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업

문학 번역가, 수영 강사로 일하다

by 백지민

첫 수업

수영장에서의 첫 수업에는 회원보다도 오히려 강사가 긴장한다는 것을, 회원이었을 적에는 미처 몰랐다.


물론, 숙련되고 노련한 강사라면 연초에 수영장에 몰려드는 인파—새해 결심으로 수영을 시작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도 으레 그러려니 하고 이미 익숙하겠지만, 초보 수영 강사인 나로서는 갑자기 늘어난 회원들의 숫자에 더더욱 긴장하게 되었다. 그 덕분에 앞에 나가서 체조 시범을 보이며 회원들에게 스트레칭을 시키면서도 괜히 긴장한 탓에 숨이 가빠와, 삐, 삐, 삐, 하고 규칙적으로 천천히 불어야 하는 호루라기를, 삐삐삐삐삐, 하고 빠른 비트로 부는 바람에 이상하게 리드미컬한 체조로 만들어 버렸다. (그거 아시는가, 수영장에서 체조할 때 사용되는 호루라기는 단체로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구매하는 것이다! 어떤 브랜드의 호루라기를 구매할지 나름 고심했다. 그렇다, 마치 학생이 공부에 신경 쓰기보다도 볼펜 색깔에 신경 쓰는 격이다.)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그 바람에 5분짜리 체조가 3분 만에 끝나 버릴 지경이 되었다. 체조가 너무 빨리 끝날 위기에 처하자 체조 막바지에 원래는 사회적 통념상 10번이면 끝나는 팔벌려뛰기에 재량으로 5회를 추가했다. 그렇게 30초를 늘려 겨우겨우 주어진 체조 시간을 채웠다. 도대체 목 돌리기를 빨리 한다고 (삐삐삐 왼쪽 삐삐삐 오른쪽 삐삐삐삐삐!) 무슨 이득이 있기에 나는 숨 고를 새도 없이 호루라기를 불었단 말인가. 심박수 증가가 이렇게 위험하다.


곧이어 강습을 하면서는 이 레인에 드릴을 설명하고 있으면 저 레인이 방치되어 회원들이 멀거니 서 있게 되니 이쪽저쪽을 번갈아 보느라 정신이 뱅뱅 돌았다. 어느 회원은 신규로 들어온 분이라 물에 뜨는 것조차 어려워하고, 다른 회원은 이미 접영에 팔 꺾기까지 마쳤으니, 그런 진도가 천차만별인 사람들을 한꺼번에 가르치는 것이 지난하게 느껴졌다. 선배 강사님들께 수영장에서는 일대일 강습을 하려고 하지 말고 회원들을 그룹으로 묶어서—이쪽은 접영 그룹, 이쪽은 평영 그룹 등—지도를 하면 된다고 배우긴 했지만, 진도가 각자 너무 다르니 누가 어디까지 배웠다고 했는지, 어떻게 공통 그룹으로 묶어야 하는지부터 헷갈릴 지경이었다. 거기다 혹시 관절에 무리가 되는 동작이 있을 경우를 대비해 수술하거나 아픈 곳이 있으면 얘기해 달라고 했더니, 이쪽 회원은 목디스크가 있고, 저쪽 회원은 어깨 수술을 했고, 또 뒤쪽 회원은 손목에 철심을 박았다고 했는데, 어라 이쪽이 무릎 관절 환자였던가, 아니 저쪽이었던가, 하며 아직 얼굴들도 다 외우지 못한 나에게 정보 과부하가 걸리고 있었다. 선배 강사님께서는 레인에서는 강사가 왕이라고 생각하고 자신감 있게 지도하라고 했지만, 폭풍과도 같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왕 노릇은커녕 헤엄쳐 가기만도 벅찼다.


타임에서는 초급반 운동량이 감이 잡히지 않아서 25미터 수영장 기준으로 2바퀴 또는 3바퀴씩 영법을 주문했더니, 수업이 끝나고 어느 연배가 지긋하신 회원이 어깨가 아프다며 살짝 볼멘소리를 내었다. “여기 다 나이 많은 사람들인데 그렇게 힘들게 시키면 아파요…….” 그렇구나, 싶어 쉬엄쉬엄할게요, 하고 답하기는 했지만 내가 초급이었을 때가 너무 까마득해서 도무지 어떻게 해야 회원들이 춥지 않으면서 적당히 보람차다고 느낄 정도의 운동량을 짜 올 수 있을지가 막막했다. 다음 타임은 물 공포증이 있으신 할머니 연배의 회원님, 폭주 기관차처럼 계속해서 달리고 싶은 청년 회원님 등 회원들의 체력과 진도가 천차만별이었다. 이쪽 레인에서 음파를 가르치고 있으면 저쪽 레인에서는 이미 시켜 놓은 영법이 끝나서 나만 바라보고 있고, 스마트 워치에 기록해 온 오늘의 프로그램은 물살 때문에 화면이 멋대로 눌려 있어서 잘 뜨지도 않고, 어디 보자 잠시만, 다음이 뭐였더라…… 이걸 하려고 했는데 이건 어려울 것 같으니 뛰어넘고 저것만 할까…… 하며 준비해 온 훈련들을 다 소화하지도 못하고 그야말로 혼란 속에서 어버버하다가 시계를 보니 어라, 벌써 50분이 되었네, 하고 끝난 느낌이었다.


이렇게 긴장되는 첫 수업을 마치고 나니, 영어 강사로 첫 수업을 했을 때가 생각이 났다. 당시는 내가 학생으로만 드나들던 강의실에 선생으로 들어가다니, 학생들은 의지할 서로가 있지만 선생은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니, ‘무섭다,’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학생은 실수해도 되지만, 선생은 실수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 두려웠더랬다. 그렇게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를 첫 수업을 넘어, 두 번째 수업, 그리고 한 학기를 넘어 보니, 그런 경직된 태도는 은연중에 학생들에게도 필시 전달되고, 학생들의 배움과 수업 분위기에도 미미할지언정 분명히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다음 학기부터는 웃자고 결심했더랬다. 웃는 것은 여유가 있다는 증거니까, 무엇보다도 이들은 내가 품어줄 학생들이니까, 아무리 긴장되고 두렵더라도 그런 마음은 티를 내지 말고, 내가 먼저 웃어야 한다고.


그렇게 이번에도 먼저 웃었더니, 이렇게 서툰 강사임에도 웃어 주시는 회원님들이었다. 아무리 초급반은 뭘 시켜도 재밌다지만, 킥판을 세워서 잡고 오리발을 끼고 발차기를 하니까 재밌네, 어유 양팔 배영은 상급반에서 하는 것만 봤는데 하니까 재밌네, 하고 새로운 훈련에 신이 나 보이셨다. 그 덕분에 다음 시간에는 어떤 훈련을 준비해 올까,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고 유익하면서 영법도 교정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을 무서워하지만 해볼게요, 선생님, 하며 물속에 머리를 넣고 음파를 훈련하시는 할머니 연배의 회원님도, 힘이 넘쳐서 물을 천장까지 튀기는 발차기를 하지만 아직 매끄럽게 나가지 못하는 청년 회원님도, 친한 친구와 수다를 떠시는 아주머니 회원님들도, 서툰 체조 시범에도 열심히 따라 해주는 어린이 회원님들도, 모두 다, 내가 길러야 할, 나와 함께 성장해 나갈 눈동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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