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은 여름이었다. 무더운 열대야의 공기는 남자를 잠 못 이루게 하고 있었다. 남자는 창문을 반쯤 열어놓은 채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책상에서 무언가를 주섬 주섬 찾는 시늉을 하다가 조용히 입에 물었다.
막대 사탕이었다. 남자는 모종의 이유로 담배를 끊었고, 그 뒤로 담배가 생각날 때마다 막대 사탕을 먹기 시작했다. 물론 담배가 생각난다는 건 그의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증거였다. 사탕을 입에 물고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돌아갈 수 없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소용없단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는 또다시 생각에 잠길 뿐이다.
잘 생각해보면 그리 나쁘지 않은 삶을 살아왔음에도 그는 어딘가 늘 불안했다. 조급하고 두려워했으며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고 바다 위의 부표처럼 이리저리 떠다니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어디서부터였을까. 답을 알고 있었다면 이리 헤매지 않았으리라.
때마침 전화가 오지 않았더라면 그는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 서 있었을 것이다. 여자 친구였다. 잠이 오지 않으니 맥주를 사서 놀러 가면 안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집은 곤란하니 집 근처 놀이터에서 만나자고 했다. 시간은 새벽 1시를 향해가고 있었고 늦은 시간이라면 늦은 시간이었지만 젊은 두 남녀에겐 늦은 시간도 아니었다. 적당한 차림으로 , 대신 모자를 푹 눌러쓴 채로 남자는 집 밖을 나섰다.
잠들지 못하는 한 여름의 거리를 비추는 가로등의 불빛들.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있지 않았다. 오직 무더운 공기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새벽의 냄새와 누군가가 피다 버린 담배에서 나는 담배 연기만이 있을 뿐이었다. 터덜터덜, 힘없는 발걸음으로 한 계단, 한 계단 내려간다.
여자 친구는 그 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원래 가까운 사람이 늦는다더니 틀린 말 하나도 없다는 잔소리부터 들어야만 했다. 또 잠 못 들고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었지? 하는 예지와도 같은 소리도 들었다. 그녀는 그를 너무 잘 안다. 대답 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네에 앉아 한 캔, 두 캔, 빈 캔이 늘어갈 때마다, 생각은 조금씩 비워지고 있었다. 좋은 해결책은 아니었지만. 살짝 달아오른 몸과 무더운 열기는 어느새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강가를 보며 걷지 않겠냐는 그녀의 제안에 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걷다 보면 이 무거움도 조금은 가실 것만 같았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강변에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모두 더위를 이기지 못해 나와 있는 사람들이었다. 조금은 왁자지껄한 소리와 누군가가 틀어놓은 노랫소리와 그런 것들이 한 데 뒤엉켜 있었다.
옷 안에서 땀이 날 무렵, 우리는 조금 한적한 잔디밭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매미는 밤낮없이 울어대고 있었다. 집에만 있었다면 시끄러웠을 그 소리가 다른 소리와 어우러져 제법 듣기 괜찮았다.
"생각이 많을 땐 몸을 좀 움직여. 그럼 생각이 좀 사라져. 그렇게 사라지는 생각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거야. 대단한 걸 하라는 게 아냐. 그냥 움직이란 거지."
그녀는 그를 너무 잘 안다. 그녀는 그와는 정반대인 사람이다.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고 밝고 화사하다. 부정이란 단어는 그녀에게서 찾아볼 수가 없다. 간혹 그런 생각이 들더라도 그녀는 금방 떨쳐내 버리고 만다. 그는 그녀의 그런 점이 몹시 대단하다고 느꼈다. 부정적 감정이라는 것은 결국 찰나의 순간이라고 그녀는 늘 말했다.
눈을 감는다. 다시 뜬다. 눈을 감았다가 또다시 뜬다. 달라지는 것은 없다. 볼 쪽에서 차가운 기운이 느껴진다.
어느새 그녀는 캔커피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렇게 마시고도 결국 또 마실 거네. 하고 웃어버렸다.
달칵! 소리와 함께 커피를 벌컥벌컥 마신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시원한 캔커피는 순식간에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준다. 확실히 더위는 가셨다. 그는 그대로 잔디밭에 누웠다. 그냥 이렇게 누워있고 싶었다. 그를 따라 그녀도 따라 누웠다. 그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구태여 말을 해야만 하는 사이가 아니었기에, 그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는 사람이어서. 그렇게 또 한 번의 여름날이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 날, 그는 오랜만에 긴 잠을 잘 수 있었다.
-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