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iver: 기억 전달자
디스토피아(Distopia): 유토피아의 반대말. 가장 이상적인 세상을 보여주는 유토피아와는 다르게 가장 부정적인 암흑세계의 픽션을 그려냄으로써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문학작품 및 사상을 가리킨다. 더 기버: 기억전달자는 로이스 로리의 sf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다.
디스토피아는 단순히 유토피아의 반대라기보다 억압적이고 강제적인 사회에 대한 사회비판 요소가 들어가는 장르이다. 냉전 세계와 잇따른 세계 n차 대전을 겪고 고도로 발달한 기술문명사회에서 인류문명에 대한 비관주의적 관점이 디스토피아를 탄생시켰다.
주인공 조너스가 살고 있는 일명 '커뮤니티'는 모든 것이 통제된 사회다. 모든 것이 어느 정도냐 하면 말 그대로 Everything. 전부 다. 날씨, 개인의 감정, 직업, 가족, 먹을 것, 입을 것 등등. 이렇게 된 이유는 머나먼 미래 증가하는 인류에 비해 늘지 않는 식량으로 인해 식량 부족 사태가 일어나 그것이 계기가 되어 곧 전쟁이 발발했기 때문이다.
전후, 모든 분란과 위험 요소를 없앤 하나의 완벽한!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지는데 그것이 바로 커뮤티니였다. 개성이 사라지고 모두가 다 똑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개념을 지향한다. 그래서 구성원들은 언제나 같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모든 것이 통제되기 때문에 사회에서 정하는 규격에만 맞는다면 365일. 별 탈 없는 인생을 보낼 수 있다.
일례로, 가족도 커뮤티니에서 정해주는데 일명 기초 가족 구성원이라 하여, 엄마 아빠 자식으로 구성된 하나의 가정이 만들어진다. 당연하게도 혈연관계로 이루어진 가정이 아니다. 예술적인 것들도 통제당하기는 마찬가지여서 모든 구성원은 색을 볼 수 없고(모든 것이 흑백으로 보인다.) 음악도 들을 수 없다.
이런 사회에서 유일하게 모든 통제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기억 전달자이다. 기억 전달자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기 이전 세계를 기억하는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겠기에 커뮤니티의 모든 통제에서 벗어나는 대신, 혼자서 모든 고통과 감정을 짊어져야만 하는 신분이 생겨났다. 기억 전달자는 커뮤니티에서 금지된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남에게 그것을 발설할 수는 없다. 또한 기억은 계승되는 형태로 넘어가게 되는데 일인 전수의 방식으로 기억 전달자는 계승되며 주인공의 신분이 바로 기억 전달자이다. 물론 기억을 전달받는다고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 전까지의 인생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말할 수 없기에 혼자서 가져가야 하는 것은 고통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주인공 조너스가 선대 기억전달자로부터 기억을 전달받을 때마다 서서히 달라지는 화면이 매력적인 영화다. 기억전달자로 지정되기 전까지 흑백으로 보이던 것들이 그 후에 색감을 되찾는다거나. 들리지 않던 음악 소리가 들린다거나 하는 것들이 감정적으로 다가온다. 더불어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것들, 혹은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만들어준다. 디스토피아의 부조리를 들추어내는 역할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특별한 비밀을 가진 존재라는 것도 기존 sf영화와는 차별화된 점이 있다.
인생 예찬류의 영화는 아니지만 장르의 특성상 그런 것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자유가 얼마나 소중하고 개성이 얼마나 좋은 것이며, 감정(사랑)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기억이 전달되는 연출을 보고 있노라면 역사란 것은 참으로 멋진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점점 발달해 가는 기술문명은 지금도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기술은 시간이 갈수록 발달하고 발전할 것이고,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오직 인간만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어야 하는지는 이미 수많은 디스토피아 작품들이 보여주었다. 그것들이 보여주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상생한다면 분명 세상은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