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모르는 사람과 부딪힐 만한 장소가 골목 어귀 같은 곳이었지만, 요즘은 버스나 지하철, 영화관, 쇼핑센터, 주차장, 횡단 보도 등 수없이 많다. 하지만 일정 거리 내에서 맞닥뜨리는 장소는 단연 엘리베이터다.
내가 다니는 헬스장은 3층이라 대부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린다. 엊저녁 운동을 마치고 땀이 흥건한 몸으로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였다. 서로에게 땀 냄새라도 날까 조심스러운 타이밍이었다. 함께 탄 두 명의 남자가 있었는데 헬스장에서 아직 안면을 튼 사람이 없으니 당연히 모르는 얼굴이었다. 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서로 인사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어제 함께 탄 두 사람은 잘 아는듯했다. 서로 친하게 이야기를 나누는가 싶더니 1층으로 내려오는 그 짧은 시간에도 서로 등짝을 치며 큰 소리로 장난을 쳤다. 밀폐된 공간에서 울리는 큰 소리에 나는 움찔 놀랐고 곧바로 불쾌해졌다. 잠시 후 1층에서 문이 열렸고, 나는 순간 손에 들고 있던 겉옷을 펼쳐 먼지를 탁탁 털었다. 이어 등 뒤에서 남자들이 하는 말이 들렸다. 왜 여기서 옷을 턴대? 하지만 이번에는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한번은 공동주택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오래된 아파트라 들어오기 전에 대대적으로 리모델링 공사를 했었다. 샷시부터 방문, 현관문 등 여러 가지 공사를 하며 업자들을 여럿 만났다. 하지만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기다리는데 1층에서 공사를 했는지 고압 산소통을 끌고 나오는 남자가 있었다. 아는 사람은 아닐 테니 나는 엘리베이터 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등 뒤로 지나가던 남자는 내 다리 쪽을 향해 호스로 공기를 칙 뿜었다.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남자는 태연하게 현관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남자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어쩌면 우리집 공사할 때 한 번 봤던 얼굴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공기라서 아플 리도 없고 옷에 묻지도 않았지만, 당혹스럽고 불쾌했다.
이렇듯 엘리베이터에 얽힌 일이 많다. 엘리베이터는 낯선 사람들이 부딪히는 공간이다.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 고의든 실수든 심리적 영역을 침범하기 쉽다. 하지만 분명히 공공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