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것들.

단편소설.

by Erebus


그는 죽어가고 있었다. 정확히는 몸이 아니라 마음이 죽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하루하루 날들이 지나가고, 가면 갈수록 기운도 빠져갔다. 사는 것이 사는 것 같지 않은 것이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에게도 분명 괜찮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자신도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이제는 생각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가만히 있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시간은 시간대로 흐르고, 그는 그대로 흘렀다.

그의 방은 초라했다. 10평 남짓한 곳에 작은 침대와 의자, 그리고 쓴 지 한참은 되어 보이는 작은 테이블 하나와 작은 냉장고. 청소도 안 하고 살았는지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그 테이블에는 안 어울리게도 작은 조화 화분이 하나 올라가 있었다. 조화여서 물을 줄 필요도 관리를 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그 자리에 계속 그대로 있었다. 그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삐걱-. 낡은 침대의 프레임이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바닥은 냉골처럼 차가웠다. 냉장고의 문을 열었지만 무언가가 있을 리 없었다. 텅 빈 냉장고의 불빛이 방을 비추었고, 남자는 그냥 냉장고의 문을 열어둔 채로 한동안 그 빛을 응시했다. 그게 좋았다. 마음이 편했다. 그러나 이내 문을 닫았다. 방 안에는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그의 세계는 딱 그만큼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가 가진 전부였으며, 그 자체로 그를 말해주고 있었다.


인간 관계없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는 어려서부터 소수의 친구들만을 사귀었을 뿐이다. 시끄럽고 복잡하고 사람이 많은 것은 딱 질색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데면데면한 사이가 되었을 뿐이다. 생각보다 연락할 거리는 많지 않다. 사소한 것으로 연락을 하기에는 어쩐지 부끄러웠다. 보기와는 다르게 생각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실행하지 못하는 타입. 그게 바로 그였다. 남자는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두어 번 연거푸 세수를 하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눈이 좀 퀭하고 다크서클이 내려앉았다. 제대로 먹고살았을 리 없으니 볼살도 좀 훌쩍해졌다. 비쩍 마른 해골이 거울 앞에 서 있었다.


퀭한 눈을 비빈다. 그런다고 인상이 달라질 리는 없었지만. 오늘은 그가 외출을 하는 날이었다. 밖을 자주 나가는 편은 아니었지만 눈 여겨 둔 곳은 있었다. 그곳은 동네의 작은 성당이었다. 평소에 신을 믿는다거나 그런 것에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었지만. 그냥 한번 들어가 보고 싶어 졌다는 게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거적데기 같은 외투를 걸치고 그는 길을 나섰다. 성당은 그의 집과 멀지 않은 장소에 위치하고 있었다. 종교적인 장소는 참으로 묘해서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경건함을 느끼게 했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그곳에는 아무도 있지 않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마치 남의 집을 몰래 들어온 도둑처럼 까치발을 들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갔다.


그 행동에 집중한 나머지 뒤에서 다가오는 사람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누군가 그의 어깨를 잡았을 때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를 바라보았다.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잘못한 사람처럼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고 떨렸다. 그의 어깨를 잡은 사람은 신부님이었다. 사람 좋은 인상을 하고 있는 신부님은 곧 능숙하게 놀란 그를 다독이며 자리에 앉혔다.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심호흡을 몇 번이나 시키더니 물 한잔을 가져다주었다. 그의 행색이 남루해서인지 그를 노숙자로 생각하는 듯했다. 물 한 잔으로 입을 축인 그는 힘겹게 입을 뗐다. 자신은 이상한 사람이 아니며 그저 이곳에 한번 와보고 싶었다는 솔직한 이야기를 했다. 신부님은 빙그레 웃으며 와 보니 어떠냐는 질문을 했다. 특별한 점은 없지만 어쩐지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것으로 괜찮으니 편히 쉬다가 돌아가도 된다는 확답을 받았다.


알고 보니 성당은 동네와 같은 역사를 지닌 곳이었다. 남자가 사는 동네는 달동네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잘 사는 동네도 아니었다. 마을 주민 중 몇 명의 신도가 있는 듯했고. 남자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이곳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으니 언제나 마음 내킬 때 찾아와도 된다고 했다.


