, 이제 숨 고르시면서 배영 발차기 다운(down) 한 바퀴!”


“선생님, ‘다운’이 뭐예요?”


한 회원이 질문하자 그제야 아차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초·중급 반에서 크게 생각하지 않고 회원들에게 익숙하지 못할지도 모를 용어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회원들에게 다운이란 천천히 가면서 숨을 고르라는 뜻이에요, 하고 설명해 주었다.


수업이 월말로 향해 가면서 운동량을 점차 늘려감에 따라 얼굴이 빨개져 숨을 헉헉거리는 회원들의 모습이 눈에 띄어, 그럴 때는 한 바퀴를 숨을 고르며 ‘다운’을 하고 오라고 한다. 그럴 때는—정해진 규칙이랄 것은 없어서 자유형 등으로 가도 되지만—나의 경우에는 거의 숨을 제일 자유롭게 쉴 수 있는 배영이나 배영 발차기로 주문하곤 한다. 초·중급 반이니 오리발을 끼고 1,200m 정도의 운동량을 준 날에는 수업 마지막에 오리발을 벗고 발목 스트레칭 겸 평영 1바퀴를 돌고 오라고 한다. 발목에 부담을 주었으니 평영 발차기로 발목을 돌리면서 풀어주며, 천천히 평영으로 가면서 숨도 고르라는 말이겠다.


그러나 ‘다운’이라는 개념은 왜 있는 것일까. 숨이 차면 그 즉시 운동을 중단하고 제자리에서 숨을 고르면 될걸, 왜 굳이 천천히 운동으로 또 한 바퀴를 다녀오라는 것일까. 그것이 더 숨이 가쁘지 않을까. 생활스포츠지도사 2급을 따기 위하여 수강한 연수 수업에서는 워밍업 및 쿨다운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몸이 갑자기 대시(dash; 전력으로 달리는 것)로 운동하게 되면 다칠 수 있으니까, 스트레칭 후 워밍업 운동을 꼭 해주어야만 하며, 또 갑자기 대시로 달리다가 우뚝 멈추어 버리면 근육이 아직 놀란 상태이므로 쿨다운 운동에 마무리 스트레칭까지 꼭 해주어야만 근육에 젖산이 덜 쌓인다는 것이다. 쿨다운을 제대로 해주어야 근육에도 운동을 멈췄다는 신호가 가고, 그래야지만 다음날 일어났을 때 근육이 덜 뻣뻣해지며 다시 운동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수업 시간 중간중간에도, 시간이 허용되는 한 회원들이 숨 가빠할 때는 다운을 한 바퀴씩 주문하곤 한다.


다운 방식은 선생님들마다 다양하다. 다운으로 평영을 주문하는 선생님도 있고, 자유형을 주문하는 선생님도 있고, 심지어는 접영(!)이나 IM 100(!!)을 주문하는 선생님도 있다(다운 접영, 다운 IM 100이라니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소리 아닌가 싶기는 하다). 반면에 아예 영법을 주문하지 않고 수중 걷기를 한 바퀴 하고 오라든지, 스트레칭을 10~20초간 한다든지 하는 경우도 있다. 어찌 되었든지 간에 그냥 제자리에 서서 숨을 고르는 경우는 없고, 어떤 루틴적인 활동을 주문한다는 것이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활발한 활동이 끝났음을 몸과 마음에 알리는 정례적인 움직임, 다운. 하나 다운이 비단 운동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퇴근 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뜨끈한 샤워. 소파에 앉아서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틀어 놓고 즐기는 맥주 한 캔. 오늘도 고생했다고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진정시키려 붙이는 차가운 마스크팩. 내가 좋아하는 향기의 보디로션. 바쁘게 뛰어다니던 낮 동안 미처 돌보지 못했던 끝이 까진 네일 아트 수정. 오늘 수고한 나 자신을 반겨주는 폭신하고 보드라운 침구. 이런 모든 것들이 하루 끝의 ‘다운’이라고 볼 수 있겠다.


만일 이런 다운을 하지 않는다면 다음날 업무 시작 때는 확실히 미처 정신적인 젖산이 해소되지 않은 채로 새날의 업무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 역시도 그날의 번역 업무를 마친 다음에는 저녁의 1~2시간이나마 자유롭게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지만 다음날의 업무가 지속 가능하다고 느낀다. 이런 활동 없이는 여전히 머리가 팽팽 돌며 번역을 하고 있는 듯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야근이나 추가 근무가 유독 힘든 이유는, 바로 이런 ‘다운’의 과정 없이 ‘대시’로 다시금 진입해야만 해서 정신적 및 신체적인 젖산이 누적되었기 때문이리라.


이렇게 사람의 몸과 마음은 신기하게도, 활동을 멈췄다고 해서 그 즉시 활동을 멈췄다는 신호가 뇌와 신체에 가는 것이 아닌 듯하다. 하루 종일 긴장하고 집에 돌아오면 여전히 목덜미가 뻣뻣하고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을 느낀 적이 있을 테다. 그럴 때는 나름의 정례적인 활동을 정해두고, 몸과 마음에 멈춤의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렇게 몸과 마음의 젖산을 빼 보는 것이다. 그러니 자, 우리 모두, 뜨거운 샤워와 보디로션과 마스크팩으로 다운 한 바퀴.




추신: 10화 연재를 맞이하여, 1달간의 재정비 기간을 가지고 2/27일 오전 11시에 《번역가의 수영 일지 II》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다시 뵐 때까지 평안한 나날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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