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음으로는 양팔 배영으로 배영 호흡법을 배워볼게요. 양손을 위로 올릴 때 머리로 물이 들이칠 거니까, 그때 음—하고 코로 내뱉고, 팔을 아래로 저을 때 파, 하고 입으로 내뱉자마자 다시 숨을 마시면 돼요. 양손을 올릴 때 머리가 물에 잠길 텐데, 원래 그런 거니까 무서워하지 말고 음—하면 돼요. 할 수 있겠어요?”
“네, 해볼게요.”
소질—‘앱티튜드(aptitude)’. 어떤 것을 곧잘 하는, 그렇게 하는 경향이 있다는 형용사 ‘앱트(apt)’에 명사형의 어미인 ‘튜드(-tude)’를 붙여 만들어진 단어. 수영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면 정말로 말 그대로 수영에 ‘소질’이 있는 새싹들이 보일 때가 있어, 이 단어가 절로 머릿속에 떠오르곤 한다. 천부적인,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는 뜻의 ‘재능(talent)’과는 다른, ‘소질’. 물에 들어가자마자 헤엄치는 법을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물에 뜨는 것은 수영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표현하겠지만, 물에 들어가서 처음에는 헤엄치는 법을 모른다손 치더라도 자꾸 해보려고 하고, 그 유연한 관절로 금방금방 스펀지처럼 방법을 체득하는 것은 ‘소질’이 있다고 말할 법하다. 심리학에서는 육체적, 정신적 기능이나 상태 따위의 본능적, 선천적 경향이나 그런 태도를 일컫는 말이라고 하는데, 과연 수영을 포기하지 않고 일단 해보려는 그런 태도는 수영장 초급반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다.
수영을 음파부터 처음 배우는 어떤 어린이는 아직 수영을 배운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기도 하고 워낙 물을 무서워하며 운동에 소극적인 탓에 자유형 팔 돌리기와 발차기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지만, 마찬가지로 수영을 음파부터 처음 배우는 다른 어린이는 아직 수영을 배운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배영 진도에 들어가고 있다. 두 어린이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느냐 하면—어린이들이니 관절은 동등하게 유연하니 신체적 유연성은 차치하고—일단 되든 안 되든 몸으로 해보려는 도전적인 자세, 이것이겠다. 전자의 어린이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에 소극적이고, 무언가를 해보라고 해도 싫다고 몸을 뺀다면, 후자의 어린이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에 능동적이고, 설명을 귀 기울여 듣고, 되든 안 되든 일단 설명에 따라 몸을 움직여 보려고 도전한다. 초급반에서는 일단 몸으로 부딪쳐 보아야 아는 것이 있기에, 설명을 자세히 듣고 그렇게 일단 한 바퀴 돌고 오겠다고 도전을 하는 자세 자체가 수영 실력 향상으로 즉각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나는 어릴 적에 길거리의 간판을 어떻게 읽느냐고 엄마한테 계속 물어봤다고 (어머니에 의해) 구전으로 전해진다. 저건 어떻게 읽어, 또 저건 어떻게 읽는 거야. 저건 슈퍼마켓. 저건 세탁소. 저건 이불, 아니 이발소. 어린 나이에도 궁금한 것은 저 한국어라는 삐쭉삐쭉 괴상하게 생긴 글자가 어떻게 소리가 나고 어떤 뜻을 지녔는지였을 것이다. 한국어를 습득한 후 영어를 배우는 과정에서는, 외국어를 배우는 것 자체가 순수하게 기뻤다. 하나의 단어를 이 언어권에서는 이렇게 말하는데, 저 언어권에서는 저렇게 말한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다. 언어에 관해서 새로운 정보가 다가오는 것이 스트레스가 아니라 기쁨으로 찾아왔다. 왠지 들떠 새로 배운 단어를 여기저기 종이에 써 보기도 하고, 말할 때면 이런 느낌의 맥락이라면 그 단어를 썼겠구나, 생각하며 혼자 새로 배운 단어를 읊조려 보기도 했다. 물론 사용하는 맥락이 틀렸을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무작정 새로 배운 단어를 사용해 보았다. 그렇게 하루 종일 영어 생각만 하다 보니 영어 실력이 향상되는 중에는 누구나 꾼다는 영어 꿈(꿈속에서 사람들이 모두 영어로 말하는 꿈)까지 꾸었다. 그다음에는 일본어를 배우다 보니 일본어 꿈도 꾸었다. 이렇게 언어를 활용하면서 사고의 세계가 확장되는 것이 즐거워 언어 습득에 푹 빠지곤 했다. 언어 활용이 재미있으니 계속하게 되고, 그러니 언어 실력은 자동적으로 늘었다. 이렇게 틀리더라도 계속해서 어떤 하나의 분야를 파고들어 해보고 싶고 좋아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 어떤 분야에 대한 ‘소질’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이렇게 어릴 적에 소질을 계발하지 못했다고 성인이 되어서 완전히 그 분야에 대한 소질을 기르는 것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닐 테다. 어릴 적에 미처 영어에 취미를 붙이지 못한 성인들도, 충분히 영어를 다시 배울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영어 강사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중점을 두고 얘기해주는 것은—영어를 배우면서 마음껏 시도하고 도전하는 것이다. 그런 거 나는 못해, 말했다가 틀리면 창피하니까 말하지 말아야지, 어디서 들어봤는데 대충 아는 것 같아서 굳이 해보기 싫은걸, 내 나이가 몇 개인데 이제 와서 새로운 걸 시도하겠어, 하고 어른들의 체면 차리기가 우선시되는 태도가 아니라, 어린이가 처음 영어를 배우듯이, 문장이 안 되면 단어로, 단어가 안 되면 보디랭귀지로라도, 손짓발짓을 해 가면서라도 무작정 영어로 소통하려고 해 보는 것이다. 마치 어린이가 모래놀이를 하듯이, 뒹굴고 넘어지고 부딪히고 다시 일어나서 또 뒹굴어보는 것이다. 틀려도 좋으니, 두려움은 저 멀리 밀어두고, 그저 모래놀이를 하는 즐거움만 가지고 말이다. 이것을 위해 학생들이 서로를 재단하지 않고—누가 잘하니 못하니를 신경 쓰지 않고—마음껏 도전할 수 있는 영어 환경을 조성해 두니, 학생들이 영어로 말할 때 점차 두려움을 떨치고 자신감을 붙여 가는 것이 느껴졌더랬다.
영어와 마찬가지로 수영에서도, 어릴 적에 수영을 배우지 못했다고 한들, 수영을 배우기로 시작한 이상, 수영에 꾸준히 도전하려는 그 마음가짐과 태도만 있다면 충분할 것이다. 부딪히면 아프다는 것을 아는 어른처럼 몸을 사리기보다, 아직 아무것도 몰라 마음껏 나뒹굴 수 있는 어린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무작정 해보는 그 태도. 잘 모른다는 겸손함으로 언제나 배우려는 태도, 계속해서 도전해 보려는 태도. 물이 무섭다든가, 관절이 어린이처럼 유연하지 않다든가 하는 나름의 핸디캡이 있는 상태에서 수영을 시작한대도, 저는 이래서 못 해요, 저는 저래서 안 할래요, 하고 몸을 빼지 않고, 실패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단단하고 즐거우며 열린 마음으로 도전하는 그 태도만 있다면. 그 태도야말로 수영 실력 향상을 이끌어주는, 아니 그 어떤 분야가 되었든지 간에 실력 향상을 이끌어주는, 최고의 소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