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바르셀로나
안토니 가우디의 죽음
1926년 6월 시내에 있는 성당에 가던 안토니 가우디는 트램에 치이는 사고를 당한다.
74세의 노인이었던 그는 갈비뼈가 부러지고 내출혈이 발생하는 큰 부상을 입었지만 덥수룩한 수염에 남루한 옷차림, 신분증 대신 주머니에 들어있던 견과류 몇 개를 보고 사람들은 그를 부랑자라고 생각했다. 평소 성인이라고 불릴 만큼 검소한 생활을 한 탓이었다.
사람들이 도와 근처 병원에 도착했을 때 곧 사망할 것 같은 늙은 부랑자를 치료하기를 꺼렸고 그런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라발 지구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다. 사고가 난 지점에서도 한참 떨어져 있던 가난한 사람들이 가는 병원에 누워있는 가우디를 사그라다 파밀리아 공사장의 인부들이 다음날이 되어서야 찾아냈다.
70세가 넘은 이 노인은 골절과 큰 출혈을 겪고도 응급조치는커녕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사고가 난 지 3일 만에 허망하게 사망하고 만다.
그가 숨을 거둔 곳은 라발 지구에서 500년 동안 운영되었던 산타 크레우 병원이었다.
15세기에 지어져
500년간 운영된 병원
카탈루냐어로 성 십자가를 의미하는 산타 크레우 병원은 바르셀로나에 있는 6개의 병원을 한 곳에 모으고 일반 서민들에게 의료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부르주아들의 기부금으로 지어졌다.
1401년 건설을 시작한 병원은 14년 뒤 시민들에게 문을 열었다. 그 당시, 큰 규모의 건물 형태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수도원의 모습을 그대로 본떠서 만들어졌다. 이후 가우디가 사망한 1926년까지 무려 500년이라는 시간 동안 바르셀로나 최고의 병원으로서 운영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용해야 하는 인구가 늘어나자 병원은 조금씩 변화했다.
16세기 병원 양쪽에 계단과 새로운 입구를 만들었다.
17세기 병원에 장기간으로 입원하는 환자들을 위해 요양원을 건축했다. 파티오의 한가운데에는 평화는 상징하는 산 파우가 그들의 건강을 기원하고 있다.
환자들이 걸으며 운동할 수 있도록 파티오를 둘러 복도를 만들고 2층에는 작은 정원도 조성해두었다. 요양원 입구에 그려진 타일 그림은 1622년에 그려졌다.
18세기 바르셀로나의 의사들을 양성하기 위한 외과 대학을 요양원 맞은편에 지었다.
새로운 병원으로의 이전
500년이 된 병원 건물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발달하는 의학기술에 적합하지 않았고 폭발적으로 증가한 바르셀로나의 인구를 감당할 수도 없었다.
결국 산타 크레우 병원은 가우디가 사망 한 지 한 달 뒤인 1926년 7월에 완전히 문을 닫게 된다.
병원은 현재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산 파우 병원으로 이전했다. 산 파우 병원은 카탈루냐 모더니즘의 아버지로 불리는 도미니크 문타네르의 마지막 작품으로서 섬세한 모자이크와 세계에서 화려한 무늬들로 가장 아름다운 병원으로 손꼽힌다.
600년 동안 시민과 함께 하는 곳
1926년 문을 닫았지만 산타 크레우 병원은 여전히 라발 지구에서 600년 동안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병동이 있던 병원의 메인 건물은 카탈루냐 도서관으로 활용 중인데 카탈루냐어로 된 고서부터 가장 최근에 발행된 책까지 3백만 권에 달하는 도서들을 보유 중이다. 카탈루냐 도서관에는 누구나 입장할 수 있다.
장기 환자들을 위해 요양원으로 지어졌던 건물은 카탈루냐 어를 연구하고 보존하는 카탈루냐 어학회가 사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바르셀로나 외과 대학이 있던 건물은 외과 대학이 의과 대학이 되면서 규모가 커지자 에익샴플라 지구에 큰 건물을 지어 이전하였고 현재는 의과 대학을 관리하고 카탈루냐의 의학 자료들을 보관하는 곳으로 활용되고 있다.
카탈루냐 어학회 건물과 의과 대학 두 건물은 관련자가 아니면 입장이 불가하다.
라발 지구는 차와 사람들로 끊임없이 북적거리는데 산타 크레우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면 바깥의 소음이 두꺼운 벽에 의해 차단되면서 조용한 공간이 시작된다. 사람 한두 명이 겨우 다니는 좁은 골목에서 탁 트인 이곳에 들어오면 답답했던 마음이 잠시 트인다.
넓은 파티오에는 오렌지 나무들이 자라고 있고 그 아래에서 사람들은 카탈루냐 도서관에서 빌려주는 책을 읽는다. 체스 게임을 즐기는 동네 아저씨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온 커플들, 계단에 앉아 여유를 부리는 사람들이 십자가가 세워진 광장을 공유한다.
6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이 공간이 바르셀로나 사람들 생활에 온전히 젖어들어가 있는 모습은 내가 이곳을 찾을 때마다 감탄하게 만들었다.
주의 사항
건물 안에 입장하지 않아도 넓은 파티오와 광장은 바르셀로나의 착한 날씨와 함께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곳이지만 해가 지고 나면 가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어두워지면 파티오에 부랑자와 불량배들이 모인다. 그들이 사람들을 공격하지는 않지만 여행객으로서 조금 두려울 수 있다.
매력적인 공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타 크레우 병원은 라발 지구에 갈 때마다 꼭 한 번씩 들어가게 되는 곳이다. 북적이는 21세기 거리를 걷다가 15세기의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건 나에겐 너무 매력적이었다.
오렌지 나무에 달린 오렌지가 거의 다 익으면 보라색 자카란다 꽃이 광장을 가득 매웠다. 자카란다 꽃이 지고 나면 뜨거운 여름 햇빛을 피할 수 있게 나뭇가지가 무성해졌다. 앙상한 나무가 지키고 있는 광장의 겨울엔 구석의 작은 바에서 카페콘레체를 마시곤 했다.
바르셀로나와 라발 지구를 떠올린 때면 이 공간에서의 시간들도 함께 기억하게된다.
나, 아델
한국 회사 생활을 정리한 후 3개월 동안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다. 한 달을 보낸 바르셀로나는 꼭 살아보고 싶은 도시가 되었고 한국에 돌아온 지 6개월 만에 다시 떠나 5년이라는 시간을 바르셀로나에서 보냈다. 바르셀로나에서 카탈루냐 사람들은 나의 또 다른 가족이 되었고 다양한 국적의 유럽 사람들은 내 회사 동료 혹은 친구가 되었다. 바르셀로나 도시 자체를 너무 사랑했지만 이방인으로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그 도시를 사랑하는 마음만큼 미워하는 마음도 크기를 같이 하고 있다.
'나의 바르셀로나'는 이런 기억들을 조금씩 적어보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