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의 소리를 심장에 머금고 창가에 얼굴을 기댄다. 오고 나리는 사람들 사이에는 적막만이 흐른다. 모두 검은 밤의 적막 속으로 흡수되어 갈 뿐이다. 조금씩 색 있는 모든 것들이 어둠 속에서 사라져 간다. 결국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단지 달리는 버스의 소음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오늘도 어제와 별다를 것 없는 하루. 눈부신 유채색의 세상에서 회색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어려운 법이다. 남들도 크게 다를 것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적어도 sns 상의 남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다. 조금만 속을 들여다보면 남들도 나와 같을까. 하루하루 그저 살아가는 것이 이다지도 힘들 줄이야.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자라서, 평범하게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솔직히 말해 지금의 생활이 나쁘다고 할 순 없었다. 고요한데 불안한,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 판을 걷는 기분. 매일 저녁 퇴근 시간이 되면 알듯 모를 듯 공허한 기분이 엄습한다.
미래가 불안하지 않게 되었건만 만족할 줄 모르고 불만족만 쌓여간다. 내가 원해서 이 길을 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 사실이 족쇄가 되어 지금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렇다고 달리 잘하는 일을 찾아보려 노력해보지 않았다. 그럴 계기가 없었을뿐더러 그것을 찾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문득 생각이 들었을 땐 너무 늦은 거 같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제 와서 다시 시작하기엔 쌓아놓은 것들이 눈에 밟혔다.
사람은 누구나 안정감을 추구한다. 어느 정도 궤도에 다다르면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안주한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그 상태를 항시 유지하려 애쓴다. 그것이 맞는 것이라고 자신을 속여가면서. 그러니 어느 정도의 자리에서 과감히 중도 포기하는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새삼 대단한 존경심이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그랬다. 포기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법이라고. 내 갈 길이 이 길이 아님을 인정해 버리는 것. 무언가 인생을 송두리 째 부정당하는 씁쓸한 기분을 억지로 꾹꾹 누르며 살아온 세월이었다.
갑자기 토가 쏠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라도 하고 싶은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갈팡질팡 하는 인생이 역겹게 느껴진다. 이 세상 누구 한 사람은 아무런 고민 없이 사는 사람도 있겠지. 나와는 다르게.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는 아니었다.
그러나 삶은 계속 흐르고 세상은 이런 고민을 알아주지 않은 채 늘 흘러가는 대로 흐르고 있다.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결국 그것을 찾아야 하는 것은 오로지 나의 몫일뿐이다. 지금의 선택을 관철한다고 해서 나를 비웃을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당장의 생계를 이유로, 혹은 피할 수 없는 사유로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어른이 되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책임감이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선택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짊어져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 그것이 어른의 삶이었다. 많은 기대와 바람의 눈빛들. 그 눈빛들을 피하지 못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길, 여전히 바람은 차고 몸은 움츠러든다. 집 근처 편의점에 들러 4캔에 만원 하는 캔맥주를 샀다. 현관문을 열면 센서등에 불이 켜지지만 그 잠깐의 깜빡임은 금방 사라지고 만다. tv를 켜면 무엇이 즐거운지 하하호호 웃는 사람들이 있다. 맥주 하나를 따서 들이켜면서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다가 이따금 흘러나오는 별거 아닌 이야기에 피식 웃는다.
결국 별 수 없게도 맥주 한 캔이나 마시며 또 푸념을 하다가 또 그런 내일을 맞이하겠지. 이런 고민들을 한다고 갑자기 세상이 확 달라지거나 하진 않는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길을 찾기도 또는 헤매기도 하는 그런 것이겠지. 잠을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지도 모른다. 변덕은 변덕으로 끝내야 하는 법이니까. -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