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스나이퍼.
세상에는 배우 출신의 감독들이 많이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도 그중 한 사람이다. 책을 많이 읽다 보면 문득 글이 써보고 싶은 것처럼, 배우들도 연기활동을 오래 하다 보면 직접 작품을 만들고 싶어 지나 보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 그랜 토리노, 아메리칸 스나이퍼 인상 깊게 보았던 영화 중에 그의 작품이 더러 있었다. 오늘 다뤄볼 영화는 그중에서도 아메리칸 스나이퍼이다.
실제 미 해군에 복무했던 미군의 전설적인 저격수 크리스 카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된 아메리칸 스나이퍼. 솔직히 영화를 보기 전 들었던 생각은 많은 전쟁 영화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답게 역시 이것은 나의 작품이다 하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영화는 전쟁의 참혹함은 물론이거니와, 전쟁에 참여한 군인 한 개인의 숨겨진 고뇌와 아픔 또한 잘 다루었다. 영화 속 크리스 카일은 이라크 전쟁으로 총 네 차례 동안 전투에 참여하게 되는데, 처음의 전투를 참여할 때와 2차, 3차로 전투에 참여할 때 드러나는 심리묘사는 역시 탁월했다.
첫 번째 전투에서 그는 한 아이를 사살하게 된다. 이것의 그의 저격수로서 첫 저격이었다. 그 아이는 적진을 향해 수류탄을 들고 다가오고 있었고, 크리스는 그것을 막아야 했다. 침착하게 조준하여 아이를 사살하자 그의 엄마로 보이는 여인이 아이가 던지지 못한 수류탄을 대신 던졌으나 그 순간 그녀는 저격당했고 다행히 수류탄은 아군이 있는 곳에서 먼 곳으로 떨어져, 아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처음 죽인 대상이 아이와 그 아이의 엄마였다는 사실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조국을 위한 일이었다는 것으로 마음을 다잡으며 이후 점차 저격수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다. 이때까지는 인간적인 면모가 잘 드러났다.
사실 크리스는 본격적으로 전쟁에 파병 가기 전에 결혼을 하고 갔었는데, 첫 번째 파병에서 돌아오고 사랑스러운 첫째 아이가 태어난다. 병원에서 아이를 보다가 문득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겼음을 알고 혈압을 재었는데 고혈압이었다. 또한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듯 전형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드러나는데 이를 별 개의치 않게 넘기고 곧 다음 전투에 파병을 가게 된다.
두 번째 파병 간 장소에서 그는 친동생을 만나게 되고, 동생은 이미 지친 모습으로 아군들에게 레전드(전설)이라 칭송받는 형을 냉소로 맞으며 전쟁 상대국인 이라크를 저주한다. 형은 전장으로 복귀하는 길이고 동생은 본국으로 귀환하는 길이었는데 서로 대조적인 장면이 잘 묘사되었다. 두 번째 임무는 첫 번째 전투에서 사살하지 못하고 도주한 '도살자'라는 인물을 확실하게 살해하는 것이었다. 도살자는 끈질기게 미군들을 괴롭히던 적이었는데, 우연한 계기로 그의 부하를 사로잡아 역이용하여 도살자를 사살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
두 번째 파병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크리스는 어느덧 소년이 된 자신의 아들과 자동차 정비소를 가게 되었다가 기다리는 와중에 아들과 뽑기를 하고 있었는데. 한 미 해병의 참전용사가 그를 알아보게 된다. 그는 첫 전투에서 상대에게 저격을 당해 발목 부상을 입은 군인이었고 그때 크리스가 그를 업고 무사히 돌아오게 되었다며 크리스를 생명의 은인이자 영웅이라 말하는데, 이에 크리스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그 자리를 뜨게 된다. 그는 당연히 군인으로 할 일을 한 것뿐이지, 자신이 칭송받거나 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후 둘째 딸이 태어나는데 신생아실에서 딸의 모습을 보고 있다가 딸이 울음을 내었다. 그러나 자신의 아이를 신경 쓰지 않고 다른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에 유리창을 쾅쾅 치며 신경질적인 모숩을 보이게 되며,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다.(PTSD의 심화) 아내는 이런 크리스를 걱정하며 이제 일상으로 돌아오라 말하지만 크리스는 꿋꿋하게 세 번째 파병을 나간다.
전투에서 무스타파라는 적 저격수에게 동료인 비글스가 저격을 당해 부상을 입는다. 그는 곧 약혼을 앞두고 있던 사람. 기지로 이동해 동료의 수술을 보며 크리스는 복수의 칼날을 갈게 된다. 팀을 꾸려 복수를 하러 갔다가 적 매복지에 걸려들어 또 다른 동료인 마크를 잃고 만다. 이후 마크의 장례식장에서 마크의 어머니가 마크가 전쟁에서 쓴 글을 읽고 그에게 어떻게 생각하냐 물었는데 회의적이고 감상적인 내용에 차가운 반응을 보인다.
이 세 번째 파병 시점에서 크리스는 전쟁이라는 괴물에 먹혀버린 모습으로 나온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조국을 위한 숭고한 일이 아니라 개인적인 복수심으로 목표가 바뀐다. 첫 전투 전 단순히 애국심 넘치던 정의로운 청년 온데간데없고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군인만이 남았다. 전쟁이 얼마나 참혹하고 무서운 것인지 잘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이것은 전쟁이라는 매개체가 아니었다면 크리스에게 일어날 일이 없었던 것이었다. 전쟁이 아니었더라면 그는 평범한 인생을 보냈을 것이다.
네 번째 파병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 돌아온 그는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겨운 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정신과 의사의 권유로 상이용사들을 돌보아주는 일을 하면 어떻겠냐 권유받고 그 일을 하면서 점점 인간성을 되찾게 된다.
사실 우리는 전쟁의 참혹함을 모두 알고 있다. 직접적으로는 6.25를 몸으로 겪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통해, 간접적으로는 학교에서의 교육과 여러 미디어 매체의 정보들을 통해서. 그러나 군인 한 사람 한 사람의 고충을 알기에는 쉽지 않다. 막연히 힘든 생활을 할 것이라 추측할 뿐이다.
직접 전장을 뛰어다니는 군인들의 고충과 아픔을 공감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작품에 휴머니티 요소를 잘 넣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다웠다.
전쟁은 정말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개인에게 얼마나 피해가 가는 것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