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바르셀로나
1년 전 오늘
1년 전 오늘 포블레노우에 있는 작은 카페 에스파이 졸리우 Espai Joilu에서 베이글 샌드위치와 카페콘레체를 주문했다.
에익샴플라 데레따에 있는 우리 집 앞에는 노란색으로 표시된 4호선 라인 지하철의 지로나Girona 역이 있었다. 고딕 지구의 자우메 역, 해변과 가까운 바르셀로네타 역, 올림픽 선수촌이었던 빌라 올림피카 역을 지나 차도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 한적한 야쿠나 역에서 내려 카페에 도착했다.
에스파이 졸리우
Espai Joliu
카탈루냐어인 에스파이 졸리우는 졸리우의 공간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100년은 거뜬히 넘었을 어느 공장의 한편을 카페로 사용하고 있다. 공간의 전체적인 틀은 거의 손대지 않은 듯하다. 흠집이 나있는 벽, 벗겨진 페인트, 낡고 거친 느낌이 가득하다.
멋있다.
유리창이 덧대여진 작은 나무 문을 지나면 귀여운 선인장들이 먼저 맞아준다. 오른쪽 벽에는 초록 초록한 식물들이 가득하고 반대편에는 다양한 책들이 자리 잡고 있다. 대부분이 디자인과 관련된 서적들이었는데 이런 책은 항상 사고 싶지만 다음으로 미뤄둔다.
아주 투박한 건물의 모습과 알록달록하게 채워주는 아이템들이 조화로운 졸리우의 공간은 매력적이었다.
19세기 스페인의 맨체스터
21세기 스페인의 실리콘밸리
바르셀로나에 사는 동안 포블레노우에 갈 일이 많지 않았는데 작년에는 단짝이 일하는 곳으로 자주 놀러 갈 겸, 바르셀로나의 새로운 공간들을 찾아갈 겸 많게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포블레노우를 찾았다.
지금의 포블레노우는 스페인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며 높은 신식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끊임없이 아파트들이 지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백 년이 넘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들도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스페인의 맨체스터라고 불릴 만큼 19세기 포블레노우에는 수많은 직물 공장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번영했던 카탈루냐의 직물산업이 추락하고 포블레노우의 공장들도 멈춰버렸다.
1980년 바르셀로나 시는 폐허처럼 버려진 이곳의 공장들을 허물고 새로운 도시를 형성하려 했지만 주민들이 강렬히 반대했다.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카탈루냐의 번영에 큰 몫을 했던 직물산업의 흔적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덕분에 바르셀로나 곳곳에서 예전 직물공장의 흔적들을 볼 수 있는데 벽돌로 쌓은 높은 굴뚝이 그중 하나이다. 지난 역사를 지켜야 한다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모든 것을 덮어버리고 쌓아 올리는 무분별한 변화를 막고 개성 있는 모습을 만들어냈다.
오래된 것을 소중히 할 줄 알기 때문에 그들의 도시가 더욱 빛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변화의 공간
유리창으로 가득한 고층 빌딩이 많은 포블레노우 중심을 제외하면 비어진 공간이 여전히 많은 이곳은 매일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새로운 콘셉트의 카페와 바가 들어서고 코워킹 플레이스나 현대미술 갤러리들도 많이 생기고 있다.
바르셀로나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비교적 저렴했던 포블레노우의 아파트들이 지금은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비싼 곳 중 하나가 된 이유도 포블레노우가 계속해서 발전하고 변화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힙한 모습을 잃지 않고 멋지게 변화하는 포블레노우가 되기를 바란다.
나, 아델
한국 회사 생활을 정리한 후 3개월 동안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다. 한 달을 보낸 바르셀로나는 꼭 살아보고 싶은 도시가 되었고 한국에 돌아온 지 6개월 만에 다시 떠나 5년이라는 시간을 바르셀로나에서 보냈다. 바르셀로나에서 카탈루냐 사람들은 나의 또 다른 가족이 되었고 다양한 국적의 유럽 사람들은 내 회사 동료 혹은 친구가 되었다. 바르셀로나 도시 자체를 너무 사랑했지만 이방인으로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그 도시를 사랑하는 마음만큼 미워하는 마음도 크기를 같이 하고 있다.
'나의 바르셀로나'는 이런 기억들을 조금씩 적어보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