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남사친/여사친을 생각할 때에 나오는 질문 중 하나는 "과연 남녀 사이에 진정한 친구 관계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냐."에 대한 질문이다. 이것은 마치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와 함께 불문율처럼 굳어진 우정과 사랑의 클리셰이다.
대만 드라마 <아가능불회애니>의 일본 리메이크작인 <나는 아직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를 보았다.
한국에서도 하지원, 이진욱 주연의 <너를 사랑한 시간>으로 리메이크하였으나 결과적으론 망했다...
고등학교 동창 사이인 남녀 주인공. 전학생 미타라이 요(아다치 리카)와 우등생인 남주인공인 이시다 렌(시라스 진)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엮이게 되는 것이 이 드라마의 줄거리이다. (아래부터주접 주의!)
그런데 그 사건의 결과란 것이 참으로 기묘해서 렌은 요에게 그만 '처음 봤을 때부터, 너를 무시하지 않고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말인즉슨,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그런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절대로 무리니 걱정마라.'는 것을 아주 대놓고 요의 면전에다 고백한다. 진심 너무하다.친해지고 싶다는 말을 정말 꼬고 또 꼬아서 말한다.꽈배기를 만들어도 이 정도로 꼬진 않을 듯.
그 뒤로 둘은 성인이 되어 직장을 다니게 되는 순간까지 서로의 모든 것을 공유하는 소울 메이트처럼 지내되, 절대 사귀는 것만은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아주 묘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주연 배우들의 절친 케미스트리와 현실적인 연애의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연기인 건지, 실제인 건지 헷갈리게 만드는 두 배우들의 케미와 평범한 일상도 특별하게 만들어 버리는 제작진들의 연출력이 더해져서 더욱 빠져들기도 했지만 보는 내내 아! 나도 평생 동안 이성이든 동성이든 저런 친구 한 명쯤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한밤 중에 요가 찡찡거려서 신칸센 타고 도쿄에서 나고야까지 맥주 사들고 위로하러 오는 남사친 클라스. 너는 한 시간을 걸려서라도 보러 올 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건 덤.
남주인공인 렌은 어느 장면에서는 이동욱이 보이기도 하고 박보검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는 인간 다정다감그 자체인 꽃미남이었다.
여주인공인 요는 보는 내내 서프라이즈의 여자 걔이자 프로시집러인 김하영 배우가생각났다.(닮았다고 생각함) 처음엔 웃을 때보이는 치아가 거슬렸는데, 계속 보다 보니 웃음이 매력적인 배우였다.그렇다. 두 배우의 얼굴이 개연성이다.공공연한 사실.
드라마 제목인 '나는 아직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는 극 중에서 렌이 항상 요를 바라보며 주문처럼 외치는 마음의 소리로 요에게 흔들리게 될 때마다 절대로 좋아하지 않고 평생 친구로 남을 것을 스스로에게 환기시키기 위한 대사로 나온다. 결과적으로 이 드라마의 핵심이자 정체성을 잘 내포한 제목이 되었다.
이런 류의 유사한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알 수 있듯이 이 드라마의 결론은 (나는 이제 너를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이다. 그렇다. 남녀 사이에 친구란 없다는 클리셰를 철저하게 답습하는 드라마이다. 둘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이 드라마는 시작도 안됐을 것.
친구 사이에서 연인이 되어가는 여정. 그런데 그 과정이 겨울철 삶은 밤고구마 정도의 퍽퍽함을 자랑해서 총 16부작 중에 후반 10 ~14회 정도 되는 회차는 스킵하고 보는 것이 정신건강에 나을 정도의 전개를 보여준다.아쉬웠던 부분이다.
(내용 이해에도 큰 문제가 없다. 전개가 답답 그 자체다. 아니, 애초에 고등학교 때 별생각 없이 한 말을 왜 성인이 될 때까지 그대로 믿는 건지(!) 대쪽같은 고구마 시종일관을 보여준다. 제발 그러지 마.둘만 빼고 시청자들은 이미 다 아는 그런 사이.)차라리 고구마 에피소드를 좀 줄이고 주인공들의 알콩 달콩을 더 추가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끝은 물론 해피엔드지만.
코로나 19 때문에 좀 우울한 나날들이었는데 집콕하면서 보는 드라마들 덕에 힘든 시기를 잘 버텨나가고 있다.지금 처한현실이 달지 않아서 그런지 달달한 맛으로 보기 좋은 드라마였다.(무엇보다도 드라마 안에서지만 마스크 안 쓰고 다니는 거 너무 부럽더라.)
p.s. 드라마 중간중간에 쓰인 indigo la end의 곡들인
結び様(musubizama), 小粋ね バイバイ(koikinabyebye)가 감정 이입하기 좋은 곡들인데, 15회에서 그 절절함이 폭발한다.정말 요즘 자주 듣고 있다. 기억에 많이 남았다.가사가 드라마와 찰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