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질전환(量質轉換)

문학 번역가, 수영 강사로 일하다

by 백지민

양질전환(量質轉換)


“우와아! 박수!”


이쪽 레인 회원들에게 헤드업 자유형으로 반 바퀴인 25미터만 헤엄쳐 가라고 말해 두고, 저쪽 레인에서 자유형 발차기를 설명하다가, 이쪽 레인 회원들이 레인 끝에 모두 도착한 걸 보고서, 얼른 이쪽 레인으로 가서 다음 반 바퀴를 설명해야지, 하는 일념으로, 이마에 걸쳐 있는 물안경을 굳이 내려 쓰기도 귀찮아서 배영으로 대시해서 25를 헤엄쳐 간 순간이었다. 그저 회원들이 서 있는 곳으로 얼른 가고 싶어서 헤엄쳐 간 것인데, 초급반 회원들에게는 멋져 보였던지 일제히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자유형 무호흡으로 12미터만 가도 “선생님은 숨을 안 쉬신다”며 박수를 치는 회원들인지라, 손사래를 치며 이번엔 헤드업 평영으로 헤엄쳐 가라고 주문해 두었다.


번역을 가르치시는 교수님께서는 “양질전환(量質轉換)”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절대적인 양(量)을 늘려가다 보면 질(質)로 넘어가는 순간이 온다고, 그게 문학 번역에서는 10권이 기준이라고 하셨다. 책 한 권 한 권이 새롭고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도, 10권을 넘겨 보면 실력이 질적으로 향상되는 순간이 온다고 말이다. 이에 그 말을 들은 나는, 문학 번역을 하며 잘 안 풀리는 문장이 있거나 체력적으로 고된 순간에는 그 말을 떠올리곤 했다. 언젠가는, 한 권 한 권이 쌓여 질적으로 향상된 나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조금 더 표현 하나하나를 수월하게 넘길 수 있을 것이다, 하고.


언젠가 “일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도 있었다. 어떤 분야이든 그 분야의 일을 하면서 일만 시간을 보내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말이었다. 일만 시간을 보내려면 10년은 그 분야의 일을 하면서 보내야 하니, 10년간 하나의 우물만 파면 그 우물의 전문가가 되어 있다는 말이 맞겠다. 책 출간 과정을 고려해 보면, 하나의 책이 나오기까지 적어도 1년에서 길면 3년까지 걸리기도 하므로, 책을 천천히 낸다고 가정해 봤을 때 대략 문학 번역가로서 꾸준히 일하면서 10년을 보내면 10권의 책은 냈을 것이다. 그렇기에 문학 번역에서 전문가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 얘기를 들은 나는 번역하는 시간을 초시계로 재어 하루의 근무가 끝난 뒤 엑셀 파일에 입력하여 일 년간 번역하면서 시간을 얼마나 보냈는지 합산해, 일만 시간에서 제해 보기도 했다. 2017년부터 쟀으니, 1만 시간에서 모자란 시간은 해마다 8943시간, 8109시간, 7782시간, 5363시간, 3241시간, 2501시간 등으로 계속 줄어들었다. 허리가 뻣뻣해져서 다리가 저려올 만큼 책상에 앉아 있었던 시간, 졸린 눈꺼풀올리려고 커피를 연거푸 석 잔을 들이켜며 밤을 새웠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아마 내후년 정도가 되면 일만 시간을 채우게 될 것인데, 시기상 딱 10권째의 책이 나오는 시기이겠다. 10권째 책이 나오는 시기와 1만 시간이 채워지는 시기가 일치하다니, 정말 소름 돋게 정확한 법칙이 아닐 수 없다.


수영에서도 양질전환의 법칙은 존재한다. 나의 경우, 생활스포츠지도사 수영 2급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부족한 양을 채우기 위해 훈련량을 늘리면서 고생을 했더랬다. 본업을 유지하면서 수영 훈련을 하루에 2시간 이상 꾸준히 하고, 부족한 근력을 키우기 위한 지상 훈련도 하고, 그래도 기록이 줄지 않아 괜히 성질이 나서 물을 때려 보고, 뜨거워서 터질 것 같은 얼굴을 물에 담궈 보기도 하고, 수영장에서 나와서 나는 왜 안 될까, 하고 생각하며 울음을 참느라 입가를 틀어막은 손에서 문득 나던 염소 냄새도 맡아보았다. 그렇게 겨우겨우 양을 채우니—하지만 개개인별로 필요한 양이 어느 정도일지는 아무도 모르니 답답한 노릇이다—그리고 충분한 휴식을 가지니, 드디어, 기록이 줄어들었던 것이다.


초급반 회원들은 질로 넘어가기에는 상대적으로 양이 아직 부족하다. 수영을 시작한 지 1개월, 3개월, 6개월밖에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양을 어느 정도 채운 사람—나의 경우에는 5년—이 대단해 보이는 것이다. 하나 초급반 회원들이 그 정도의 양을 채운다면 더는 5년 차 수영인이 대단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미 양질전환을 체득했을 테기 때문이다. 번역과 마찬가지로 수영 역시도 끈기 있게, 일희일비하지 않고, 끝없는 여정을 걸어갈 준비를 해야 한다. 물 잡기 연습을 반복하고, 발차기 훈련도 반복하고, 일견 지루해 보이는 반복적인 훈련을 계속해야지만 드디어 감이 잡힌다. 팔을 저을 때는 이 각도가 나에게 맞구나, 내 라운드 숄더라는 신체적 특성상 접영 시 어깨 각도에 주의해야겠구나, 발차기를 할 때는 다리를 이 정도는 띄워야겠구나, 등의 느낌이 온다. 그 느낌이 바로, 우리가 일만 시간을 채워 간다는, 양이 드디어 질로 전환되어 간다는, 가슴 벅찬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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