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바르셀로나
까사 알미라이 Casa Almirall
바르셀로나 현대 미술관 MACBA를 지나 조아킨 코스타 Carrer de Joaquín Costa 거리에 들어서면 1860년부터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카사 알미라이 Casa Almirall를 만날 수 있다.
직물 공장의 노동자들부터 바르셀로나 항구를 통해 들어온 선원들부터 현재 현대미술관 앞 광장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사람들까지 16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카사 알미라이에서 술 한 잔씩 하며 시간을 보냈다.
현대 미술관 바로 근처지만 관광객들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 라발지구의 골목에 위치한 이 가게는 가게의 외관만 보아도 견뎌온 세월을 가늠해볼 수 있다.
오래된 흔적
까사 알미라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19세기로 발을 들여놓은 것 같다. 1860년 가게가 문을 열었던 그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로 들보를 받쳐놓은 천장은 카탈루냐의 오래된 건물들에서 볼 수 있는 형식이다.
바에 놓여진 테이블과 의자는 19세기 카탈루냐에서 주로 사용했던 디자인이고 실제로 100년 넘게 그대로 이 바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들도 있다. 이렇게 오래된 테이블 중에서는 보수가 되지 않아 낡은 쇠 부분이 날카로운 경우가 있어 손이 베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아름답게 장식된 공간
자연을 모티브로 한 카탈루냐 모더니즘 스타일로 장식되어 있는 가게 내부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는 바 뒤에 있는 선반이다. 한 벽면을 가득 채운 선반 한가운데를 곡선 두 개가 가로지르고 가운데에는 꽃과 풀들이 양쪽에는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새겨져있다.
이탈리아와 카탈루냐에서 들여온 바 위에 자리잡고 있는 예쁜 조명은 1888년 바르셀로나 만국 박람회의 뮤즈를 형상화 한 것이라고 한다. 이 가게를 처음 열었던 알미라이 Almirall 씨가 실제로 살던 집이 가게 근처였는데 자신의 집에 있던 계단 장식품을 떼다가 이렇게 멋진 조명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왼손에는 매일 새로운 장미를 꽂아두신다.
지키기 위한 노력
사소한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며 아끼고 낡은 것을 고치고 또 고쳐서 사용하는 카탈루냐 사람들은 자신들의 도시를 지켜내기 위해 노력한다.
바르셀로나시는 문화적 가치가 있는 상점들을 280개가량 선정한 후 세 단계로 구분해서 보호하고 있다.
1단계: 건물의 외벽을 보호한다.
2단계: 바르셀로나 시에서 지정한 부분들을 보호한다.
3단계: 현재 상태 그대로를 보존한다. 어느 누구도 가게의 내부와 외부를 변경할 수 없다.
까사 알미라이는 3단계로 보호되는 32개의 가게 중 하나이다.
본인 소유의 가게를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할 법도 하지만 까사 알미라이의 주인아저씨는 자신의 가게가 시의 보호를 받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앞으로 더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즐길 수 있도록 잘 가꾸고 보존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얘기하신다.
맛있는 한잔
맥주 혹은 와인 한 잔 아주 간단하게 마시는 까사 알미라이에는 음식 메뉴가 없다. 감자칩과 올리브가 유일한 안주인데 맛의 퀄리티가 꽤 높아 음식이 없는 게 서운하지 않다.
얇고 바삭한 감자칩에 매콤한 파프리카 소스를 곁들여 먹을 수도 있다. 탱글탱글 싱싱한 올리브는 술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입에 쏙쏙 넣게 된다.
시원한 생맥주도와인도 있지만 까사 알미라이에서는 베르무트 Vermouth를 마셔야 한다. 18세기 이탈리아 투린에서 만들어진 베르무트는 유럽에서는 식전 주로 많이 마시는 술이다.
까사 알미라이의 베르무트는 가게에서 직접 만드는 것으로 올리브와 함께 서빙되어서 '올리베따'라는 귀여운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다. 와인 베이스로 만들어진 이 술은 살짝 달달한데 여러 허브들이 들어가 있어 박카스랑 비슷한 맛이 난다. 예전에는 감기약 대용으로 먹었다고 한다.
적당히 달달하면서도 깔끔한 맛이 아주 좋다.
친구들과 까사 알미라이의 작고 낡은 테이블 앞에 앉아 싱싱한 올리브와 베르무트 한잔하던 그날 밤이 떠오른다.
나, 아델
한국 회사 생활을 정리한 후 3개월 동안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다. 한 달을 보낸 바르셀로나는 꼭 살아보고 싶은 도시가 되었고 한국에 돌아온 지 6개월 만에 다시 떠나 5년이라는 시간을 바르셀로나에서 보냈다. 바르셀로나에서 카탈루냐 사람들은 나의 또 다른 가족이 되었고 다양한 국적의 유럽 사람들은 내 회사 동료 혹은 친구가 되었다. 바르셀로나 도시 자체를 너무 사랑했지만 이방인으로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그 도시를 사랑하는 마음만큼 미워하는 마음도 크기를 같이 하고 있다.
'나의 바르셀로나'는 이런 기억들을 조금씩 적어보는 이야기이다.