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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그리고 남은 자의 몫

by 언제나 바람처럼


한 해를 이틀 남긴 월요일, 일터로 출근하듯 나는 아침에 집을 나섰다. 추위가 꺾였다는 기상캐스터의 말이 무색하게 아침 공기는 몹시 차가웠다. 나는 잔뜩 움츠러든 채 밤새 꽁꽁 언 자동차의 핸들을 잡았다.


일주일 전, 작업을 하나 끝내고 근처 종합병원을 찾았다. 며칠 전부터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붓는 증세가 있어 진찰을 받아봐야 할 것 같았다. 의사는 혈액 검사와 초음파 검사를 지시했고 잠시 후 결과를 보며 상담했다. 혈액 검사는 다음 날 결과가 나오고, 초음파 검사 결과를 보니 혹이 하나 보이는데 모양이 길쭉해서 조직 검사를 추가로 해보자고 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시키는 대로 침대에 누웠다. 의사는 주삿바늘로 목에서 조직을 채취해 검사한 후 결과는 일주일 후 나온다고 했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을 샅샅이 뒤졌다. 안면 홍조는 갑상선 질환인 듯했고, 초음파 화면을 떠올려 보니 암일 가능성이 있었다.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내가 암이라고? 그러면 어떡하지 …….


며칠 동안 천당과 지옥을 수없이 오갔다. 암이면 어떻게 되는 건가, 어떤 수술을 받아야 하고, 얼마나 치료해야 하나, 완치 확률은 어떻게 되나 등등... 사실, 초음파 화면상으로 암일 확률이 다분했다.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글도 써지지 않았다. 마음이 어수선하고 오만 가지 생각이 들끓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메모 노트 제일 뒷면에 중요한 것들을 적어 놓았다. 휴대전화 비밀번호부터 시작해 각종 통장과 공인인증서 등 내가 없을 때 가족이 확인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들을 써 뒀다. 검사 결과가 나온 다음 가족에게 알려줄 셈이었다.


한편으로는 막상 내가 암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의외로 덤덤했다. 올봄 엄마를 떠나보내고, 지난 여름 남편의 입원으로 마음고생을 해서 인지, 오히려 내 문제가 되자 당혹감이 덜했다. 몇 달 전 남편의 일은 너무 뜻밖이었고 무섭고 두려웠고 슬펐다. 병실에서 눈 빠지게 밤새워가며 인터넷에서 질병 정보를 뒤지느라 신경 쇠약에 걸릴 지경이었다. 그러다가 지쳤다. 내가 질병에 대해 안다고 한들 무엇이 달라질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급하던 마음을 내려놓고 의사를 믿고 지시대로 따르며 희망을 품기로 했다. 그러자 비로소 조금 편안해졌다.


이번에는 차분히 나의 시간을 정리했다. 어쩌면 떠나는 일은 더 쉽고, 남아서 살아가는 일이 더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 주말 아이들과 모처럼 홈파티를 즐기고 늦잠을 자던 일요일 아침, 뒤늦게 열어본 휴대전화에는 문자 폭풍과 함께 동영상이 와 있었다. 화면에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공항에서 시꺼먼 연기와 화염이 솟구치고 있었다. 서둘러 TV를 켜니 항공 참사가 벌어지는 중이었다. 나는 온종일 TV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비극을 목도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하루가 지나고 조직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는 월요일, 세밑의 아침 냉기는 움츠러든 마음을 더 얼어붙게 했다. 차가운 핸들을 잡고 병원에 도착했지만, 월요일의 병원은 원래 붐비는 데다 전날 벌어진 참사로 더욱 북적였다. 병원 근처를 뺑뺑 돌다가 어렵게 차를 세우고 병원으로 올라갔다.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마음은 온갖 상상이 오갔다. 드디어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의사의 책상 가까이 가서 자리에 앉으며 의사의 표정을 살폈다. 의사는 나를 보며 선뜻 걱정 안 해도 되겠다며 선종이라고 했다. 나는 머릿속으로 선종이 뭐지? 하며, 그러면 암은 아니냐고 물었다. 의사는 그렇다고 했다. 나는 철렁 내려앉은 가슴을 쓸며 진짜 암인 줄 알고 왔노라고 했다. 의사는 큰 걱정할 필요 없고 6개월 후 다시 검사 해보자고 했다. 혈액 검사 결과는 갑상선기능저하증으로 나왔고, 한 달간 호르몬 약을 먹으면 된다고 가볍게 이야기했다. 그렇게 죽음은 내게 가까이 왔다가 조금 멀어졌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다만 잊고 살 뿐. 눈앞에 저 많은 무고한 사람이 일 순간 등질 수 있는 세상에 우리는 산다. 나의 죽음을 고민했던 일주일을 돌아보며, 소중한 사람을 하루아침에 잃은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생각한다.


인간은 너무도 약하고 부서지기 쉽지만, 그 무엇도 해낼 힘 또한 갖고 있다. 불의의 사고로 떠난 분들을 애도하며, 부디 유족분들도 마음을 추스르셨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저런 참극이 벌어지지 않는 세상을 만들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음을 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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