그 뒤로 그는 하루에 한 번은 꼭 그곳을 들렀다. 자신의 좁은 방보다는 훨씬 좋았다. 성당의 신부님은 친절했으며 성당을 드나드는 주민과도 얼굴을 트게 되었다. 물론 마주치면 인사를 할 정도라는 거지. 안부를 묻거나 하는 사이는 당연하게도 아니었다. 그가 원했든 원한 것이 아니었든 사람과 마주치기 위해서는 나름의 용기가 필요했다. 덥수룩한 머리를 깎고 지저분한 수염도 정리하고 손톱도 가지런히 깎고 확실히 처음 왔을 때보다는 제법 멀끔한 인상을 가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며칠 동안 관찰해 본 신부님의 일상은 정직 그 자체였다. 매일 새벽 일어나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고, 밥을 먹고 교회 밖에서 만나는 주민들과 대화를 하기도 하고 아이를 반기기도 했다. 아이들은 모두 신부님을 좋아했다. 확실히 누가 보아도 밝은 인상에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늘 간직한 그야말로 신부란 직업에 딱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신부님과 단 둘이 있을 때는 마음을 막 털어놓는 것이었다. 그걸 고해성사라고 하던가. 신을 믿는 것은 아니니 죄를 고백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대상이 생긴 것이 기뻤다. 매주 미사에 참여하는 김 씨 아줌마, 이 씨 아줌마, 박 씨 아줌마는 아줌마 특유의 친화력으로 첫 만남에 호구조사를 모두 끝내 버렸다. 모든 것을 낱낱이 발가벗겼다.


가끔은 신부님의 일을 돕기도 하고 밥을 얻어먹기도 하고 동네 아줌마들의 등쌀에 떠밀리면서도 조금씩 웃음을 되찾는 자신을 발견했다. 처음부터 어두운 삶을 산 것은 아니었으니까. 무언가를 하다가 안되면 포기하기 바빴고 그것이 반복되자 무기력해졌다. 속마음을 털어놓을 누군가도 없었고, 혼자 끙끙 앓다가 이 지경까지 와 버렸다. 그러다 문득 들른 우연한 성당이 터닝포인트가 될 줄이야. 그 전이었다면 아마 꿈에도 생각 못했을 것이다.


처음 이 동네를 오래된 것은 단순히 집 값이 쌌기 때문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적응해보려 애썼다. 살아야 하는 곳이니 정을 붙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타고난 본성은 어디 가질 않는지, 그 흥미와 호기심도 잠시 잠깐 이었다. 가끔 활기를 띄다가 곧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집을 꾸미는 것도 생각해보지 않아서 그냥 원래 있던 인테리어가 전부였다. 잠만 자는 그런 곳. 그렇다고 요리에 흥미가 있는 것도 아니니 뭔가를 해 먹거나 하지도 않았다.


요즘은 온갖 집 아줌마들의 반찬이 집에 가득 쌓였다. 젊은 양반이 벌써부터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이것저것 챙겨준 덕에 생전 찾아보기 힘들었던 도시락 반찬통이 냉장고에 가득 차게 되었고, 반찬이 생기니 어디선가 밥도 따라왔다. 거기에 따라붙는 잔소리는 덤이었다. 사람의 출입이 잦아지다 보니 그의 방은 어느새 그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었다. 냉장고에 뽀얗게 내려앉은 먼지도 사라져 있었고, 칙칙했던 조화는 사라지고 어느새 작은 생화가 놓여 있었다. 꼬박꼬박 물 주는 것 잊지 말라는 당부의 메모도 함께.


조금씩 밝아지는 자신의 집이 어색해서 이따금 집에 들어올 때 놀라곤 하는 것이었다. 이게 정말 내 집이 맞나 싶은 느낌. 전에 비하면 참 많이 바뀌었다. 사람도, 집도. 비로소 사람 사는 제대로 된 집이 생겼다. 사람이란 참 신기해서 막상 이렇게 꾸며둔 집을 보면 망치기 싫은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조금 더 부지런해지고, 청소도 하고 환기도 시키고 하는 것이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 그 말은 진짜였다. 주변의 환경이 바뀌니 스스로가 움직이고 싶어 지는 것이었다.




언젠가 읽었던 글에서 무기력하다면 일단 몸을 움직여보라는 글을 읽었다. 그때는 그게 무슨 소리야 싶었는데 몸을 움직이니 정신이 돌아오는 느낌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몸을 움직이려면 생각을 해야 하고 생각을 하려면 머리를 써야 한다. 그 모든 과정이 유기적으로 딱딱 맞아떨어지면 그제야 사람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움직이는 것에 집중한다.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목표를 완수할 때까지 움직임은 멈추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었다


달라지는 것은 개인에게서 비롯될 수도 있고 환경에 의해서 바뀔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무언가 대단하고 거창한 목표가 있어야 아니라 그게 무엇이 되었든 간에 행동하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하다는 걸 남자는 그제야 어렴풋이 깨닫게 된 것이다. 지금을 살아나가는 힘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사소하고 작은 것들이 결국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었다.


언젠가 신부가 그에게 했던 말을 떠올린다.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된 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살만한 것이랍니다. 세상은 큰 것들이 움직이는 것 같지만 그 큰 것들도 결국 작은 것들이 모이고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랍니다. 예를 들어, 형제님의 발걸음은 사소했지만 결국 모두와 만나게 된 것처럼요."


조금씩 달라질 내일을 꿈꾸며 그는 조용히 웃음 지었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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