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대한 단상

by Erebus


비가 내리는 것을 좋아한다. 너무 많이는 싫고, 적당히 땅을 적실 정도의 비가 내리는 것을. 창문에 맺힌 물방울들을 보는 것도 좋다.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어준다. 빗소리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정한 간격으로 내리는 빗방울의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자연의 ASMR이 따로 없다. 바람을 타고 내 코에 닿는 미세한 흙냄새도 비를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다.

비가 오는 날에는 창이 큰 카페에 앉아,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향긋한 커피를 즐기는 것도 좋다. 크지 않고 적당한 책 한 권을 챙겨서 조용하게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

비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매개체이다. 어린 시절 갑작스레 쏟아지는 빗방울에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실내로 뛰어 들어가기도 하고, 물 웅덩이를 텀벙 밟아서 신발과 바지 밑단이 다 젖기도 했고, 체육 대회에 갑작스레 쏟아진 비에 우산을 펴고 반 대항 축구를 응원한 기억도 있다.
요새는 가뜩이나 심한 미세먼지 때문에라도 내리는 비가 반갑게 느껴지는 날들이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영화가 한 편 있기도 하다. 너의 이름은으로 유명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전작. 언어의 정원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그 작품만큼 내리는 비를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아름다운 작화는 그 모습을 한결 극대화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에는 노트북으로 그 영화를 보는 것도 즐기곤 한다.

또한 비 오는 날의 사진은 얼마나 감성적인지 모른다. 비에 젖은 사물들의 모습은 평상시와는 다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지금처럼 이렇게 글을 적기에 더할 나위 없는 분위기를 연출해 준다. 창문을 조금 열고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적는 글의 맛이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을 알 수 없을 그런 멋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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