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프 코드의 아침.

그림 보고 단편소설 쓰기

by Erebus


케이프 코드의 아침은 화창했다. 마리는 별장 발코니의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그녀의 콧등을 간지럽혔다. 햇볕은 조금 따갑게 내리쬐는 날씨였다. 그녀는 창밖을 응시하는 것을 좋아했다. 아무 생각 없이 그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걸리는 것이 있다면 그녀의 표정이 조금 씁쓸하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눈은 점점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똑똑!
누군가가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부인. 아침 커피를 내려왔습니다.”
반듯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별장 관리인인 밥이었다. 밥은 10년 전부터 별장을 관리해 온, 그녀보다 이 별장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고마워요. 밥. 그 사람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요?”
“별말씀을. 늘 해오던 일인걸요. 예. 아직 돌아오시지 않으셨습니다.”
밥은 익숙한 행동으로 방 안에 놓여있는 작은 티 테이블에 금방 내려 커피와 간단한 토스트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그녀가 서 있는 방향을 응시했다.
“주제넘은 참견이지만 지금의 눈 상태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생각이십니까? 어쩐지 저는 걱정이 됩니다.”
“사람은 매일 볼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무심하게 생각하곤 하죠. 그도 마찬가지예요. 순간의 찬란함을 알지 못하고요. 그것을 알아내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비로소 알게 되지요. 때가 되면 언젠가 말할 날이 올 거예요.” 그녀의 남편은 언제나 바쁜 사업가였다.
밥은 조금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커피가 식기 전에 드시라는 말과 함께 방을 나갔다. 그녀는 검고 진한 커피를 보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커피색으로 물들어버렸다. 그렇게 몇 분의 시간이 지나고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녀는 별장 밖을 산책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별장은 새하얀 목조건물이었는데, 햇빛을 받으면 한층 더 밝아 보였다. 그녀가 늘 바라보는 발코니의 창문은 여닫이로, 흰색의 외관과 대비되는 검은색이었다. 별장의 밖은 황금빛 잔디가 우거진 아름다운 숲 속이었다. 숲 속의 나무 향기와 석양이 질 때, 같은 색깔로 물든 잔디밭은 그녀가 좋아하는 별장의 모습 중 하나였다. 그 잔디밭을 거치고 지나가면 보이는 것은 사방이 탁 트인 해변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멀리서 나지막이 들려오는 파도소리를 즐겼다. 간간히 들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해변 어딘가에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고 있을 젊은 커플들의 모습을 그녀는 사랑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가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소리가 난 쪽으로 무심코 방향을 돌려 걸었다.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커졌다.


“마리, 맙소사! 겁도 없이 혼자서 여기까지 왔단 말이요?” 그의 목소리였다.
“안에만 있는 것은 답답해서요. 이제 걱정이 좀 되나요?”
“미안하오. 전부 내 잘못이오. 더 이상 걱정이 끼치는 일은 하지 말아 주시오.”
“언제나 어린아이를 대하듯 말하시는군요. 전 여섯 살 먹은 여자아이가 아니랍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란 것은 당신도 잘 알 거요. 난 그저 당신이 걱정되었을 뿐이요.”
“이미 알고 있어요. 당신이 무엇을 말할지는, 당신의 머리는 언제나 사업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니 말이지요. “
“그럼 이제부터 약속하겠소. 하루에 몇 시간 정도는 시간을 내보도록 하겠소.”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죠. 오늘은 이만 돌아가야겠어요.”
그녀는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불어오는 바람에 노란 잔디밭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의 아침은 늘 창밖을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는 그녀가 정확히 무엇을 보는지 알지 못했다. 그에게 창밖의 풍경은 언제나 같은 모습이었다. 그녀는 어떤 때는 조용히 음악을 듣기도 하며, 이따금 피아노를 치는 흉내를 내기도 했다. 어느 하루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했다.

그가 약속한 대로, 그들은 밖을 나가서 그저 하릴없이 사람들을 구경했다. 아름다운 해변은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했다. 조용한 벤치에 앉아서 그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하루 일과의 하나였다. 사실 그녀가 처음부터 이렇게 시력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앓고 있던 병이 더 심해진 것이다. 병을 앓기 전에는 소문난 잉꼬부부로 유명했다. 그러나 그녀의 병이 점점 심해지고 나서부터는 그는 점점 밖의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둘의 사이는 조금씩 멀어졌다.


