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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프 누 경기장 FC 바르셀로나 경기 직관

나의 바르셀로나

by 마케터 아델



축구에 대한 추억


바르셀로나 신문의 홈페이지에 '메시' 카테고리가 따로 만들어졌을 정도로 메시와 FC 바르셀로나에 대한 관심이 극에 달한 요즘, 바르셀로나에서 내가 경험했던 축구에 대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캄프 누 경기장
Camp Nou

바르셀로나에 지내는 5년 동안 3번 가본 캄프 누 경기장은 카탈루냐어 발음으로는 '깜 노우'이며 '새로운 경기장'이라는 뜻이다. 1951년~1953년 많은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면서 명성이 높아진 FC 바르셀로나는 기존 6만 명을 수용할 수 있던 경기장이 노후됨에 따라 새로운 경기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1957년 9월 바르셀로나 대주교의 축복과 함께 개장한 캄프 누 경기장은 98,772명을 수용할 수 있는 유럽에서 가장 크고 세계에서는 11번째로 큰 축구 경기장이다. 최근 증축공사를 마쳐 현재 수용 가능한 인원은 10만 명이다.


캄프 누는 축구 경기가 열리는 축구장이지만 카탈루냐 사람들은 캄프 누에서 독재 정권을 조롱하고 독립을 부르짖으며 카탈루냐가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스페인 정부의 건의로 카탈루냐 독립을 의미하는 깃발을 경기장에서 펼칠 수 없도록 조항을 만든 피파에게 분노하기도 했다.




캄프 누 직관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바르셀로나에서 한 달을 지낼 때 처음 캄프 누 직관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FC 바르셀로나 서포터인 소시오 Socio였던 카탈루냐 친구의 제안이었다. 서포터는 시즌별로 경기장의 좌석을 구매하는 제도로 경기가 있는 날이면 언제든지 자신의 좌석에서 경기를 볼 수 있다.


FC 바르셀로나의 경기보다 캄프 누를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에 별 기대 없이 따라갔는데 유니폼을 입고 응원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경기장 입구에서부터 설레었다. 꽤 먼 거리와 높이에 있는 좌석에서도 선수들의 움직임이 모두 볼 수 있어 생동감이 넘쳤다. 엄청난 속도로 필드를 누비는 선수들의 모습에 감탄했다.


같은 유니폼을 맞춰 입은 사람들과 함께 앉아있다 보니 나도 바르사의 오랜 팬이 된 듯했다. 응원가를 쉬지 않고 부르는 사람들 덕분에 흥이 올랐다. 경기 자체보다는 경기장의 활기 넘치는 분위기에 더욱 매료되어 경기보다 응원하는 사람들에게 눈길이 갔다.




라 리가 파이널 직관

챔피언스 리그의 최하위 팀과 경기했던 첫 번째 직관과 라 리가 파이널의 직관은 경기장 주변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2016년 라리가 파이널은 바스크와 마지막으로 붙게 된 경기였는데 전 경기에서 이미 4:0으로 져서 바르셀로나가 우승할 수 없는 조건이었음에도 사람들은 기적을 기대하며 열정적으로 바르사를 응원했다. 메시, 수아레즈, 네이마르가 함께 바르사를 이끌었을 때라 사람들은 더욱 포기할 줄 몰랐다.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마다 반응하고 바스크 선수의 몸이 바르셀로나 선수에게 닿기만 해도 온갖 욕들이 스페인어와 카탈루냐어로 동시에 쏟아졌다. 평소에는 화내는 모습을 볼 수 없던 순둥이 친구들도 세상 예민하게 경기를 보며 누구보다 크게 심판을 향해 소리쳤다.


너무 신기하고 재밌는 경험이었지만 동시에 살벌하기도 했다. 친구들 얘기처럼 스페인어와 카탈루냐어로 웬만한 욕은 다 배울 수 있던 날이었다.




티켓


티켓의 가격은 경기에 따라 달라진다. 잘하는 팀과 붙을수록 가격이 올라간다. 평범한 팀과의 경기는 좋은 좌석도 50~60유로 정도면 충분히 구매할 수 있다. 라 리가 파이널 전은 가장 높은 층에서 봤던 경기였는데도 티켓 가격이 75유로였다.


이런 가격이 엘 클라시코 경기에서는 기본 500유로에서 시작해 좋은 자리는 천 유로를 가볍게 넘긴다. 엘 클라시코 VIP석을 2천 유로 정도, 우리나라 돈으로 2백만 원 넘게 주고 직관한 분을 만난 적이 있다.


진정한 축구 팬들 앞에서 티켓의 가격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경기 결과 확인

바르셀로나에서 다니던 회사가 경기장과 가까웠다. 오후 타임으로 일하는 날이면 경기가 끝나는 시간과 퇴근시간이 겹쳤고 경기장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 노선이 회사 앞을 지나기 때문에 경기를 보고 온 사람들을 마주쳤다.


그날의 경기 결과는 거리의 사람들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가 승리한 날이면 사람들을 다 같이 응원가를 부르며 신나 있다. 패배한 날에는 모두의 어깨가 축 처진 채로 걸어간다.


퇴근하는 버스에 바르사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가득해서 지옥 버스가 되는 건 불편했지만 승리한 날 전해지는 좋은 기운은 퇴근하는 길도 기분 좋게 해 주었다.


이렇게 바르셀로나에서는 나도 모르게 축구와 함께 살아가게 된다.











나, 아델


한국 회사 생활을 정리한 후 3개월 동안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다. 한 달을 보낸 바르셀로나는 꼭 살아보고 싶은 도시가 되었고 한국에 돌아온 지 6개월 만에 다시 떠나 5년이라는 시간을 바르셀로나에서 보냈다. 바르셀로나에서 카탈루냐 사람들은 나의 또 다른 가족이 되었고 다양한 국적의 유럽 사람들은 내 회사 동료 혹은 친구가 되었다. 바르셀로나 도시 자체를 너무 사랑했지만 이방인으로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그 도시를 사랑하는 마음만큼 미워하는 마음도 크기를 같이 하고 있다.


'나의 바르셀로나'는 이런 기억들을 조금씩 적어보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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