그렇지만 그가 완전히 그녀를 내버려 둔 것은 아니었다. 먼저 예전에 자주 오던 별장에 오자고 권유하기도 했고, 믿음직한 밥이 관리인으로 있는 이곳이라면 그도 안심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을 뿐, 그는 그녀를 본질적으로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그런 상황들이 조금씩 겹쳐 그녀의 슬픔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며칠 전, 그녀가 처음으로 그에게 크게 소리를 지르고 나가라고 한 것은 그녀의 분노를 그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때 그의 표정이 조금 굳어진 것을 그녀는 보았다. 그도 나름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전까지 마리는 그에게 소리 지른 적이 없었다. 남자는 어린아이 와도 같아서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을 그녀는 알았다.



그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어디서부터 관계가 잘못되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생각했다. 결과적으로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지 않고, 그저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그의 마음이 문제였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시력이 점점 나빠지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지만, 언젠가 그녀가 극복해 낼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조금 늦었지만 그는 처음으로 돌아가 보기로 마음을 먹고, 그녀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기로 했다. 그녀가 가장 바라던 일이기도 했다. 그는 오늘 근사한 저녁을 먹자고 말했다.


별장 안 식탁에는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가득했다. 그가 미리 밥에게 저녁을 근사하게 차리라고 일러두었기 때문이었다. 밥은 환한 웃음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잘 구운 스테이크의 풍미는 식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녀는 포크를 들어 스테이크를 찍었으나 입으로 들어온 것은 잘 볶은 아스파라거스 볶음이었다.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은 채, 다시 한번 시도했다. 똑같은 것이 또 입에 들어왔다. 점점 자신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서글펐다. 그녀는 포크를 내려두고 울었다. 마치 길 잃은 아이가 엄마를 찾는 그런 서러운 울음이었다. 그는 조용히 그녀의 곁에 다가가 늘 자신이 지니고 있던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그는 그녀의 옆에서 먹고 싶은 것들에 대해 물었고, 그녀가 이야기하면 포크로 찍어 건네주었다.

“내색 하긴 싫었는데, 전부터 알고 있었소. 당신의 시력이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아서 내 나름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만 몰두하게 되었지. 당신 생각을 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생각했기에. 이제는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겠소.”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 담담함에 그녀도 답했다.

“사실은 앞의 풍경이 서서히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부터 늘 외롭고 쓸쓸했어요. 당신은 나에 대해 무관심했으니까요. 하지만 난 내 머릿속의 풍경들을 그려낼 수 있었죠. 이 앞의 풍경들은 언제나 변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바람이 내 곁을 스치면 그 순간만큼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었어요. 그렇게 버티고 있었어요.” 여자는 감정을 추스르며 말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소? 원하는 대로 하게 해 주겠소.”
“아니요. 여기서 조금 더 있고 싶어요. 어딜 다시 간다고 해서 병세가 나아지진 않을 테니까요.”



저녁을 마치고 그들은 밖의 풍경이 보이는 낮의 그 창가 쪽에 앉았다. 밤의 바람은 쌀쌀했지만 실내 벽난로는 무엇보다 따뜻하게 그 안을 데우고 있었다.


“오늘 밤은 유독 별이 빛나는구려. 예전엔 미처 보지 못했지. 이 곳 별장의 야경을 말이지. 이 위치에선 북두칠성이 아주 잘 보인 다오.” 그는 자신의 눈에 비친 풍경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하늘에 가늘게 매달린 달과 별자리들을 그녀는 상상했다. 눈에 빛이 꺼지기 전 그때의 모습을 그려가며 계속해서 그 모습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에 작은 점 하나가 생겼다가 사라졌다. 눈을 깜빡이자 무수히 많은 점들이 생겨났다. 그 점들은 형태를 갖춰서 북두칠성이 되었다가, 카시오페이아 자리가 되었다가, 이내 수많은 별자리들로 재탄생했다. 어느새 그녀의 머릿속은 밤하늘의 별자리로 가득 찼다. 더 이상 별자리를 떠올릴 수 없을 때, 그녀는 그에게 나지막이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고요하고 찬란한 밤이 지났다.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의 몸은 여전히 흔들의자에 있었다. 무릎에는 담요가 덮여 있었고, 벽난로의 불길은 식어 있었지만 춥지 않았다. 그는 아침부터 분주했는지 불러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정확한 시간에 밥이 문을 두드렸다.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밥이 아니라 그였지만 그녀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어젯밤 잠에 들기 전 그가 걱정하지 말라고 속삭여준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외롭고 무섭지 않았다. 그녀의 곁에는 그가 있다. 늘 같은 자리에서 그녀는 밖을 바라본다. 햇살이 부드럽게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알고 있다. 그가 곁에 있는 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마음에서도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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